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haps Love》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운
이 글은 국내 유일의 OTT 미디어, <OTT뉴스>에 2월 24일 자로 기고된 글입니다.
"Perhaps Love”라는 영제는 과거 드라마 <궁(2006)>의 OST가 떠오르게 한다. “사랑인가요, 그대 나와 같다면 시작인가요”라는 말은 안타깝게도 ‘그대 나와 같다면’이라는 전제가 성립되어야만 했다. 사랑은 아닌데 대충 로맨스인, 내용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로맨스란 장르를 곁들인. 배우 조은지의 장편 연출 데뷔작, <장르만 로맨스(2021)>다.
감독: 조은지
장르: 드라마/코미디
개봉: 21. 11. 17.
시간: 113분
연령제한: 15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 518,071명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글로 먹고사는 작가지만 7년째 작품을 내지 않고 있는 현(류승룡 분)이는 심란하다. 옛 동료인 남진(오정세 분)을 오랜만에 만났더니 타박을 하질 않아, 동거인 유진(무진성 분)은 현이에게 은근슬쩍 빈정거린다. 얼추 취한 상태로 전처 미애(오나라 분)을 만났다가 눈이 맞아버렸는데 “이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자마자 아들 성경(성유빈 분)이 봐버린다. 안 그래도 여자 친구가 임신했다며, 헤어지자고 해서 성경도 심란했는데 보고 싶지 않은 친아빠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사실 미애는 현이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 순모(김희원 분)와 애인 사이다. “생긴 건 누아르인데 행동은 로맨스”인 순모의 다정함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지나친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사람 자체가 좋아 비밀스럽게 순모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순모의 완벽한 계획 하에 미애는 “출장인 척”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고 성경에게 혼자 잘 있으라는 말만 남긴다. 성실할 이유가 없었던 성경은 곧바로 학교 “땡땡이”를 시전 하는데 그러던 중 이웃 정원(이유영 분)을 만나 얼떨결에 같이 놀게 된다.
한편 현은 갑작스레 본인의 집에 온 유진과 술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다 유진의 고백을 듣게 된다. 마음을 표현한 건지, 존경을 표현한 건지 애매한 상황 속에서 취하게 되고 다음날 일어나 보니 유진은 없고 유진의 습작만 있었다. 알고 보니 유진은 현이 강의하는 대학교 학생이었고 창작의 고통 속에 헤매던 현은 유진과 함께 작품을 내기로 결정한다. 현은 유진의 옥탑방에서 작품을 위한 동거를 시작한다.
미애와 순모는 여행 도중, 현의 이야기가 주가 되면서 싸우게 되었고 결국 미애는 순모를 뒤로한 채 혼자 복귀한다. 성경은 자칭 배우, 정원이 혼자 방에서 연기하는 것을 듣게 되고 본인을 좋아한다고 오해하면서 사랑을 위한 고백을 준비하는데 정원의 남편이 이를 보고 성경을 때리면서 경찰서 신세를 지게 된다.
현과 유진의 작품은 성공적으로 출간되었지만 남진이 둘의 사이를 모종의 관계로 언론에 유출하면서 유진은 숨고 현이 혼자 당황하게 된다. 경찰서에 있던 성경을 데리고 집으로 가던 중, 현은 미애와 순모의 관계를 알게 되고 패닉 상태였던 성경이 현의 본처(류현경 분)에게 모든 관계를 일러바치면서 현은 미애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또다시 이혼하게 된다.
갈등은 파도와 같아서 한 번에 쏟아졌지만 무너지지 않은 관계도 있었다. 미애는 읍소하는 순모를 다시 만나기로 결정하고 현은 유진이 알려준 여행 장소,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에서 숨어 다니던 유진을 다시 만나게 된다.
종종 생각하던 이야기인데 모든 인간관계에는 “플러팅”이 필요하다. 플러팅(Flirting)이란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유혹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단순 이성 관계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적당한 플러팅,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매력 어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플러팅이 성공한 인간관계와 실패한 관계, 두 종류를 모두 보여준다. 미애와 순모, 유진과 현은 서로가 매력이라고 여기지 못했던 부분을 차차 알아가면서 관계를 이어가게 된 경우다. 반면 미애와 현, 성경과 유진은 솔직하지 못한 서로에 의해 혹은 오해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너진 관계다. 현의 대사를 빌리자면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사랑은 관계를 위한 수단일 뿐, 사실 관계가 가장 중요하단 말이다.
영화는 앞서 서술한, 네 커플의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타래처럼 꼬인 관계는 어느 순간 끝을 맞이하는데 어느 그룹은 달달하지만 대부분 쓴맛이다. 특히 “처음엔 사랑이란 게 참 쉽게 영원할 거라 그렇게 믿었었는데”라는 가사의 한 구절처럼 성경의 첫사랑은 제법 잔인하게 끝이 난다. 하지만 연애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고 마치 “호봉”처럼 경험이 쌓이고 쌓여 더 성장하는 법이다. 성경은 그렇게 TV 속 정원을 보고 소소하게 기뻐한다.
남진과 유진은 동성을 좋아하는 성소수자 역할로 등장한다. 유진은 이성애자인 현을 동경하고 사랑하며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거침없는데 이런 유진을 보고 남진은 “걔랑 우리가 똑같을 거 같아”라며 나무란다. 유진은 “좋아하기만 하는 게 범죄인가요”라며 현이에게 신세한탄을 하지만 둘의 관계는 사랑처럼 진전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의 여지를 남긴, 호감의 관계가 이어질 뿐이다.
조은지 감독은 사실 배우다. <달콤, 살벌한 연인(200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등을 통해 스크린에 등장했던 조은지 감독은 단편 영화 <2박 3일(2016)>을 통해 메가폰을 잡더니 이번에는 장편 영화 데뷔전을 훌륭하게 치렀다. 배우 출신 감독답게 다소 정신없을 수 있는 등장인물들의 역할과 개성을 보기 좋게 다듬어냈다. 마치 콩트를 하듯이 한 공간에 있는 두 배우는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지만 연속적이지 않고 시간 차를 두고 연기한다. 이런 연출은 연극처럼도 보이는데 이 효과 덕분에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서사에 집중하게 되고 그들의 캐릭터성을 좀 더 쉽게 파악하게 된다.
각본의 김나들 작가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학원 강사 출신의 김나들 작가는 <장르만 로맨스> 시나리오를 통해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영화 시나리오마켓 2분기 우수작을 수상했고 조은지 감독과 함께 첫 작품을 출범하게 되었다. 본래 영화는 제목은 <입술은 안돼요>인데 류승룡 배우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이 가제가 원체 자극적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은지 감독과 김나들 작가의 만남은 은근슬쩍 흘리는 복선과 독특하고 재밌는 서사로 신선하고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한국판 코미디의 특이한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