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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Apr 28. 2022

부끄러운 아들 탈출기

4살 때도 컴퓨터가 좋았다. 프로게이머든, 프로그래머든 했어야지!

부끄러운 아들 탈출기

결국 존버가 답이다


 개미들이 성공하면서도 실패하는 이유는 ‘존버’로 귀결되는 희망고문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결국에는 잘 될 거야”라는 뉘앙스의 말 따위는 큰 위로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의 관계에 대해선 늘 낙관적이었다. 과거 우리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넌 듯한 느낌이었고 티는 잘 안 나지만 관계 단절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행복 근사치를 쌓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행복해지는 건 어려워 보였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조차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운함과 섭섭함은 마치 이자처럼 쌓여 어느새 터질 거란 우려만 켜켜이 모아놨다.


 그러다 누나의 결혼식을 앞두고 과거 엄마, 아빠의 신혼 시절의 홈 비디오를 복원하게 되었다. 복원 전부터 기분이 오묘했는데 일단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과 누나의 유년기를 볼 생각에 설레면서도 무서웠다. 무서웠던 이유는 딱 하나, 과거는 이렇게 행복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란 후회가 휘몰아칠 것을 우려했다. 소싯적에 카메라를 만지던 아빠의 취미 덕에 10년 정도의 시간은 약 10시간 정도로 압축되었고 우리 가족의 가장 화목했던 초석을 볼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우리에게 “하지 마”란 말을 하지 않았다. 누나와 나는 그들을 엄청나게 부르고 귀찮게 했다. 그럼에도 한사코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았다. 누나는 지금보다 더 활동적이고 외향적이었으며 나는 지금보다 더 노래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장난기 섞인 아빠의 캠코더 안에는 우리의 미소가 있었고 이를 보던 엄마는 첨언하며 전후 사정을 흥미롭게 설명했다. 우리는 화목했고 나는 그 속에서 자랑스러운 아들처럼 보였다.

이건 그냥 귀여우니까.

 지금도 그런가? “그렇다”라고 말하는 건 우리 엄마 아빠뿐이겠지. 실은 아닌 거 다 안다. 지방 국립대 졸업을 앞두고 있는 졸업반 만 24세 — 무려 2년이나 젊어지는 효과를 낳았다! — 남성은 아직도 친인척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관심은 생각보다 사랑이 부족해서 본의 아니게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상처를 주는 주원인이면서도 유일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함 속에서 유감스럽게도 후자에 가까운 인생을 살고 있다. 또 그렇게 선택했다.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하라’고 아빠는 말하지만 눈치 없이 더 철없는 선택과 무계획 속에 살고 있다.


 문득 누나가 대단하다. 첫째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모두 다 짊어졌고 길을 터놨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걷기 수월해졌다. 내가 그 길을 걷지 않았고 또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건 나와 우리의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엄마는 내가 더 성공하지 못함에 “누나만큼 지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그만큼 지원해주지 않았기에 그나마 떳떳했다. 나를 지지해주지 못함에 아쉽기도 했지만 내가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 것이 더 미안할 뿐이다. 나는 그릇이 기대보다 작아서 밀어줬다 한들 누나보다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은 그런 사람이어서 엄마, 아빠, 누나에게 미안하다.


 부끄러운 아들의 남은 소명은 ‘안녕과 평화’ 일뿐이다. 그간 자존심을 부려 가며 내 뜻대로를 고집했다면 이제는 그 아집을 내려놓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가면을 쓰려고 한다. 매형이라는 새로운 식구가 생기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나는 아직도 사람이 무섭고 우리 엄마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가정을 위해 인간관계를 희생한 우리 엄마는 마음을 쉽사리 열지 못하게 되었고 나 역시 사람 앞에 소심하고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내가 조금만 용기를 내면 우리 엄마도 조금은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고 최근의 가족 행사는 이런 나의 발칙한 생각 속에 진행되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뿌듯함과 가면의 피로는 또 다른 나의 소명이 될 것이고, 앞으로도 가능하면 오랫동안 쓰려고 한다.

