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계시록
계시록
그리스 파트모스Patmos섬은 터키 에페소스 앞바다의 아주 작은 섬이다. 오래된 파트모스 수도원의 작은 동굴 벽에는 사람의 다섯 손가락 자국 같은 홈이 깊게 패어있다. 사도 요한이 그의 생애 말년에 이 동굴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묵시록을 썼다고 알려진 동굴이다. 그가 기도하면서 늙은 몸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짚어 생긴 손자국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가 붙어있는 동굴이다. 이 동굴의 천장 바위는 쩍 갈라졌다. 요한이 신의 계시를 받을 때 계시와 함께 신의 음성이 들리면서 그렇게 찢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까지 가미되어 있으니 그 분위기는 더욱 성스럽다. 충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진정 하느님의 존재와 기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요한계시록을 쓴 저자는 예수의 사도 요한이 아니라 동명이인 요한이라는 것. 중세 신학자들은 다른 평범한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성서 편집에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해야 한다고도 논의되었다. 영어 이름 존이 그렇듯 요한은 그 일대에서는 흔한 이름이었다. 파트모스섬에 유배당한 사도 요한이 기도한 일은 사실이겠으나, 그 동굴의 천장 바위가 찢어질 때 함께 펼쳐진 환상과 환청 그리고 신의 계시를 적은 것이 요한계시록이라는 이야기는 신화적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중세에는 요한의 파트모스 동굴은 신의 예언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되었다. 계시록은 세상의 종말과 구원이라는 기독교 특유의 공포 의식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사도 요한의 유배지 파트모스 동굴은 찢어진 동굴과 손가락 자국에 이름이 같은 작가의 계시록이 한데 묶여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명소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에게해의 작은 섬 파트모스는 그리스의 기독교 성지 순례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사벨라 여왕도 파트모스섬 바위 동굴에서 쓰였다고 알려진 계시록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이사벨라에게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예수의 사도 요한인지, 동명이인의 요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당시 스페인에 널리 퍼진 종말론 추종자였다. 종말론은 요한계시록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이사벨라는 매일 열심히 기도하는 자였다. 심지어 매시간 기도하기도 했다. 그녀의 열성적인 기도를 주재하는 사람은 톤슈라tonsura 머리를 한 추기경. 추기경은 여왕에게 특히 요한계시록의 이 대목을 많이 읽어주었다.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되고 거룩한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두 번째 죽음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분과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다.” 이 구절도 여러 차례 일렀다. “그리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느님이 계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마치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영원히 사는데 그것도 천 년 동안은 또 왕으로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도 새로운 예루살렘을 하느님이 내려주신다고 하지 않는가? 꿈에도 바라던 바를 들었으니, 여왕은 듣기에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 추기경이 여왕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고해성사 때마다 여왕은 좀 더 열심히 이단을 처단하지 못한 자기 잘못과 새로운 예루살렘을 예비하는데 게으름과 미련함을 고백했고, 죄 사함을 구했다. 종말을 예언한 계시록은 진실이 되었고. 새로운 예루살렘 천년왕국에 대한 환상과 꿈으로 가득 찼다. 기도와 고해의 시간을 통해서 흔들림 없이 강고한 신앙심과 이단을 용서하지 않는 그의 결기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때 고해소에 마주 앉아있었던 추기경이 도미니크 수도회 토르케마다였다. 심지어 여왕은 도미니크 형제단의 세 번째 여성 형제가 되었다. 아무리 철권을 휘두를 수 있어도 여왕은 여전히 “Queen and Lady”였다. 이런 귀족들의 태도가 여왕을 더욱 강한 여자로 만들었다. 유리 천장을 뚫기 위해 더 가혹하고 호전적으로 되었다. 여왕은 도미니크 형제단을 사냥개로 썼다.
“그리고 하늘에 아주 신기한 광경이 나타났다. 한 여자가 해를 옷인 양 입고, 달 위에 발을 딛고, 머리에는 열두 별이 달린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 여자는 막 아기를 낳으려는 순간이어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 그 아기는 큰 권세를 가지고 장차 온 나라를 다스릴 분이었다. 그러나 아기는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갔다.” 고해소의 추기경은 요한계시록의 이 대목을 이사벨라에게 자주 인용했다. 이 구절은 일곱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분 다음에 나온다. ‘아들을 낳은 여자’, 이 표현이 각별하게 이사벨라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에게는 어린 아들 후안Juan이 있었다. 추기경은 후안을 하느님의 아들로 봉헌하자 했다.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고, 봉헌식이 있기 며칠 전 신비로운 일이 하늘에서 일어나 땅에 비추었다. 해가 갑자기 초승달처럼 작아지더니 순간 세상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스페인 전체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분명 대낮일진대 하늘에서 별이 반짝였다. 어린 후안 왕자도 놀랐다. 사람들이 성당으로 몰려갔다. 이제부터 심판이 날이 시작될 것이었다. 나를 들어 올림으로 구원해 달라고 울며불며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쳐댔다. 성당의 사제들은 아기 예수가 재림하는 징조라고 사람들을 위로했다. 천만다행으로 해는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 은혜로운 신의 은총이었다. 이날 예정된 개기 일식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추기경과 성당의 몇몇 신부들, 이사벨라 부부뿐이었다. 이날의 태양과 달, 지구의 배열 순서를 이들에게 알려준 이는 모슬렘 왕 하캄 2세가 코르도바에 세운 대학에서 천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다. 왕이 별자리를 연구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콜럼버스는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스페인을 떠났다. 그가 카리브의 어느 큰 땅에 오르고 그 땅의 이름을 후안이라 명명했다. 쿠바 섬에 붙여진 최초의 스페인식 이름이 후안 섬이었다. 콜럼버스의 사업 수완을 보여주는 예다.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세상. 유대 학살의 난세.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가 살아남자면 그 정도 머리는 쓸 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정말로 후안은 어린 나이에 하느님의 보좌 앞으로 들려지고 말았다. 육신은 부활하지 못했다. 재림 예수가 될 뻔했는데 부활도 못 한 채 죽어버린 어린 왕자의 이름을 떠올리는 일은 자애로운 어미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이다. 스페인은 후안이라는 섬 이름을 아반Havan이라고 바꿨다. 그 섬의 원주민들이 고을의 지도자를 부르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