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브레

13. 리브레

#273 볼리바르

by 조이진

시몬 볼리바르

  올드 아바나는 두 개의 길을 중심으로 퍼져있다. 하나는 오비스포가 주재하던 산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쿠바 총독의 근무 공간을 이은 오비스포 길이다. 이 길을 대주교와 총독이 서로 오가며 아메리카 전체를 통치하는 정치와 행정, 경제, 종교, 종교재판을 결정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기 전까지 이 길은 아바나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길이었다. 다른 하나는 메르카데스의 길이다. 쿠바에서 대형 설탕 플랜테이션이나 광산을 소유하고 무역하는 크리오요 사업가들이 모여 살았던 부촌이다. 아바나가 라틴 아메리카 행정과 종교의 중심이었으므로 총독과 대주교와 가까이 있으려는 라틴 아메리카 사업가들의 중심이기도 했다. 메르카데스의 길 한가운데 시몬 볼리바르의 저택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 해방 혁명의 아버지 시몬 볼리바르. 처음에는 백인크리오요 중심의 혁명을 시도했지만, 유색인의 참여 없이는 독립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유색인도 독립세력으로 참여시켰다


  시몬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 라틴 아메리카 북부지역의 독립을 이끈 해방의 아버지로서 남미 전역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볼리바르는 토지, 노예, 광산 등을 소유한 베네수엘라 재력가 크리오요였다. 그의 주도로 1811년에 베네수엘라는 독립했다. 볼리바르가 작성한 베네수엘라 독립 헌법 초안은 그때 크리오요들의 생각을 잘 보여주었다. 가톨릭을 국교로 하고 노예제를 유지하며 시민의 권리는 오직 유산 계급의 백인 메스티소에게만 허용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물라토나 인디오 같은 유색인이나 가난한 자들까지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가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페닌술라레스 대신 크리오요로 지배 계급이 교체될 뿐이었다. 그때까지 볼리바르는 백인 크리오요가 만들 나라를 위한 독립 혁명 지도자였다. 볼리바르에 분노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크리오요든 이베리아인이든 메스티소든 피부 하얀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더욱 중요하게는 독립 전쟁에서 백인 크리오요 숫자만으로는 스페인을 이길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볼리바르는 흑인과 물라토를 백인들이 여전히 소유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추진할지, 유색인들을 해방하여 독립운동에 끌어들여 빠르게 독립을 이룰지 고민했다. 아바나의 지식인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 볼리바르와 부르주아 엘리트 크리오요들은 노예제를 유지한 채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리바르는 원주민과 흑인, 물라토까지 모두 해방해 다 함께 주인이 되는 독립으로 혁명 노선을 바꿨다. 그 결과 라틴 아메리카 곳곳에서 빠르게 스페인군을 항복시킬 수 있었다. 1820년까지 대다수 라틴 아메리카 스페인 부왕령 들은 오늘날과 비슷한 국경으로 독립했다. 라틴 아메리카 독립을 원주민과 흑인, 물라토, 메스티소, 크리오요가 함께 이루어냈다. 모든 인종이 함께 투쟁해 독립혁명을 이룸으로써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하고 인종 간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콜럼버스의 카리브 침략에서 시작한 식민지 300년 역사였지만 무너지는 데는 10년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1822년 시몬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이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이 마무리되고, 스페인은 아메리카를 잃었다.

  에콰도르에서 44세의 산마르틴과 39세의 시몬 볼리바르가 마주 앉았다. 배석자는 없었다. 나폴레옹처럼 아르헨티나에서 안데스산맥을 넘어 칠레를 거쳐 페루까지 해방하며 남에서 북으로 진군하여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산마르틴. 마주 앉은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에서 시작해 콜롬비아, 파나마, 에콰도르 전체와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일부까지를 연방으로 한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 공화국 대통령.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갈래 정치세력은 공화주의자인 그를 절대 신임했다. 두 젊은 지도자는 페루의 정치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담판했다. 둘이 왜 배석자 없이 회담했는지 역사는 알지 못하며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도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담판은 실패했다고 선언되었고, 황제를 원했던 산마르틴은 쓸쓸히 유럽을 떠돌았다. 두 지도자가 마주 앉았을 때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은 완결되었고 스페인도 카리브 섬을 제외하고는 아메리카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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