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브레

13. 리브레

#275 남북전쟁

by 조이진

남북 전쟁

쿠바를 스페인에서 오려내서 노예제를 운용하는 미국 남부 주의 하나로 병합하려는 필리버스터들이 쿠바에 계속 상륙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페인이 노예제를 폐지해 버리기 전에 쿠바를 먼저 병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쿠바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면 그 여파로 미국 남부에서도 노예제가 폐지될 터였다. 쿠바 문제는 곧 남부의 문제이기도 했다. 취임식에서 쿠바를 병합할 것을 선언한 피어스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미국의 군사력은 취약했으므로 무력 합병보다는 쿠바를 매입하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필리버스터링은 스페인에 적대감을 조성할 뿐이고 자기의 계획을 어긋나게 하는 행위일 뿐이었다. 그때 스페인 왕실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으므로 스페인은 쿠바 매각을 놓고 미국과 가격을 협상하는 테이블에 앉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측 협상 대표는 스페인이 쿠바를 매각하지 않는다면 싸워서 쫓아내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힌 “쿠바, 사지 못하면 훔친다”라는 부제를 단 오스텐드 선언문 원고를 흘렸다. 미국이 새로 매입한 쿠바에서 노예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여주는 이 문서는 미국 전체를 포화에 휩싸이게 하는 불씨가 되었다. 그동안 미국은 북위 36° 30'을 기준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북쪽의 연방에서는 노예제를 불법으로 하고, 이남에서는 남부의 노예제를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해 왔다. 그런데 북부 출신으로 노예제를 옹호한 민주당 피어스 대통령이 그런 사회적 타협안을 폐지하고 미국 전체 연방에 노예제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오스텐드 선언문이 유출됨으로써 미국을 노예제의 폐지와 유지 세력으로 분열하게 했다. 그 여파로 북부에서 노예제를 서부에까지 확대하는 법에 반대하는 노예제 반대 운동가들이 공화당을 창당하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첫 공화당 출신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국의 노예를 둘러싼 전쟁은 쿠바 노예를 둘러싼 전쟁이기도 했다.


남북 전쟁은 미국의 노예 전쟁이었지만, 쿠바 노예의 미래가 걸린 전쟁이기도 했다. 남부에서 노예제가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쿠바에서 노예제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 맞닿아 있었다. 미국이든 쿠바든 노예 소유주들은 노예들이 공민권을 갖는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노예제를 폐지한 흑인 공화국이 나오면 미국 남부의 백인 지배 체제도 마침표를 찍게 될 운명이었다. 결국 노예제 존폐를 두고 벌어진 남북 전쟁은 미국과 카리브 노예들의 운명이 동시에 걸린 전쟁이기도 했다. 스페인에 그대로 남을 것인지, 미국이나 영국의 연방에 속할 것인지, 아니면 독립할 것인지는 쿠바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는데 그 사안의 핵심은 노예제 존폐 문제였다. 미국은 미주리 합의로 노예제에 대해 현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쿠바도 현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북전쟁으로 미국 노예제의 향방이 갈릴 테지만 또한 쿠바의 미래도 함께 결정될 것이었다. 쿠바는 전쟁의 향배를 주목했고, 어느 편이든 줄을 서야 했다. 쿠바에서도 링컨 지지자들이 많았다. 노예가 많았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가자, 링컨. 진군하자 링컨. 당신이 우리의 희망이라오”라는 가사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아바나의 부두 노동자 흑인들은 그들을 구원할 북부군의 전황 뉴스에 귀를 기울였고 소식을 전파했다. 연극을 관람하던 링컨이 뒷머리에 총탄을 맞았다. 노예제를 지지하는 배우가 쏘았다. 쿠바도 침통했다. 쿠바 여러 도시에서 사람들이 통곡하며 링컨의 사진을 들고 검은 리본을 달았다. 12살 소년 호세 마르티도 삼베로 짠 천을 두르고 애도하며 노예제를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했다. 수적으로야 부족했지만, 쿠바 안에서 영향력이 강한 집단은 남부 연합을 지지했다. 심지어는 스스로 완전히 무장하고 남부 연합군으로 자원하겠다는 지지자들도 많았다.

다운로드 (28).jpeg 쿠바의 국부 호세 마르티. 그가 12살 때 링컨이 죽었다.

