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세실리아
세실리아 발데스
19세기 쿠바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세실리아 발데스Cecilia Valdés>는 1830년대 쿠바를 배경으로 여주인공 세실리아 발데스는 밝은 피부색의 물라토 아가씨로 흑인 노예인 어머니와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자이자 노예상인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아버지에게는 법적으로 인정되는 아들이 있었고 아들은 아름답고 지적인 세실리아와 사랑에 빠졌다. 세실리아가 이복남매간인지 모른 채…. 가난한 처지의 흑인 음악가도 세실리아에게 필사적으로 사랑을 고백했으나 세실리아는 그의 사랑을 거절하고 돈 많은 백인 아버지를 둔 아들의 아이를 잉태하는데….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세실리아가 배다른 남매라는 것이 밝혀지자 남자는 세실리아를 버리고 백인 상류층 여성과 혼인하기로 했다. 세실리아는 복수를 계획하고 자기가 거절했던 흑인 음악가에게 복수를 부탁해 결혼식 날 흑인 음악가는 아바나 대성당 계단에서 그 남자를 살해해 처형되고 세실리아는 투옥된다는 줄거리의 이 소설은 연재를 시작한 초반부는 로맨틱 소설로 시작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는 쿠바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반영해 노예제의 끔찍한 현실을 깊게 파고들었고, 식민지 사회에 엄격하게 존재하는 계급적 위계와 인종 차별의 현장을 치밀하게 포착했다. 소설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 자명한 세실리아 발데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부르주아라는 이기적이고 냉혹한 종족의 괴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그 시대 쿠바의 모습을 온전히 압축한 실상을 그려낸 이 소설에는 물라토와 크리오요, 스페인에서 온 백인, 흑인, 노예, 노예 소유자 등 쿠바에 있었던 모든 계층이 나온다. 각자의 이상, 지나온 과거, 서로에 대한 극단적인 편견 같은 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작가는 노예 폐지론자의 시선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갔다. 소설의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총독 타콘은 스페인 제국을 전복하려 한다는 혐의로 그를 추방했고 그는 미국에서 작품을 계속 썼다. 실제로 그는 미국에서 스페인 제국을 전복하려고 활동했다. “나를 죽여도 쿠바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라며 처형당했던 나르시소 로페즈의 참모가 된 작가는 2차례나 쿠바 침공 전투에 상륙한 필리버스터이기도 했다. 또 다른 작가가 쓴 소설 <사브Sab>도 흑인 노예제도를 고발한 대표적인 소설이었다.
쿠바의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한 지식인 작가들이 활동한 1830년대에 타콘 대극장이 들어서고 프라도 대로가 정비되고 센트럴 아바나 신시가지가 새로 조성되고 있었던 아바나는 아메리카 대륙의 정치, 문화, 예술의 중심일 뿐 아니라 유럽에 대척하는 구심점으로써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쿠바와 카리브 섬을 제외한 라틴 아메리카 대륙은 모두 독립을 마친 상황에서 쿠바 지식인들은 자유와 독립의 열기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내셔널리즘을 근간으로 한 해방 공간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에 고민하고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유럽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원주민 다이노나 아프리카인의 후손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민족 단위로 국가가 형성되고 있는 세계사의 시대 공간에서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자신들에게 민족이란 무엇이며 어느 유색인까지를 자기의 민족으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정체성과 설정 기준은 큰 고민이자 논쟁의 주제였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아르헨티나에서는 앵글로·색슨이 메스티소보다 우월한 인종이므로 앵글로·색슨이 지배하는 미국의 보호 우산 아래로 들어가 미국의 사상과 체제를 이식하자는 움직임도 일어 아르헨티나의 백인들은 원주민과 메스티소를 대량으로 학살했다.. 그리고 그들을 대체하기 위해 유럽인들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대부분이 교육받지 못한 최하위층들이 들어왔다. 특히 이탈리아인 부랑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스페인 출신보다 더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했다. 1914년 아르헨티나의 인구 중 40%가 유럽에서 태어난 자들이었고 원주민은 완벽히 소멸하였다. "우리는 원주민도 유럽인도 아니다. 이 땅의 합법적인 소유자인 원주민과 침략자인 스페인인 사이 중간쯤에 있는 메스티소다. 법적으로야 식민모국이 속한 유럽인이지만 태생으로는 아메리카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땅의 소유권을 놓고 원주민과 다퉈야 한다. 그러면서도 유럽 침략자에 맞서 이 땅에서 우리의 지위를 지켜야 하는 이중의 갈등 한가운데에 있다.” 당시 신문에 게재된 이 칼럼은 이 시기 라틴 아메리카 지식인들의 고민을 압축해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