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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재 May 04. 2024

이제 대파 잘 먹어요!

엄마의 대파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대파 장사를 했다.

집에서 늘 대파 껍질을 깠고 볏짚으로 한 단씩 묶어 리어카에 실었다.

깜깜해서야 모든 작업이 끝나고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온 방안이 대파 냄새로 진동을 했고, 그 냄새를 맡으며 잠을 청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동안 대파를 먹지 못했다(대파의 쌉싸름한 맛이 좀 힘든 듯 ㅋ).

아니 안 먹은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음식에 들어간 파란 파는 모두 다 건져내 버렸다.

어린 시절, 대파 장사를 하셨던 엄마는 대파를 먹지 않는 내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혹시 서운한 마음은 들지 않으셨을까??? 궁금하다 ㅠ.

어쨌거나 이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고, 사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리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남의눈을 피해 커다란 대파는 슬쩍 꺼내 버릴 정도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음식을 하는 횟수가 늘어가는 동안 조금씩 대파의 맛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냉장고에 대파가 떨어질 날이 거의 없다. 사실 맛보다는 음식의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데코로 사용할 때가 더 많다. 요즘은 그 데코를 위해 대파를 냉장고뿐만 아니라 냉동실에까지 쟁여두고 있는 편이다.


음식 중에는 대파가 들어가는 순간 멋진 요리로 탄생하는 경우가 꽤 있다.

아마도 <대파 불고기>가 그중 으뜸일 것이다.

아님, 대파가 주인공인 <대파 김치>,

파릇한 대파가 고명으로 올라간 <떡만둣국>......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대파를 쟁여두는 습관 같은 게 생겼다.

그때마다 ‘역시 나는 파 집 막내딸이었어! 음하하하’ 속으로 웃곤 한다.


다른 야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래도록 마냥 대파가 그대로 있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다가 결국에는 썩어 버리고 만다 ㅠ. 그래서 대파를 한 단 사는 날에는 빠른 시일 내에 먹을 양만 남기고는 냉동실에 보관한다. 대파 한 단을 한 번에 다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오래도록 대파를 먹을 수가 있어 좋다.


대파를 냉동실에 보관할 때도 대파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종류에 걸맞게 모양과 크기를 달리 하여 썬다. 그렇게 하면 갑자기 빠른 시간 내에 음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손쉽게 대처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수육’을 삶는 데는 대파를 통째로, ‘두부조림’ 같은 데는 어슷썰기 대파를, ‘김치볶음밥’ 같은 데는 가로 썰기 대파를, ‘양념장’ 같은 데는 다진 대파를 사용한다(그냥, 내 방법일 뿐이다 ㅋ).


오늘도 대파 한 단을 샀다.

대파의 껍질을 벗기고, 뿌리는 잘라 실온에 말리고, 길게 썰기, 어슷썰기, 가로 썰기, 다지기 형태로 대파를 썰어서 각각 소분하는 동안 혼자 말을 건다.


‘‘엄마! 나 이제 대파 잘 먹어요!’’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엄마!’’


엄마, 나 이제 대파 아주 잘 먹어요^^






* 5월 16일.. 우리 엄마(친정 엄니)88세.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영원한 집, 하늘나라로 가신 날입니다.

보고픈 엄마를 생각하며 5월 17일까지 엄마와의 추억을 그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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