‘내가 쓰고’ 싶은 글을 조금씩 써 왔다.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을 쓰라고, 대다수의 글쓰기 교육이나 작법서에서 귀띔해 준다. 그런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대가 읽고픈 것이 당최 무엇인지를. 단순히 시의적절한 트렌드를 말하는 건지 팔리기 위한 콘텐츠여야 하는지 그 경계도 모호하다. 나는 센스가 부족한 걸까, 틈새시장 공략을 못 하는 걸까. 어느 잣대를 들이밀어 보아도 ‘내가 무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대형 서점에 방문하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꼭 들른다. 하긴 거기까지 못 가도 인터넷 서점 순위 조회 한 번이면 된다. 인기 있는 작가의 신작, 최근 방송이나 유튜브에 나온 이슈의 책,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나 독특한 일러스트의 커버까지. 이 세상 어느 당신에게론가 찾아가는 책들이 우쭐대며 줄 서 있다.
‘이런 책이 역시?’ ‘요즘 이런 게 관심 가긴 하지...’ ‘어머, 나도 이런 생각 했는데!’까지 다다르면 다시금 결론은 ‘나의 무능’으로 도돌이표다. 그리고 시작되는 자아비판의 시간.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책을 쓰겠다고. 내 까짓 게 가당키나 한가. 책은 아무나 쓰나.
그런데, 또 아무나 쓰는 단면들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한다. 엄청난 팔로워를 두지 않아도 브런치북에 당선되고,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독립 출판을 감행하며, 작은 동네 책방 모퉁이에는 그런 작고 유니크한 책이 꽂혀 있다.
brunch 계정을 시작한 게 2019년 7월, 어느덧 1년 반이 지나고 있다. ‘작가’라는 명칭도 부끄러워 그냥 ‘쓰는 사람’으로, 그렇게 쓰면서 살자고 다짐한 나와의 약속이 매일, 매주, 매달 나에게 잔소리로 돌아와 가슴에 박힌다. 충분하지 못한 글쓰기 분량, 맥락 없는 주제, 하다 만 듯한 퇴고... 글 발행 직전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무엇이 되었든 쓴답시고 여기까지 왔다. 과연 이 과정이 그럼에도 내게 유의미한 것일지 의문만 남긴 채.
앞서 ‘100일 글쓰기’가 되지 못한, 100번의 글쓰기 마지막 회차에서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독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글을 다 읽지 못한다 해도 그분들이 계시기에 매번 무엇이든 내가 쓰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그리고 여전히,감사드린다.
나는 이제 조금만 더 ‘당신이 읽고’ 싶은 글에 관해침잠하여 고민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그대를 더 깊이 알고 싶다.심연 그 아래에서 무엇이라도 건져 올릴 수 있기를. 싱싱한 글을 다듬어 당신 앞에 곱게 내어놓을 그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