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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Mar 13. 2022

제목 없음

미공개곡, 팔자, 이어폰

미공개곡


 백예린이 'Square'이라는 음원을 출시하지 않고 페스티벌 등에서 자주 선보였다. 때마다 "아직 공개 안 한 곡인데요"라는 말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이 말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미공개"임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보여주는, 마치 보여주고 싶은데 나만 쓰는 내 일기장 같은 처지의 곡들. 폐쇄적이라 소중하고, 귀중하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마스크는 신변을 가렸고 이런 로망도 사어 (死語)가 되어 간다. 원 클럽맨이 사라지듯이 낭만을 잃어가는 오늘이다.


 알려주기 싫은데 너한테만 알려줄게- 라는 간지러운 말은 이제는 주식 시장의 '찌라시' 정도 묘사에 그치는 정도다. 혹은 정치적 엠바고, 비리, 로비 등이랑 어울릴까 싶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밝히고 내 신변을 알리면서 나와 스쳤던 모든 이들이 내 감정을 알길 바라진 않는다. 그저 나에게 일말의 감정 혹은 관심이 있었던 아무개에게 조금 더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면 연락하고 아녔다면 과감하게 버려라. 내 소소한 고백이 불쾌했다면 익숙하게 버려질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한다"지만 소가 일하는 건 매한가지다 ⓒ chosun.com

팔자


 소띠다. 할머니는 나보고 국 먼저 먹으랬지. 그러면 그 해 농사가 풍년 이래나 뭐래나. 말마따나 그냥 국 먼저 먹는다. 내가 하나의 의식이 되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다면, 행복을 줄 수만 있다면, 그마저도 좋으니.


 내가 소띠여서 나는 죽도록 일을 해야 살 수 있다. 안 그래도 일복은 차고 넘친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아서 붙잡았던 일도 있고 사람은 그냥저냥인데 그 일이 좋아서 붙잡은 것도 있다. 뭐가 됐든 일복 하나는 타고났는데 아무래도 소고기는 되기 싫은 내 팔자가 아닌가 싶다. 소는 일을 멈추면 죽는다, 도살된다. 그 총기 어린 눈망울로 쳐다봐도 결국 누군가의 식탁으로 올라가는 삶. 지나치게 극에 달은 이 비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기 위해 죽도록 일하는 듯싶다. 이렇게 합리화해야 오늘 하루가 힘들었어도 그러려니 넘긴다.


 기가 막히게 꼬인 팔자는 내 안일한 책임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일 벌린만큼 수습하지 못하고 카드 돌려막기 마냥 쳐내고 쳐내다 보니 꼬여버렸다. 이제는 보기 드물지만 여전히 나는 줄 이어폰을 사용하는데 마음이 급하면 꼬여버리듯, 지금 내 심정과 행보 모두 그렇다. 그래도 여전히 줄 이어폰이 좋은 건 지나치게 편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그것도 나름 푸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흥미롭게 줄을 풀던 시절은 다 옛날이지만.

이어폰


 호기롭게 줄 이어폰만 사용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온 할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충동구매해버렸다. 만족스럽냐 물어보면 당연지사 "YES"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간사한가? 뱀 새끼처럼 보여도 괜찮다. 생각보다 편하고 자유로와 행복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자 기기는 나에게 늘 행복을 줬던 것 같다. 시대를 거슬러, 나에게 첫 MP3가 생겼던 날과 물려받은 전자사전은 그야말로 "뉴 유니버스"였다. 닌텐도와 노트북이 생겼을 때는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폰을 처음으로 구매했던 날에도, 올 초에 노트북을 할부로 긁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6개월을 버틸 때도, 행복했다. 내 것이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RPG 게임에서 내가 서버 1위를 먹었을 때랑 유사하다.


 그때의 행복과 향수를 느끼고 싶어서인지 이전에 사용했던 전자기기들은 오롯이 서랍 안 켠에 위치한다. 때로는 너무 큰 짐이라 여겨져 처분할 때도 있지만 내 글을 꾸준히 읽은 분들은 아시다시피,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버려지기 싫어 결핍을 과감하게 배제한 나는, 한 아름 안을 수 있는 최대한을 안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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