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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난돌 Jan 13. 2019

기차에서 받은 40만동

꾸이년으로 가는 길에서

  분명히 시작은 좋았다. 꾸이년으로 가는 기차가 세 시에 있어 그 전에 뚜이 호아 전쟁박물관도 가고,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사원도 보고, 딱 낮 열 두 시가 되어 체크아웃까지 세이브하고! 기차 시간까지 뚜이 호아에 온 첫 날 찜해둔 카페에 가 여행을 복기할 겸, 쉴 겸 코코넛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휴식까지 취했는데! 빈딘 성, 꾸이년으로 가는 기차에서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뚜이 호아 기차역에서 꾸이년까지는 두 시간이 미처 안 된다. 역시 어느 기차를 타느냐에 다르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 도시락 카트가 왔을 때 하나 주문해서 창밖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아 지도를 통해 내 위치를 찾았다. 내가 있는 곳을 나타내는 파란 점이 꾸이년 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디에우 찌(Dieu tri) 역. 나는 지도에서 디에우 찌 역과 꾸이년 역은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거리였다. 진짜 곧 있으면, 도착하겠구나……. 어쩐 일인지 기차는 좀처럼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거리인가? 갑자기 불길함을 느낀 나는 다시 내 위치를 확인했고, 세상에, 꾸이년역에서 아까보다 세 배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황급히 티켓을 꺼내자 목적지는 꾸이년 역이 아니라, 디에우 찌역으로 되어 있었다. 티켓을 예매할 때 꾸이년 역으로 검색하고 결제까지 했기에, 티켓을 두 번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었다. 아무래도 디에우 찌에서 내려 택시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가는 것이었나 보다. 내릴 역을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패닉이 오기 시작했다. 친구를 흔들며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자 다급함이 옆 자리의 아주머니들에게까지 전해진 것 같았다.

  아주머니들은 내 표를 대신 확인하더니 탄식을 내뱉고는, 얼른 빨리 승무원에게 가 보라고 손짓을 했다. 승무원에게 가는 길, 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제일 먼저 마주친 승무원에게 표를 보여주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부모님에게 빵점짜리 성적표를 내미는 자식처럼 눈도 못 마주치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일단 자리에 돌아가 있으라며 자신의 뒷머리를 사납게 긁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서 너 명이 되는 승무원이 우리 자리로 몰려왔다. 가장 선임처럼 보이는 한 명이 여행 중이냐고 묻더니, 왜 꾸이년으로 가냐고 물었다. 진짜 목적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구구절절하기에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는 꾸이년은 별로 볼 것이 없으며 더 위로 가서 호이안으로 가면 아름다운 곳이 많다며, 그럼 추가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와 친구는 당황해서, 호이안은 나중에 이미 갈 일정이 있으며 꼭 꾸이년에 가야 한다고 사정하듯 말했다.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른 승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그는, 그럼 꾸이년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알아봐주겠다고 하고는 돌아갔다. 아마 다음 역에서 내리면 밤 11시쯤 기차가 올 테니 그것을 타면 새벽에나 꾸이년에 도착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생긴 일이므로, 당장 내리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황송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기차표가 매진됐으므로, 버스표를 알아봐주겠다고. 우리는 무엇이든 좋다고 했다. 세 번째로 그가 돌아왔을 때는 처음처럼 여러 승무원과 같이 왔는데, 버스표도 매진이란다. 어떡하지, 하며 내가 눈알을 굴리자 그는 아는 택시 기사를 불러줄테니 다음 역에서 내려서 가라고 했다. 순간 나는 호치민에서의 첫 날 나랑 다투었던 쎄옴 기사가 생각나 한 번 멈칫하고, 택시비에 두 번 멈칫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우리가 처음 지나칠 역을 내렸다고 말한 승무원이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보자 40만동이 들려 있었다. 그는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며, 택시비의 반값이라며, 자기가 신경쓰지 못해 제대로 못 내렸으니 정말 미안하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곤 자신의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며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대로 얼어있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돌려주려 하자, 그는 갖고 있으라고 말하곤 다시 사라졌다. 이따금 옆자리 아주머니들이 위로를 전하며 무어라무어라 했지만, 나와 친구는 둘 다 허리가 꼿꼿이 경직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구도 나를 보지 않음을 느꼈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처음부터 확인을 제대로 할 걸, 몇 시간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의 호의에 이토록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어쩐지 자격이 되지 않는데 도움을 받는 것만 같아 떳떳하지 못하게 느껴진 까닭이다.

  천 년 같던 시간이 지나고, 다음 역에 도착했다. 바깥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고, 그는 역에 미리 와 대기하고 있던 택시 기사에게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돈을 건넸고, 그가 받아들어 잠시 속으로 안도했다. 그것도 잠시, 그는 그 돈을 다시 택시 기사에게 주며 얼른 따라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무사히 여행하라며 악수를 건네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깜 언(감사합니다)”가 전부였다.

  두 시간을 달려 꾸이년의 숙소에 도착하니 아홉 시 즈음이었다. 만약 그들이 돌아가는 기차를 타라며 그냥 내려주었다면 다음 날에나 도착할 수 있었을까. 호스트에게 잠시 전화를 빌려 그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했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자, 그는 다행이라며 짧은 인사를 하곤 전화를 끊었다. 나는 끊어진 전화기를 계속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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