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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보영 Sep 18. 2017

춘천 낭만시장과 막국수

부자여행 : 춘천편 #04

청춘열차는 가평, 강촌, 남춘천역을 들르며 대부분의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춘천을 목적지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적은 이용객에 비해 너무나 큰 춘천역은 도리어 초라해 보였다. 종점에 도착한 진우는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관광안내소에 가서 지도를 받아오는 것. 보이는 춘천역을 빠져나온 진우는 역광장 한편에 덩그러니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갔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난 그냥 밖에 있었다. 진우는 금방 지도 하나를 들고 나왔다.


숙소는 낭만시장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낭만시장행 버스를 탔다. 이번 여행은 아내에게 도시락을 부탁하지 않았다. 기차 이동 시간이 짧고 춘천에 도착하는 시간이 점심시간이어서 춘천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낭만시장에서 춘천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막국수를 먹기로 했다. 


역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숙소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춘천역 앞 버스는 대개 중앙시장을 지나며 목적지를 달리했다. 중앙시장이 첫 번째 목적지인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를 타기만 하면 되었다. 아무 번호나 먼저 오는 버스를 타면 되기때문에 금방 버스가 올 줄 알았지만 버스는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서울 혹은 도심이 아닌 지방이나 시골에서의 시간관념에 적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무뚝뚝한 버스는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탔을 법한 일행 몇 명을 태우고 곧 출발했다.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있어서 편하게 승차할 수 있었다.


버스는 그리 오래 달리지 않아 우릴 낭만시장에 내려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제법 시장티가 나는 육중한 건물이 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시장건물은 딱딱하고 다소 차가운 분위기였다. 낭만시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외관에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랴 싶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주 남부시장과 마찬가지로 그리 활기차 보이진 않았다. 어쩐지 재래와 전통의 어중간함이 편리와 효율에 밀려 쪼그라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같았다. 


시장통 중앙골목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볼 때보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식재료 앞에서 북적거렸다. 시장 상인에게 오늘이 장날인지 물었다. 장날은 내일이란다. 춘천도 5일장이 서는데 장날은 2일과 7일. 오늘이 26일이니 내일이 장날인 셈.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내일까지 여기 머물 우리에게 장날체험의 기회가 생겼다. 첫 목적지는 중앙시장인 낭만시장이고 내일 마지막 목적지는 풍물시장으로 정해 두었다. 시장 안 풍경은 여느 지방의 시장과 다르지 않았다. 시장 좌판의 물건들도 그랬다. 계절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한겨울의 시장은 비닐하우스 온실에서 자란 특색없는 농산물과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들로 넘쳐났다. 남도와 다르지 않은 북부의 시장풍경. 진우에게 춘천의 특색을 알려주려했던 내 계획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자의 한계 때문이리라. 채소와 과일이 나는 제철에 다시 와서 춘천을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평범한 시장풍경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작게나마 춘천을 알리는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닭갈비전문, 원조막국수 등의 간판을 단 식당들이었다. 때는 벌써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려하고 있었다. "진우야. 점심 뭐 먹을까?" 내가 진우에게 물었다.


몇 년 전 대구 이모집에 갔을 때 이모가 진우에게 뭐 먹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지나가는 말로 “대구에 왔으면 대구음식을 먹어야지”했다. 그걸 들은 진우가 이모에게 “대구에 오면 뭘 먹어야 되요?”라고 묻자 이모가 웃으며 “와? 대구 음식 먹어보게? 그래 대구 음식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진우 이모가 사주는 칠곡의 막창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춘천에 오면서 춘천의 대표적인 먹거리 몇 개를 꼽았다. 그 중에 우리 식사메뉴로 선정된 것은 막국수와 닭갈비였다. 한겨울에 막국수가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점심 한 끼 특색있는 국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는 내게 막국수 먹으러 가요. “춘천이면 막국수죠”라면서 내가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는 시장을 한바퀴 돌면서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시장의 메인 상권이 아닌 뒷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눈엔 잘 띄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간판과 허름한 건물 외관이 블로그 맛집과는 거리가 먼 식당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원앙식당. 문을 열면 알콩달콩 고소한 참기름 볶는 잉꼬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길 것만 같은 이름이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행자로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첫 순간이었다. 


