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Addis Ababa, Ethiopia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www.pets4homes.co.uk/dog-breeds/yorkshire-terrier/
내일이면 아프리카의 첫 여행지이자 내 긴 여행의 시작을 함께한 아디스아바바를 떠난다. 저녁을 먹고 맥주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해야지, 형 컴퓨터에 사진 백업도 시켜놔야지, 짐 싸야지 할 일이 많았지만 느긋하게 맥주를 먹다가 일을 시작했다. 런던에서 도착한 이후로 짐을 사방에 펼쳐 놨더니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일 입을 옷을 제외한 나머지 옷들을 싸놓고 카메라 방수커버, 필름 등 자주 꺼내지 않는 것들부터 배낭 아래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배낭이 더 컸으면 좋았겠지만 다행히도 처음보다는 짐 부피가 조금 줄어든 것 같다.
고작 3주였지만 그새 정들어 버린 이 집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거실, 부엌, 화장실의 모습을 전부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가고 나면 이 집은 얼마나 더 썰렁해질까. 괜히 놀러 와서 민폐만 끼치다가 또 훌쩍 떠나버려 남은 사람만 더 적적하게 만든 건 아닐까. 형에게 미안해졌다.
나이로비로 떠나는 날 아침이 되었다. 나름 정든 집이라고 두어 번 뒤 돌아보며 작별을 했다. 사무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입구의 검색대를 통과하여 진무 형과 함께 터미널에 들어왔다. 사무장님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상과는 달리 체크인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린 지 5분쯤 됐을까. 우리 앞에 선 젊은 청년이 잠깐 화장실을 다녀올 테니 자기 짐을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흔쾌히 그러라고 하긴 했는데 금방 오겠다던 이 청년, 5분, 10분,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투덜거리며 그 커다란 캐리어를 계속 끌고 다녀야 했다. 이래서 사람은 단호하게 거절도 할 줄 알아야 하나보다. 하도 안 오니까 이 안에 무슨 폭탄이라도 든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공항 직원에게 이 짐을 넘기려는 그 찰나, 저쪽에서 그 청년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짐을 건네고 우리 앞이 아닌 뒤에 줄을 서게 했다. 이렇게라도 소심한 복수를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에티오피아에 머무는 내내 즐겨 마셨던 마끼아또를 한 잔 마시고 형과 작별했다. 나로 하여금 에티오피아에 오게 했고 숙식을 책임졌을 뿐 아니라 나이로비 숙소까지 해결해 준 형. 고맙고 미안했다.
여유 있게 게이트 앞에 도착했는데 보딩 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탑승이 30분 지연됐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30분 정도야 너그럽게 기다려 줄 수 있지.’
그렇게 30분이 또 흐르니 다시 나오는 안내방송. 뭐? 오후 1시 반에 보딩을 시작한다고? 기다리던 승객들이 술렁인다. 이유도 모른 채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니 짜증이 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뭣 좀 물어보려고 직원에게 갔더니 내 말을 듣기도 전에 딱 잘라 자기는 이 비행이랑 상관없다며 홱 가버린다. 이게 바로 너희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에티오피안 항공의 서비스 정신이란 말이냐!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어디론가 가기에 영문도 모르고 나도 따라나섰다.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래, 딱 점심시간인데 밥은 줘야지. 아까 잠깐 얘기를 나눴던 벨기에 사람이랑 같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쩌다가 이 친구와 개고기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는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백인 할머니들이 관심이 가는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다른 의도 없이 정말로 궁금한 것 같아 친절히 설명을 해드렸다.
우선 애완견과 식용개는 다릅니다. 다른 가축처럼 집에서 키우다가 바로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란 말씀이지요. 고로 어제까지 당신과 함께 뛰놀던 요크셔테리어가 털이 뽑힌 채 식탁에 올라가는 당신들의 상상은 오해입니다. 그다음은 맛입니다. 저도 두어 번 먹어봤는데 맛은 소고기와 비슷해요. 한국인이 입맛이 특이해서 개고기를 먹는 건 아니랍니다. 또한 한국에도 개고기를 못 먹는 사람이 많이 있고 개고기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한국 사람은 치킨을 더 좋아한답니다. 개고기 집보다 치킨 집이 100배는 많아요. 이제 좀 아시겠죠?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고개를 젓는다. 상상이 안 가는 모양이다.
시간이 되어 다시 게이트 앞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보딩콜은 들리지 않았다. 탑승이 1시 반에서 2시 반, 2시 반에서 3시 반으로 계속 지연됐다는 안내만 이어졌고 이유는 기체결함이라는 설명뿐이었다. 몇몇은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아예 포기하고 드러누워 자는 사람도 하나 둘 생겨났다. 형의 소개로 신세를 지기로 했던 분께 연락을 드려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긴 글렀으니 바로 집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4시 반이 되어서야 창밖으로 우리가 탈 비행기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보였고, 게이트 앞에 멈춘 지 1시간 반 후인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게이트가 열렸다. 대기한 지 8시간 만의 탑승이다. 그래도 결국 가긴 가는구나.
늘 비행기를 탈 때마다 옆자리에 또래 여성이 앉길 바라지만 결코 그런 일은 내게 발생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케냐 사람으로 보이는 수녀님이다.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구사하시는 그녀는 내가 대화를 포기하고 노트북을 켜니 비행기가 곧 착륙하니 전원을 끄라는 주의를 주셨다. 수녀님. 착륙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장시간의 대기 끝에 어렵게 케냐에 도착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매번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체 앞바퀴가 활주로에 닿아 착륙이 완성되는 순간,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몸도 피곤하고 혼자서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갈 생각에 짜증이 난 상태였지만 이들의 세리머니(?) 덕분에 기분이 약간은 풀어진 것 같다. 그렇게 난 다시 케냐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