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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May 01. 2024

나는 파 집 막내딸이었다.

엄마의 자식 사랑법

'어! 우리 엄마 아냐???’

‘어???… 엄마가 왜???’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우리 엄마가 학교에 나타나셨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그때 그 현장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밭에서 그을어질 대로 그을어진 새까만 얼굴, 헝클어진 머리, 보라색 꽃무늬가 새겨진 펑퍼짐한 몸빼 바지, 꼬깃꼬깃한 카키색 블라우스, 무릎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전대. 거기에 멀리서도 보이는 커다란 뭉치 –신문지에 싼 커다란 파단–를 머리에 하나 가득이고서 긴 복도 저 끝에 우리 엄마가 보무당당하게 서 계셨다.

내 눈에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마치 적군의 장군 같아 보였다.


순간 나는 우리 엄마를 우리 엄마가 아니길 바랐다.

우리 엄마가 분명 맞긴 맞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이길 순간 거절하고 싶었다.

집에서 늘 보던 우리 엄마의 모습인데……,

학교 복도 한복판에서 파단을 이고 있는 엄마의 행색은 너무 초라한 나머지 생경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마음 가득히 창피했다.

엄마가 나를 보기 전에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두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너무 놀라서 그만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멍~~~~~~.


그런데

기다란 복도 저 끝에서 우리 엄마가 큰, 아주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다.


“숙재야~~~!!!”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마치 메가폰을 들고 

‘이숙재의 엄마인 내가 왔노라!’ 

크게 외치며 학교에 공표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오셨고(내 생각에는 엄마 목소리가 교실 안까지 들린 게 틀림없다),

어느새 내 가까이 와 서 계신 우리 엄마와 인사를 나누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왔어요!”

“아휴~ 잘 지내죠! 어머니!”

“선생님, 이 파 제가 직접 키운 거예요. 좋은 놈만 골라서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집에 가서 드세요~”

“아이고, 어머니! 뭐 이런 걸 다 가져오셨어요!“

“별 거 아니에요. 저희가 파 장사를 하거든요. 우리 아이 잘 부탁드려요~~~”

“에고… 어머니,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는 커다란 파 뭉치를 복도 바닥에 놓으며 연신 굽신거리듯 인사를 하셨다.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네~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시곗바늘이 멈춘 듯 모든 것들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떨군 채 두 분의 격식 어린 인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내 존재가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빨리 시간이 가기만 기다렸다.

긴 복도에 나만 홀로 서 있고, 나한테만 오롯이 조명이 비쳐 마치 벌거벗은 상태로 벌 받는 기분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한없이 작아진 내게 말씀하셨다.

“전에 작은 오빠 학교에 가 보았더니 눈도 나쁜 애를 글쎄 맨 뒤에 앉혀 놨더라고. 그래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물을 드렸더니, 곧바로 그 다음날 오빠를 맨 앞 줄에 앉히더라. 네 담임 선생님도 그 파 좋아하실 거야.”

“………………………….”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슬프고 속상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 속으로만 소심하게 외쳤다.


‘엄마, 다시는 학교에 오지 마세요! 창피하단 말이에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엄마를 생각하기보다는 내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낸다는 것조차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도 내가 창피해하는 걸 아셨던 것 같다.

마치 독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엄마는 손바느질을 하시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처럼 무심하게 툭 내뱉으신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급식 당번을 하기 위해 아이 학교에 간 적이 있다. 며칠 전부터 나는 딸아이가 혹시나 나이 많은 엄마를 창피해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최대한도로 젊게 보이는 옷이 무엇일까? 궁리에 궁리를 더했다. 이 옷도 입어보고, 저 옷도 입어보고, 입었다 벗었다...... 무한반복을 했다. 그리고 내 눈에 제일 젊게 보이는 옷을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학교에 가게 되었고, 무사히 급식 당번 일을 마쳤다.

집에 돌아온 딸아이에게

“다행스럽게도 친구들이 엄마한테 할머니라고는 하지 않더라. 다행이야. 하하하.”

“엄마가 왜 할머니야!”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었다.


나는 왜 딸아이처럼 우리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을까?

단지 남루한 모습의 엄마가 부끄럽고 창피하기만 했지, 엄마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들으면서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

그런 내가 너무 부끄럽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늘을 보며 외쳐본다.

"엄마, 물론이죠!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셨을 거예요!"

"엄마, 아주 잘하셨어요!"

"우리 엄마, 최고!!!"


엄마, 들으셨죠!






* 5월 16일.. 우리 엄마(친정 엄니)88세.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영원한 집, 하늘나라로 가신 날입니다.

보고픈 엄마를 생각하며 5월 17일까지 엄마와의 추억을 그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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