열 평 남짓 되어 보이는 식당은 왼쪽 절반은 입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온돌좌식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보글보글 김을 뿜어내는 들통을 이고 있는 연탄난로가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한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인데도 입식 쪽 한 테이블에 손님들이 뚝배기를 하나씩 꿰차고 소주와 막걸리를 나누고 있었고 좌식 쪽 한 테이블에 손님들도 국밥 한 그릇에 소주를 한 잔 씩 들이키고 있었다. 그 때 두툼한 잠바로 무장하고 커다란 카메라가방과 배낭을 앞뒤로 맨 아빠와 알록달록 귀여운 배낭을 맨 아이가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우리 두 일행은 영락없는 여행자 행색이어서 식당 안 손님들은 우리를 신기한 듯 한참을 훑어보았다. 식당 내부는 연탄난로가 뿜어내는 온기로 뜨뜻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우를 온돌식 자리로 안내하며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앉자 다른 손님들도 다시 숟가락과 술잔을 들었다.

온돌좌식의 한쪽 편 장판은 옛날 시골의 아랫목처럼 시커멓게 눌어붙은 자국이 선명했다. 여기가 제일 따뜻한 자리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진우에게 아랫목을 내주고 메뉴를 살피는 척 하다가 원래의 목적대로 막국수 두 개를 주문했다. 한겨울에 냉면 주문을 받듯 식당 아주머니는 뭘 그런걸 먹느냐는 반응을 보이며 주문내용을 재차 확인했다. 말이 좋아 춘천음식이지 평범한 시장통에서, 그것도 관광객을 상대하기보다 시장상인과 인근주민을 상대로 하는 식당에서 아무리 춘천대표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겨울에 막국수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나보다. 그래도 여행자 행색의 이방인이 막국수를 먹어보겠다고 이곳까지 왔고 메뉴판에도 자리잡고 있는 음식을 내어주지 않을 도리 또한 없었으리라. 주문을 하고 옆 테이블의 그릇을 탐색해보니 모두 순대국이었다. 순간 아차. 잘못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미 주문도 했고 자리도 잡은 이상 다시 박차고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내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잘못된 선택었으니 좀 더 잘하는 곳으로 가자고 할 명분도 없었다. 그저 주문한 막국수가 먹을 정도만 되길 바랐다.


막국수가 나올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막국수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는 동안 진우와 나는 관광안내소에서 진우가 받아온 춘천지도를 펴들었다. 그곳엔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했다. 낭만시장의 원앙시장이 낄만한 데는 없었다. 일단 시장 인근의 볼거리를 탐색했다. 그러면서 진우에게 지도 보는 법과 여행 코스를 짜는 법 등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우리는 뚜벅이 여행자이므로 최대한 동선을 짧게 잡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곳과 다시 숙소로 돌아오기 위한 코스구성법 등의 노하우도 알려주었다. 진우는 관광안내지도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볼거리와 체험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동 거리와 시간의 제약 때문에 불가능한 것들이 많았다. 이것저것 우리에게 가능한 여행 일정을 짜보게 했다. 일단 우리는 시장 인근의 효자동 벽화마을과 어린이도서관 그리고 헌책방의 순서로 다니기로 정했다. 여행 전반에 대한 논의가 끝나갈 때쯤 막국수가 나왔다.


