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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13. 2019

위기의 나짱

자전거를 못 빌리면 어떻게 위령비를 찾아다니죠?

  나짱은 베트남의 유명한 휴양도시다. Nha Trang이라고 쓰며, 알파벳이라고 생각하고 영어식으로 읽으며 나트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를 알파벳을 베트남에 알맞게 적용한 문자인 쯔놈식으로 읽으면 나짱이고, 현지 사람들도 그렇게 부른다. 다낭과 함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지 꽤 되어 이제 서점에 가면 베트남이 아니라 온전히 나짱 한 곳만을 다루고 있는 가이드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짱 중심가에 가면 한국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또 휴양지 특유의 여유로움도 가득하다.


  그리고 이 여유로운 나짱의 어느 밤, 나는 땀을 흘리며 헐렉벌떡 뛰어다녔다. 호치민과 나짱 사이 달랏에서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미니 버스를 타고 오니 저녁때가 되었다. 짐을 간단하게 풀고, 다시 나가 또 가볍게 저녁을 먹고 돌아와 여유를 부리며 리셉션 데스크에 물었다. 자전거를 빌리고 싶다고.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자전거가 없단다. 이러면 계산이 틀려지는데? 호스트에게 그럼 근처에 자전거를 빌릴 만한 다른 곳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가 난색을 표하며 말하기를 요즘에는 다 오토바이를 대여하지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은 없단다.


  위령비는 시내 중심가에서 훨씬 벗어난 곳에 있을 뿐더러,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몇 시간이고 헤맬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전거와 함께 하려고 했다. 분명히 블로그에서도 자전거를 빌려 여행했다는 후기를 읽었다. 최근의 글이었다. 숙소를 예약할 때도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예약을 했다. 그런데 빌려주는 곳이 없다고? 그럼 나는 어떻게 위령비에 가야 하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1. 어쩔 수 없지. 대세를 따라 오토바이를 빌린다.

  2. 돈으로 승부한다. 택시를 대절한다.

  3. 그래도 자전거 빌릴 곳을 찾는다.



  나는 장롱 면허 소지자다. 아마 지금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면 모르긴 몰라도 대형 사고 한 번 거하게 치고 나올 것이다. 미얀마에서 전동 자전거를 타 본 게 오토바이랑 비슷하다면 비슷한 경험일까? 친구는 운전은 조금 해 보았지만, 역시 오토바이를 운전한 적은 없다. 아무리 봐도 이는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선택이었다.



  2번? 택시? 택시이? 여행의 결정도, 준비 과정도 모두 급하게 처리해서 내가 모을 수 있는 돈은 안 입는 코트 주머니까지 뒤져도 100만 원이 최대치였다. 그러니까 항공권 35만 원을 빼고 비자며 뭐며 빼고 해서 6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으로 25일을 버티려면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은 15,000원~20,000원 정도였다. 3,000원에서 5,000원 사이의 도미토리에서만 묵고, 아침엔 조식을, 저녁, 점심은 큰 대접에 밥을 얇게 깔고 그 위에 여러 가지 반찬을 올려주는 현지식 ‘꼼’을 먹으면 별 무리가 없었다. 내일 같이 자전거를 타야 하는 날은 대여료를 포함하고도! 근데 택시를 하루 종일 대절한다? 일주일도 못 가 빈털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역시 여러 모로 3번을 고수하는 게 제일 현명해 보였다. 그래서 모두가 느긋하게 칵테일을 즐기고, 해변을 산책하는 나짱의 저녁, 구글 지도를 손에 들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검색과 블로그 후기를 다 뒤져 호텔 목록과 렌털 샵을 정리해서 순서대로 찾아다녔다. 그즈음이 오후 일곱 시였는데, 여덟 시면 대부분의 대여 가게가 문을 닫아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요즘은~’으로 시작하는 거절이었다.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옷만 땀에 푹 절어서, 숙소로 돌아온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나는 어떻게 시내 밖으로 나가야 할까? 정말 오토바이를 타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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