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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환 Apr 14. 2017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말 것, 택시의 추억

보통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법 - Addis Ababa, Ethiopia

 비가 오는 어느 날 밤. 지인의 부탁으로 그분의 친구를 게스트하우스로 모셔다 드리기 위해 공항에 갔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공항에서 나오는 인파 속에서 한국사람을 알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탄자니아에서 오신 이 분은 머리 스타일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성큼성큼 택시기사에게 다가가서 흥정을 하는데 역시 아프리카 짬밥은 허투루 먹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몇 번의 가격 제시와 절레절레 끝에 우리와 흥정에 성공한 택시기사는 건들거리는 젊은이였다. 많은 택시기사 중 그가 가장 싼 가격을 불러 그의 택시를 탔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택시기사보다 몇 백원정도 쌌다. 싼 게 싼마이라고 했던가. 이 택시의 서비스 퀄리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졌다.


1. 택시기사는 시동을 걸자마자 좌석 아래에 둔 까만 봉지에서 짜트(마약류 식물)를 꺼내어 씹기 시작했다. 이때 바로 내렸어야 했는데 이곳에선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기에 그땐 그냥 넘겼다. 차가 속도를 내면서 점점 불안해졌지만 비 내리는 밤에 무작정 내릴 수도 없어 그가 짜트를 ‘천천히’ 씹기만을 바라며 앞좌석을 손으로 꽉 잡았다. 


2. 택시를 탈 때만 해도 한두 방울 정도였던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더니 이내 폭우로 변했다. 앞유리는 빗물에 뒤덮였는데 이 기사는 와이퍼를 켜지 않고 운전을 계속한다. 설마 와이퍼가 고장 난 거야....? 저래서 앞이 제대로 보이기나 하는 걸까. 게다가 헤드라이트는 미등처럼 왜 이렇게 약한지 반대편에서 차들이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몇 백 원 더 내고 멀쩡한 택시를 탈 걸 어쩌다 이런 택시를 타서.....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보기만 해도 감이 오는 택시 내부


3. 그 상태로 얼마쯤 갔을까. 로터리에서 차가 휙 도는 순간, 빗물과 함께 찬 바람이 택시 내부로 훅 들어왔다. 오른쪽 뒷문이 열린 것이다.


“으어아악!!!”


우리의 비명소리로 택시 안은 아수라장이 됐고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진 몇 초가 지나고서야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가. 주행 중에 차 문이 열리는 택시라니. 놀란 마음을 가라 앉히기도 전에 우리는 화부터 냈다. 


"문이 고장이 났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우리의 항의는 택시 안에 울려 퍼지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 이 망할 택시기사는 으레 있는 일인 것 마냥 뒤도 한번 안 쳐다보고 짜트를 씹으며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양반아, 문에 기대어 있었다가는 차 밖으로 튀어나가 도로에서 뒹굴다가 죽을 뻔했다고!


그 와중에도 사진을 찍는 걸 잊지 않았다


4. 열리는 문짝의 충격이 조금 가시니 이제는 택시기사가 우리를 떨게 한다. 아까부터 씹던 약 기운이 올라오는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자꾸 뒷좌석을 쳐다보며 말을 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제발 아무 말하지 말고 앞을 보고 운전에 집중해 달란 말이다. 우리가 무서워하며 사정하는 게 재미있었는지 그는 ‘110 비르 줘. 싫어? 그러면 120 비르’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며 슬슬 약 올리기까지 한다. 안 되겠다. 이대로 가다간 뭔가 더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위기감을 느낀 우리는 목적지 전에 세워달라고 하고 내려버렸다. 다행히 그는 약속한 돈만 받고 떠났다. 물론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텅 빈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걷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택시기사가 모는 차를 더 이상 탈 수는 없었다.


오늘의 교훈.

에티오피아 택시를 타면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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