링컨은 남부 항구 봉쇄령을 내려 남부 경제를 마비시키려 했지만 남부를 지지하는 쿠바인들은 남부 연합의 깃발을 단 배가 쿠바의 모든 섬에 정박할 수 있게 지원했고, 그 배들에 군수물자를 싣거나 상업 행위를 도왔다. 남부의 배는 대량의 면을 싣고 와 팔고 총과 탄환 등 군수물자와 군자금을 실어 떠났다. 쿠바가 남부 연합을 위한 후방 공급 기지가 되었다. 남부 노예 소유주 가운데는 전쟁으로 노예라는 자산을 손실하지 않기 위해 쿠바에 실어와 플랜테이션에 팔기도 했고, 노예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두기도 했다. 전세가 남부 연합에 불리해지니 노예를 싣고 쿠바로 이주한 플랜테이션 소유자도 있었다. 북부군이 그런 배 한 척을 나포했는데, 수레 400대에 나눠 실을 만큼 많은 수의 노예가 타고 있었다. 전쟁 중에 어느 플랜테이션을 방문한 미국인 여성은 흑인 노예들이 모두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를 말해 놀랐다고 했다. 법적으로는 쿠바에 노예를 들여오는 일은 불법이었으나 이를 문제 삼는 쿠바 당국자는 없었다. 그런 쿠바를 미국 남부 연합은 3개의 주로 쪼개 새로 미국 연방에 편입하려 했다. 북부에 비교해 수가 부족한 남부 연합이 주를 늘려 상원의원 숫자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아바나의 호텔 잉글라테라.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 노예주들이 이 호텔에 머물며 쿠바에서 노예 사업을 도모했고, 아바나의 휴양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링컨이 암살당한 해에 남부 연합은 북부 연합에 항복했고 미국에서 노예제는 폐지되었다. 쿠바를 병합하겠다는 남부 노예주들의 꿈도 깨졌다. 프라도 가도에 있는 잉글라테라 호텔 은 곧 있을 전쟁 범죄자 처벌 재판을 피해 도망쳐 온 남부 연합의 전쟁 주도자들이 모인 피난처였다. 이들은 여기서 시원한 샴페인을 마시며 열대의 뜨거움을 식히고 과거의 영화를 회상하고 또 미래의 정치를 토론했다. 쿠바의 노예 소유자들도 이 카페에 모여들었다. 남부의 농장 소유자들은 노예제가 유지되고 있는 쿠바와 브라질로 이주해 플랜테이션과 노예를 매입해 운영했다. 새로 이주한 남부인들은 쪽빛 파도 부서지는 백사장을 따라 시원하게 뻗은 대왕 야자나무가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끝에 카리브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흰색 단층 저택을 지었다. 그렇더라도 미국에서든 쿠바에서든 노예의 주인으로 남고 싶었던 미국 남부인들의 꿈은 부서지고 있었다. 쿠바 합병론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1868년에 쿠바도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오는 일을 끝냈다. 그 자리를 마카오, 홍콩, 상하이 등에서 데려온 8년짜리 계약 노예 ‘치노chino’들로 대체했다. 치노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청나라 왕실에까지 알려지자 중국 관리들이 직접 쿠바를 방문해 중국인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조사했다. 조사보고서에는 ‘구타, 불법적 계약 연장, 음식을 주지 않고, 휴식 시간을 주지 않고 임금을 주지 않는’ 등 광범위한 불법 사용 실태가 기록되었다. 중국 조사관은 조사 동안에만도 20명이 자살했다며 “그들은 스스로 벽에 머리를 찧어 죽고, 나무에 목매달아 죽고, 심지어 설탕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뛰어들어 죽었다”라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 충격을 받은 청나라는 1874년에 인력 송출을 금지했다. 쿠바로 이주한 남부의 노예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손익 계산 때문이었다. 쿠바에서도 전쟁이 일어나 손실이 발생할 것이었다.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쿠바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백인들은 아름다운 저택을 남겨두고 떠났고 그들이 데려온 흑인 대다수는 쿠바에 남았다. 그들이 스페인도 없고, 노예도 없는 새로운 쿠바가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쿠바를 위한 전쟁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노예에서 해방되기 위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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