스텐레스 냉면그릇에 담겨나온 막국수는 소박했다. 하지만 막국수 특유의 진한 색 면 위에 곱게 뿌려진 깨소금과 채 썬 오이 그리고 삶은 계란 반쪽의 색감이 식욕을 자극했다. 무엇보다 참기름과 양념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에 입안은 침으로 가득했다. 같이 딸려 나온 따뜻한 육수도 진한데다가 구수해서 추운 날씨와 멋드러진 궁합이었다. 삶은 계란 반쪽을 밀어낸 후 가위로 면발을 몇 번 척척 잘라내고 슥슥 비벼 진우에게 내주고 먹어보라고 했다. 나도 서둘러 면을 잘 비빈 후 맛을 보았다. 면발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쫄깃하면서도 입 속에서 잘 잘려 먹기가 편했다. 양념은 달치근 하면서도 고소했고 고추장 특유의 텁텁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이 달지도 않았다. 배가 고픈 감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먹어 본 막국수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사실 춘천에 올 때마다 막국수를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옛날 춘천 명동에서 먹어 본 막국수는 그저 그랬었다. 서울이나 다른 곳에서 파는 막국수도 맛은 비슷비슷했다. 맛으로 따지면 이 막국수는 보통이었다. 특별히 입맛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을 유혹하는 기교가 없었을 뿐 재료들 하나하나가 가진 개성들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그냥 소박했다. 그런데도 이 막국수가 매력적인 것은 여느 관광지의 음식처럼 획일적인 맛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우도 계란을 한 쪽으로 밀어둔 채 국수를 흡입하기에 열중했다. 꼭꼭 씹어서 많이 먹으라는 내 얘기는 듣는지 마는지 먹는데 집중했다. 맛도 맛이지만 양도 상당히 많았다. 진우가 몇 젓가락 남길 정도로 많았다. 국수로만 배를 채우면 먹고 나서 나중에 밀려오는 포만감에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이 막국수는 밀가루가 아니라서 그런 일도 없다. 그저 기분 좋은 포만감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우리가 막국수를 먹는 동안 주인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냐, 아빠랑 여행다니니까 좋으냐, 몇 학년이냐 등등 호기심이 방언터지듯 질문으로 이어졌고 진우는 그때마다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쩜 이리도 말을 잘하느냐며 칭찬까지 덧붙였고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 중에서도 아빠와의 여행에 큰 관심을 가져 주었다. 


“멋진 아빠네~ 아빠랑 여행 다니니까 좋아?”

“네”

“어디서 왔어?”

“파주요”

“와! 멀리서 왔네. 아빠랑 여행 다니면 뭐가 좋아?”

“다 좋아요. 다른 곳에 가는 것도 좋고 새로운 음식 먹는 것도 좋고, 뽑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뽑기? 그게 뭐야? 아이구 귀엽고 말도 잘하네. 그래 몇 학년이야?"

“일학년인데 이제 이학년 올라가요”

“아이구 일학년이 이렇게 씩씩해? 어여 먹어.”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다른 손님들에게도 관심이었다. 다들 고개를 뒤로 젖혀 우리 얘기를 들으며 아이의 대답을 흐믓하게 지켜보았다. 아빠와 함께 하는 여행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느껴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곳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유년시절 아빠와의 추억을 한번쯤 떠올려 볼 수 있게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국수를 비우고 진우가 남긴 국수도 몇 젓가락 더 떠먹었다. 좀체 남기지 않는 녀석인데 양이 많긴하다. 꺼억 잘 먹고 따뜻한 육수를 한 컵 더 마신 뒤에 생각보다 저렴한 값을 치루고 식당을 나왔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가라는 덕담에 진우도 큰 소리로 대답하고 안녕히 계시라며 90도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아이구 인사도 잘하네 기특해라. 마지막까지 칭찬이 쏟아졌다.

난 진우와 연우에게 강조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건 인사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나가면 인사를 잘해야 한다거나 어른들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허리 숙여 해야 한다거나 잔소리하진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외출해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먼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곧잘 따라한다. 그렇게 수십 번을 인사를 하면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인사를 잘한다. 그래서인지 진우는 인사를 아주 잘하는 편이다. 꼭 두 손을 배꼽에 올려놓고 예의바른 배꼽인사를 한다. 심지어 어떤 편의점 알바생은 자기를 거들떠 보지 않는데도 꾸벅하고 배꼽인사를 한다. 진우의 이런 인사를 무시하거나 받지 않는 장면을 접하면 아빠로서 착잡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인사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우의 인사를 받은 사람들은 진우를 한낫 어린애로 대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려는 게 눈에 띤다. 그만큼 인사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난 진우와 연우에게 강조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건 인사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나가면 인사를 잘해야 한다거나 어른들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허리 숙여 해야 한다거나 잔소리하진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외출해 누군가를 만나면 내가 먼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곧잘 따라한다. 그렇게 수십 번을 인사를 하면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인사를 잘한다. 그래서인지 진우는 인사를 아주 잘하는 편이다. 꼭 두 손을 배꼽에 올려놓고 예의바른 배꼽인사를 한다. 심지어 어떤 편의점 알바생은 자기를 거들떠 보지 않는데도 꾸벅하고 배꼽인사를 한다. 진우의 이런 인사를 무시하거나 받지 않는 장면을 접하면 아빠로서 착잡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인사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우의 인사를 받은 사람들은 진우를 한낫 어린애로 대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려는 게 눈에 띤다. 그만큼 인사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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