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누나의 결혼을 앞두고 ― 지금은 법적으로는 기혼이 되었다! ― 2021년의 연말은 엄청 '몽글몽글'했다. 몽글몽글한 기분은 쉽사리 오지 않는데 쓸데없이 인류애가 충전되는 순간이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행복이란 단어와는 은근슬쩍 거리가 있었는데 적어도 연말에는 행복하게 몽글몽글했다.
이십 대 중반이 들어선 나에게 가족은 '이제서야 사랑이 넘치는' 그룹이다. 이십 대 초반만 하더라도 뒤늦게 온 듯한 사춘기와 가족에 대한 반발, 어머니의 이유 없는 사랑과 무시에 맞서기 바빴던, 치기 어린 나날이었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거리 두는 것을 좋아했고 독립생활이었던 만큼 홀로서기의 이유는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전역하면 철든다는 얘기가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무한한 내 편이 되고자 노력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못된 동생에게 쓰라린 말로 일침을 놓는 누나는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기 부여 그 자체였다. 물론 그간의 불신과 불만이 있었기에 여전히 "나에겐 가족이 최고야. 그들이 나의 1 순위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70% 정도는 되는 듯 보였다.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건, 친누나의 결혼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내 식구가 다른 집 식구가 되는 순간이었고 또 다른 식구가 우리와 함께 밥을 곁들이는 '우리 집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만의 바운더리가 엄청 큰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매형은 나와 먼저 가까워지기를 원했다. 어쩌면 공략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는데 내가 마음을 여는 순간 자연스럽게 아빠는 '우리 가족'처럼 매형을 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는 예민한 사람에서 애틋한 사람이 되었다. 신혼집 이사를 앞뒀을 때, 내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아빠, 엄마는 공허함을 느꼈고 감수성이 그 어떤 날보다 풍부해진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제는 새로운 가족에 적응하는 시기가 되었다. 엄마는 이제 아빠, 누나, 나, 강아지 마루 뒤에 매형의 이름도 붙이며 애정을 표한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우리 가족도 변하긴 하는구나. 부디 좋게 좋게 변했으면 좋겠다. 복덩이 마루가 입양되었을 때처럼.
관심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보단 이게 더 정확해 보인다. 시각과 촉각적인 부분에 큰 친밀감을 가지는 사람들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만큼의 노력을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환원한다면 관계는 소원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꾸준히'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건 어려워 보인다.
나는 꾸준히 관심을 갖는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축구 관련 글을 쓴 작가님이었다. 축구 여행기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분이었는데 그게 무려 2015년이었다. 14년 9월에 출간된 책을 읽으면서 남긴 리뷰를 작가님께서 직접 댓글을 달아 주시면서 관계는 '서로 이웃'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독자는 팬이 되었고 무려 7년 동안 작가님의 글을 팔로우하게 되었다.
축구 글을 쓰다 보면 종종 하는 말이 '팔로우하다'인데 어떤 선수나 팀의 경기나 업적을 꾸준히 확인하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작가님을 꾸준히 팔로우했다. 그 사이 작가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셨고 결혼도 하셨고 심지어 작년에는 출산도 하셨다. 소위 '눈팅'만 하다가 어느 순간 친밀감이 복받쳐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그렇게 형성된 '랜선 친밀도'는 임계치를 넘어섰다. 마치 친누나 같은 감정은 출산 때 터져 나왔는데 그 당시 친누나 역시 결혼을 준비하면서 감수성이 쏟아진 댓글들을 줄줄이 달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오버'한 느낌이다. 이전과 달리 블로그는 개인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래서 주변 지인이 아니면 쉽게 글을 공개하지도 않고 댓글을 달지도 않고 심지어 방문하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을 함부로 침입해 엿보는 거나 다름없었다. 오지랖 넓게 감정적인 말들과 사적인 말들을 댓글로 달았고 어쩌면 작가님은 그런 내가 성가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작가님의 공개적인 글만을 좇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블로그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나 말고도 꾸준히 작가님의 글을 팔로우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달력을 만들어 배부하신다는 글이었다. 약 3일 전의 글이었고 댓글은 50개가 넘었기 때문에 선착순 10명은 이미 놓친 듯한 느낌이었다. 아쉬움의 댓글을 달았고 또 사적인 감정이 터덜터덜 나왔다.
그런데 작가님은 내 생각보다 나를 좋아해 주셨다. 나를 위해 달력을 빼두어 놓으셨다고 말하셨다! 그간 나의 주접과 오지랖, 그리고 관심들이 작가님에게도 나름의 기쁨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게 너무 행복했다. 나는 지나치게 누군가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망쳐진 관계들이 있었기에 랜선이라고 해서 그런 게 없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었다. '또 관계를 망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짙었기에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사람이 적어졌지만 작가님과의 관계는 지속 가능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게 얼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는 더 깊은 '랜선 친밀도'를 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만난 관계는 대부분 지저분하거나 일회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몇 번 데어봤기 때문에 일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랜선 친구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관계다. 잘 몰라도 아는 사람이기에.
다년간 신년 계획을 짜 왔지만 올해는 조금 더 '계획적'으로 신년을 맞이했다. 만다라트 계획표로 신년 계획을 짜 봤다.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사용한 것으로 유명해진 만다라트는 궁극적인 목표 1개를 위해 중간 목표 8개를 설정하고 중간 목표를 위한 세부 목표 8개를 계획함으로써 세부-세부계획을 짤 수 있다.
이제 4학년이 되었기 때문에 취업을 목표로 삼았다. 취업의 방향을 한두 가지로 정해놓은 상태지만 아직까지 열려 있기 때문에 다방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자격증만 무려 5개나 욕심 냈다! 계획은 엄청나게 창대하다. 전부 다 어려운 자격증이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영어는 내가 가져야만 하는 무기 중 하나다. 대충 영어를 도끼라고 비유해보자. 도끼를 휘두르는 법, 도끼가 활용되는 부분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실상 나는 단검만 휘두를 뿐이었다. 또 은유적으로는 '도끼 마스터'처럼 보였지만 실상 '마스터 자격증'은 없는 게 현주소다. 부족함을 느끼고 나서 올 한 해 동안에는 이에 치중하기로 했다.
스물다섯이 되면서 체력적으로 부침에 도달했다. 정체불명의 폐렴이 폐기종으로 발달되어 기흉 직전까지 닿았는데 이로 인해 신체 나이가 급격하게 상승한 느낌이었다. 담배 한 대도 태운 적 없는데, 심지어 뛰는 걸 좋아하는데도, 나에겐 너무나도 큰 모래주머니가 쿵하고 떨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3km를 14분 안팎으로 뛰었던 체력은 35분 만에 완주가 가능할 정도로 심각해졌고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너려고 뛰기만 하면 호흡곤란이 동반되었다. 이게 너무 싫어서 러닝을 시작했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슬금슬금 다시 뛰기 시작했다.
러닝을 꾸준히 하면서 나이키 트레이닝 클럽에서 알려주는 요가도 동행했다. 명상도 같이 했다. 호흡의 중요성, 나에게 호흡이 가능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면서 정신력도 다지려 노력했다. 이제야 정상궤도로 복귀한 느낌인데 심판 자격증을 따낼 수 있을 만큼의 폐가 되진 못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음 레벨을 노려본다. 체력도 나만의 무기가 되고 싶다.
모두 달성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왕 목표 삼은만큼 작심삼일을 반복하더라도 계속해서 정진해보려 한다. 핑곗거리 없이 살아볼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50%는 달성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