디자인 작업이란 건 끝도 없이 어려웠다. 눈물만 펑펑

잠시 꿈꾼 캐나다


 어학연수 공지가 뜬금없이 올라왔다. ‘해외축구’ 블로거로 살면서 한 번쯤은 영어권 국가를 가보고 싶었고 또 제주도가 아닌 외국행 비행기를 타보고 싶은 욕망에 지원 마감 3일 전에 지원했다. 어학 증빙 서류가 당연히 있어야 했지만 그런 거 하나도 없이, 그냥 학점 하나로만 믿고 때려 넣었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 어학 증빙 서류가 의무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한 것이었지만 당연히 차순위로 분류되었고 그렇게 캐나다 캘거리를 떠나보냈다.


 ‘내가 영어로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지원 전후로 계속해서 해봤다. 약국에서 일할 적에는 이 근방 외국인 손님들은 나만 찾았고 그래서 우리 약국에는 러시아부터 시작해 몽골, 우크라이나 등 다국적 외국인들이 구글 번역기를 들고 오지 않아도 되었다 ―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다 ―. 또 발음이 조금만 좋다면 외국 인터뷰 자료 정도는 어느 정도 들었고 이해할 줄 알았다. 대답함에 있어서는 바디 랭귀지가 수준 급이라는 자만감이 있으니 어떻게든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진짜 토익 점수 빼고 다 있었다. 사실 토익 점수도 있는데 유효 기간이 지났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가 없는 게 온당하다. 미달일 줄 알았던 내 지원 파트에는 인원이 꽉 찼고 그렇게 내 마지막 어학연수 기회는 사라졌다. 6월의 캐나다를 꿈꾸며 이것저것 알아봤던 나는 토익 시험 일정이나 알아봐야 하는 현실에 숨이 다시 꽉 막혔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기회가 있어선 안 된다. 그게 정당한 방법이니까. 내 잘못이니 아쉬워할 것 없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단 한 곡 밖에 없지만 노아님의 노래는 진짜 좋다.

아껴 먹는  있어요


 반찬의 딜레마.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일정한 효용 가치를 달성하면서 합리적으로 밥을 먹기 위해선 ‘메인 반찬’과 ‘서브 반찬’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그러나 대개 나는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이라 맛있는 걸 아껴두는 편이다. 난중에 남들에게 뺏겨 먹었을 때나 아, 이러지 말 걸 하며 후회하는 편인.


 남에게 쉽게 뺏기지 않는 카테고리가 하나 있다면 아무래도 글과 음악인 거 같다. 선점을 해서 남들에게 공유하는 것도 행복인 나머지 좋은 글과 좋은 음악이 있다면 한 발 앞서서 찾아내고 남들에게 영업한다. 웃긴 얘기지만 상대방이 싫어한다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다만 좋아할 때, 엄청난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좋은 글과 좋은 음악은 내 주변 그 누구보다 먼저 알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었다. 저렴한 취미기도 하고.


 달력을 주신 작가님의 블로그는 아주, 아주 개인적이다. 개인적이어서  글의 모토처럼 남의 일기장을 뺏어 읽는 느낌이지만 그래서 내적 친밀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동경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친해질  있다는 행복은 나에게 마약과 같았다. 그래서 소소하게 연이 닿은 예술인들 — 이인서, 김세(KimSe), 시몬이, 석주, 다나 (Dana Kim), 이진하, 위성웅, 노아(Noah) — 로부터  행복과 영감을 느낀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일상을 공유당하는 느낌은 제법  쾌락이다. 대부분은 ‘하트 그치는 편이지만 사족이라도 다는 순간의 행복은 더할 나위 없다. 그렇다, 나는 “예술  변태.


 음악적 취향이 넓으면서도 확고한 편인데 피라미드처럼 좋아하는 장르는 점점 범위가 작아진다. 이런 장르적 까다로움을 만족시켜주는 —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마치 10년 지기 같은 — 사람이 있는데 그보다 내가 먼저 좋은 노래를 발견했을 때의 행복도 있다. 이래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미쳐 날뛰었나 싶다. 취향은 사적인데 나로 하여금 상대가 갈라진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그렇다, 나는 “예술 뽕 변태”다.


 아껴 먹는 미학도 있다고 본다. 계란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고 얼추 먹었을 때 사르륵 흘러내리는 그 맛을 사랑한다. 중간 즈음 흘러내리는 게 가장 시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가장 훌륭하다. 그렇게 아껴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비범하지만서도, 그 경우를 가장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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