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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Apr 16. 2024

파라칼레오 잡채

위로

파라칼레오라는 말은 헬라어로 “위로”라는 뜻을 갖고 있다. 파라칼레오는 '파라(곁으로)'와 '칼레오(부른다)'의 합성어로, “곁에 있도록 부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 옛날 헬라 사람들은 '위로'란 “이리 와~ 내 옆에 있어! 내가 곁에 있어줄게!" 하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곁을 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곁을 내주며 숨 쉴 수도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을 진정한 '위로'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예전에 어떤 지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갑작스러운 외동딸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몇 달 동안 집으로 찾아와 함께 있어 주었다고 한다. 어떤 위로의 말도 조언도 하지 않은 채, 그 친구는 매일같이 찾아와 묵묵히 옆에서 같이 책을 읽고, 같이 밥을 먹고 가곤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해 주었지만, 매일 본인 곁에서 아무 말없이 함께해 준 그 친구가 제일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오늘 남편을 파라칼레오(위로) 하기 위해 잡채를 만들려고 한다. 요즘 들어 너무 바빠 입술이 부르트는 남편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파라칼레오(위로)”는 잡채를 만들어 바치는 것이다. 위로가 듬뿍 담긴 아내의 잡채를 먹으면서 스트레스 확~ 날려버리고, 내 곁에서 숨 좀 고르라고~ ♡


잡채는 우리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이다.

잡채를 하는 날에는 밥 없이 큰 접시 한가득 잡채만 먹는다.

17세기, 잦은 전쟁으로 입맛을 잃은 광해군을 위해 이충이 잡채(雜菜)를 만들어 위로해 주었듯이, 나 또한 오늘은 이충이 되어 남편에게 당면이 든 잡채(雜菜)를 만들어 위로하고 싶다.


파라칼레오(위로)의 잡채 만들기


우선, 잡채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하자.


당면 500g, 고기(소고기나 돼지고기 안심) 200g, 당근 중간 크기 1개, 양파 중간 크기 1개, 시금치 한 단(부추로 대신해도 됨), 버섯 류(목이버섯,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등), 달걀 2알, 간장 10 밥 숟가락(간은 개인 취향대로), 참기름 적당량, 설탕 2 찻숟가락, 참깨  


늘 말하지만, 재료들은 각각의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특히 잡채에 들어가는 고명들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면 된다. 양 또한 본인의 취향대로 맘껏 취해도 된다. 단, 간만 맞으면 OK!  


1. 고기부터 양념을 해 놓자.


나는 잡채를 할 때는 주로 소고기(안심)를 이용하는데, 오늘은 돼지고기 안심이 냉장고에 있길래 그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잡채에 들어가는 고기를 뭔 소고기 안심으로 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왕 먹는 거, 한 번을 먹더라도 맛있게 먹자 주의이기 때문에 잠시 사치를 부려본다 ㅋ.

잡채에는 주로 안심을 쓰는 이유가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단순히 잡채를 먹을 때 비계가 씹히는 게 싫어서이다. 그리고 내 몸에 질 좋은 단백질을 제공하는 것 같아 왠지 뿌듯해서 ㅎ. 물론 식감 또한 Good!

어떤 고기를 사용하느냐, 어디 부위를 사용하느냐는 각 자의 입맛에 맞는 걸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정답이다. 고기를 안 넣어도 잡채는 배반을 하지 않는다. 그냥 Good이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는 고기를 제일 먼저 양념에 재어 놓아야 한다.

다른 재료들을 손질할 동안에 고기를 미리 양념해 놓으면 고기에 양념이 잘 배서 더 감칠맛이 난다.


돼지고기 200g 정도면 간장 밥 숟가락 3, 빻은 마늘(통마늘 3쪽), 간 생강(작은 거 2쪽), 배즙 100ml, 조청 밥 숟가락 1, 표고버섯 가루 찻숟가락 1, 다시마 가루 찻숟가락 1, 참기름 적당량, 참깨를 넣고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묻혀 재워놓는다.


2. 시금치를 데쳐 물기를 짠다.


물이 펄펄 끓으면 소금을 약간 넣고 시금치를 살짝 데친다.

