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도미니카누스
도미니카누스
사냥개 도미니크가 죽었다. 그만 죽은 것은 아니고 이단이라 단정된 알비파도 모조리 불에 타 죽었다. 사냥개가 100년 동안 이들을 태웠다. 도미니크 수도회가 만든 ‘그리스도의 군사’들의 행동과 조직 그리고 심문 방식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종교재판의 표준이 되었다. 표준화된 스페인 재판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 잘 전파되었고, 카리브와 멕시코, 페루 등 아메리카에서도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도미니크의 어머니는 태몽으로 횃불을 입에 문 개 한 마리가 배 속에서 나와 온 세상을 불태운 꿈을 꾸었다고 한다. 스페인 바로크 화가 클라우디오 코엘로Claudio Coello가 그린 <성 도밍고 Santo Domingo de Guzman>(1685)은 도밍고의 태몽을 그린 그림이다. 훗날 세상 사람들은 그가 만든 도미니코 수도회를 도미니카누스Dominicanus라고 했다. ‘주님의 사냥개’라는 라틴어 ‘도미니 카니스Domini canis’에서 따온 이름이다.
도미니카는 잉태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개로 나와 개로 죽은 자인 셈이다. 그가 죽은 지 100년쯤 지나자 스페인 전국에서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사제복을 입은 도미니카누스들이 사람들을 물어뜯었다. 그중에서도 아라곤의 종교재판은 가장 잔인했다. 아라곤에서 이단은 알비파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알비파가 다 불태워 사라지자 이제 유대인들이 재판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 모슬렘도 남아있었지만, 스페인 종교재판은 그들을 겨냥하지 않았다. 애초에 종교재판은 로마가톨릭 교황에게 도전하는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시작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단들을 추방했다. 물론 몇몇을 불태우기도 했다. 많은 이단 혐의자가 로마 교회와 교황을 믿는 것으로 ‘화해’했다. 신이 아닌 교회 지도자를 믿어야 하는 기독교의 전통이 굳어졌다. 그러던 아라곤의 화형식이 빠르게 잔인해지기 시작했다. 사제라는 이름의 주님의 사냥개들이 사탄을 섬긴 자들과 마녀들을 기소하고 심문했다. 왕과 어린 왕자, 그리고 두 명의 추기경이 재판을 주관했다. 이단들을 직접 심판했다.
도미니카누스들은 이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분노를 전달하는 소임을 지닌 사제들이라는 자격이었고, 사제단 복장을 한 기독교 자경단이었다. 교황이 그들에게 권능을 부여하고 뒷배가 되었다. 교황의 권위에 근거하였으므로 권한은 무소불위가 되었고, 사냥감을 정하면 곧바로 사냥을 시작했다. 이 개들은 다른 동료 사제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추기경들도 기소할 수 있었다. 그 권한을 교황이 주었다. 교황의 친위부대인 셈이다. 공공의 질서를 수행하는 자들public order라는 뜻의 폴리시아Polícia가 처음 탄생했다. 사냥개들은 물어온 사냥감을 가둘 감옥도 독자적으로 운영했다. 국왕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 독자적인 사법권을 행사했다. 훗날에 이 종교경찰은 비밀 정보요원 조직이 되어 지방의 토호 성주와 귀족, 교회 지도자들도 공격했다. 이들의 맹활약으로 봉건 영주 체제가 해체되었다. 왕권을 강화하고 싶어 한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국왕 부부에 충실한 도구가 되었다. 종교재판이 유럽 곳곳에 크게 성행하면서 폴리시아도 함께 복제되었다. 교황의 사냥개 폴리시아가 유럽 전체를 절대 군주체제로 체질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군주의 권력도 강화되었지만, 폴리시나를 친위부대로 둔 교황이 절대군주들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폴리시아가 지키고자 한 공공의 질서는 가톨릭교회가 중심인 교리의 질서였다. 또 세속에서 교황의 권력을 옹위하고 교황 중심의 세속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본질이었다. 경찰은 그렇게 탄생했다. 수레의 두 바퀴가 완성되었고 동전의 앞뒷면이 정해졌다. 군주의 왕권과 바티칸 권력은 하나가 되었다. 신의 개 도미니카누스가 촉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