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89. 금관

by 조이진

금관

구가나가리는 이 외교를 통해 의도하는 것이 있었다. 그는 가온아보에 원한이 있었다. 몇 해 전 가온아보가 구가나가리의 도전을 제압하고자 영역을 침범해서 구가나가리의 두 애첩을 잡아간 일이 있었다. 가온아보는 최고 권력을 가진 가시관이자 섬의 동쪽 지방 저라과Xaragua의 가시관인 비치오Behechio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해 동맹관계를 맺어서 이 섬의 절반 이상을 직할하는 가장 강한 세력이었다. 이 일로 절치부심하던 중에 마침 콜럼버스가 배를 타고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저승사자 콜럼버스가 자신을 잡아가러 온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가 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금붙이가 붙은 탈과 장식물을 주었더니 무척 좋아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제 숙적인 가온아보를 저승으로 잡아가라고 유도하고자 외교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가온아보를 제거한다면 비치오가 콜럼버스에게 복수하러 올 것이고, 그도 역시 콜럼버스가 저승으로 잡아갈 것이라 계산했다. 그렇다면 콜럼버스와 가까운 자신이 섬 전체의 가온아보가 될 것이라 셈했다. 가온아보의 영토인 지바우 계곡에 금이 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틀림없이 콜럼버스가 그곳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콜럼버스와 가온아보가 충돌할 것이었다. 한편, 콜럼버스로서는 구가나가리의 지원이 절실했다. 나비다드에 39명의 선원을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대적으로 황금을 확보할 채비를 갖춰 다시 나비다드로 돌아올 때까지 선원들은 금이 있는 곳을 찾아내서 금을 캘 채비를 마쳐야 했다. 그러자면 스페인 선원들에게 필요한 음식 등 보급과 지원을 구가나가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저승사자도 외교를 계속했다. 콜럼버스가 가시관에 스페인 무기를 보여주면서 그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자 아주 기뻐했다. 콜럼버스는 짐짓 돕겠다고 하면서 또 대포를 쏘았다. 기독교인의 대포 소리는 너무 무서웠다. 구가나가리를 비롯한 다이노들은 대포 소리에 놀라 죽은 사람처럼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적을 제거해 주면 더 많은 황금 탈과 많은 금이 나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콜럼버스는 구가나가리가 말하는 적이 다이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가리배Caribe 족일 것으로 생각했다. 설마 하니 구가나가리가 같은 다이노 민족끼리, 그것도 최상위 가시관인 가온아보를 상대로 정치적 음모를 꾀하고 있으리라고는 아직 상상하지 못했다.

WX20200325-154204.png 히스파니올라 섬 서북쪽이 가시관 구가나가리, 서쪽 아래가 가시관 비치오, 중앙이 가온아보가 통치하는 영역이었다.

콜럼버스는 구가나가리 가시관과 조약을 맺었다.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 “조약treaty”라고 기록했다. 조약은 국가 간에 체결하는 계약이다. 그는 자신이 스페인 함대의 제독으로서 스페인 국왕을 대신하여 앞으로 자신이 통치할 영토를 대상으로 상대방인 구가나가리 가시관과 국가 간 협약을 체결했다는 의미를 스페인 국왕과 교황에게 강조하기 위해 채택한 단어다. 조약의 내용은 스페인의 기독교인들이 동맹으로서 앞으로 구가나가리 가시관과 다이노들을 지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구가나가리는 매우 기뻐했다. 콜럼버스는 “우리의 무기를 크게 두려워하므로 그를 더욱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부서진 산타 마리아호 옆에다 롬바르드 대포알을 연신 발사하게” 명령했다. 가시관은 공포와 경이에 바들바들 떨었다. 콜럼버스는 다른 무기들도 보여주면서 이것을 쏘면 사람이 얼마나 어떻게 상해를 입는지를 설명하여 그가 잔뜩 겁을 먹도록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무기들이 그들을 가리배 족들로부터 지켜줄 것이니 더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두었다. 기독교인들이 가리배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노라고 손짓과 발짓으로 과장하여 설명했다. 콜럼버스는 너희들을 지켜주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떠나므로 남은 기독교인들이 너희를 지켜줄 것이라 했다. 그러니 이곳에 남을 기독교인들을 잘 모시라고 했다. 자신이 다시 돌아와 너희를 지켜줄 것이라고도 했다. 마치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39명의 스페인 선원을 남긴다는 투였다. 이들에게 약간의 보급품과 무기와 대포, 작은 보트 같은 장비를 남겼다. 39명에게는 금을 모으며 기다리라 했다.

“콜럼버스가 식사를 위해 배에서 내리려 할 때 구가나가리는 휘하의 하급 가시관 5명을 데리고 왔다. 그들 모두는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었다. 금관은 그들의 위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 금관을 본 콜럼버스는 하도 기뻐서 스페인 국왕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폐하께서도 이 모습을 보시면 너무도 만족하실 것입니다. 구가나가리 왕이 자신의 위대함을 더 잘 과시하기 위해 이들을 이렇게 치장해서 보냈습니다.’ 이 왕은 자신이 쓰고 있던 화려한 황금 왕관을 콜럼버스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콜럼버스는 자기 목에 걸려있던 산호 목걸이를 풀더니 왕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신고 있던 신발과 모자를 구가나가리에 벗어 주었다. 또 그가 차고 있던 큰 은반지를 빼서 구가나가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이 왕은 자신이 아주 부유한 자가 된 것처럼 기뻐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듯했다.” 이 기록 속에서 가시관들은 모두가 금관을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금관을 보고 콜럼버스는 기뻐서 스페인 국왕에게 편지를 쓸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 스페인의 박물관에는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금관이 한 점도 보존되어 있지 않다. 스페인은 광대한 식민지를 차지했지만, 박물관에는 아메리카에서 온 유물이 없다. 광신적인 기독교인들이었던 콜럼버스와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은 다이노들의 유물을 모두 이단, 악마, 사탄의 우상으로 보아 모두 불태워버렸다. 콜럼버스가 놀란 아름다운 금관은 녹여서 금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만일 이 금관이 단 한 점이라도 남아있었더라면 세계사는 전혀 다르게 설명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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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나가리 상상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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