소금을 넣으면 시금치의 본래 색보다 더 초록초록해지면서 선명해지기 때문에 더 신선해 보인다.

살짝 데친다...

이 표현도 참 애매하다. 어느 정도가 살짝인지를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다.

특히, '살짝' '적당량'... 이런 류의 단어들 말이다.

그렇다면... 음...

'펄펄 끓는 물에 시금치가 들어갔다가 너무 뜨거워 깜짝 놀라 부리나케 도망치듯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다고 하긴 했는데...ㅎ)


여하튼 물이 끓자마자 시금치를 살짝 데친다.

데친 시금치를 다시 기름에 볶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삶듯이 오랜 데치면 시금치의 아삭함이 사라지기 때문에 덜 맛있는 것 같다(치아가 약한 분들을 위한다면 좀 더 물컹물컹하게 삶아 잘 씹히도록 해야 한다).


다 데쳤다면 있는 힘껏 물기를 꼭 짠다.

음식을 만들 때 재료를 짜는 일 또한 아주 힘든 일이다. 특히 잡채에 들어가는 채소 종류는 물기가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는 힘껏 꽈아~악 짜야한다.

그런데 너무 힘을 주어 짜다 보면 손목과 손가락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손가락보다는 손바닥 전체와 손목에 힘이 가도록 짜는 것이 좋다. 아니면 불여튼튼이라고, 평소에 <손목 근육 키우기> 운동을 꾸준히 해서 무엇이든지 짜낼 수 있는 강한 손이 되면 더 좋고 ㅋ.

요즘 나는 신문물인 ‘음식 짤수기 ☺’를 만나서 모든 걸 거기에 짜기 때문에 이젠 무섭지가 않다 ㅎㅎㅎ.


3. 각 종 야채를 일정한 크기로 잘라 채를 친다.    

그대가 좋아하는 걸로 ㅎ


잡채에 들어가는 고기나 야채 모두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요리를 해야 한다. 크기가 들쑥날쑥하는 것보다는 일정하게 같을 때 요리의 완성도가 더 높아 보이고 정성이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잖나!


4. 2와 3의 야채들을 예열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살짝 볶아낸다.


5. 달걀을 얇게 지단을 부쳐 위의 재료들과 같은 길이로 채를 친다.


예전에는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해서 흰색 지단, 노란색 지단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꾀가 나서 그냥 다 섞어서 지단을 붙인다 ㅋ.


6. 1의 양념된 고기를 프라이팬에서 다 익을 때까지 볶는다.


7. 당면 삶을 물을 커다란 솥에 담아 끓인다.


이 작업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5 단계에서 불에 올려놓고 물을 끓이는 것도 지혜라면 지혜 ㅎ.

한 번에 두 가지를 해내는 능력! ㅋㅋㅋ.


8. 물이 펄펄 끓기 시작하면 당면을 넣고 끓인다.


잡채를 만들 때 이 작업이 제일 까다로운 것 같다. 당면이 삶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각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대략 7, 8 분 정도면 잘 삶아지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내 미각을 믿기로... 물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당면들 중에서 젓가락으로 한가락 꺼내 먹어보는 것이다. 당면이 씹혔을 때 질근질근 하지 않고 부드러운 상태면 아주 적당하게 익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실수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거의 맞는다(여러 번의 경험 끝에 얻어낸 노하우 ㅋ).


9. 다 익은 당면을 물기가 빠지게 체에 밭쳐둔다.


10. 당면이 적당히 식으면, 커다란 볼에 넣고 간장과 약간의 설탕을 넣어 빠르게 버무린다.


11. 10에 볶은 야채들, 고기를 넣고 버무린다. 


간이 부족한 듯하면 간장을 더 첨가하면 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간장을 들어부으면 고칠 방법이 없어 난감하다. 그러니 조금씩 간을 맞춰가며 간장을 첨가해야 한다.

간장의 양도 레시피를 그대로 믿지 말고 각 자의 입맛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여러 번 하다 보면 맛을 보지 않고도 색감으로 간장의 양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 파이팅!!!


12. 파라칼레오(위로)의 잡채(雜菜)가 완성된다.


11에 적당량의 참기름과 참깨를 넣고 버무리면 잡채가 완성된다.

그대 곁에 있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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