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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만난 희열
과속과 신호위반
by
디타이거
Mar 21. 2023
가장 받기 싫은 편지를 받았다.
7명에게 꼭 전달해야 하는 영국에서 온 행운의 편지보다 훨씬 더 싫다.
예전에도 몇 번 받은 적이 있는데 기분이 아주 찝찝하다.
한동안 뜸해서 이제 더 이상 안 오나 했다.
하지만 결국 받고 말았다.
"위반사실 통지 및 과태료부과 사전통지서"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태껏 받은 편지는 4만 원짜리 속도위반 과태료였다. 그리고 기한 내 납부하면 20% 할인되어 3만 2천 원만 납부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 건 신호위반.
무려 7만 원에 할인도 없다.
범칙금 6만 원으로 납부하는 방법을 읽어보고 더 화가 났다.
통지서를 받을 줄 어떻게 알고 파출소에 자진 방문하거나 인터넷으로 고지서를 발부받으란 말인가. 차라리 현장에서 경찰에게 적발되었으면 6만 원인데 CCTV에 걸려서 속상했다.
하지만 찾아보니 범칙금은 벌점 부여에 보험료도 할증될 수 있다니 과태료가 나은 거 같다.
인생에도 속도와
신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성능에
맞는 엔진을 가지고 있다.
경차도 있고 중형, 대형 세단과 SUV, 스포츠카도 있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에 의해 차종이 결정되고 그 차의 성능 안에서 속도를 내어 달린다.
난 빠른 생이라 7살에 학교에 입학했다. 무슨 일이든 남들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최소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
성적이 별로였지만 재수하면 뒤쳐진다고 생각해서 전공과 상관없이 대학을 갔다. 첫 직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른 채 졸업하기 전에 일단 벤처회사에 취직부터 했다.
남들 가는 배낭여행, 어학연수도 악착같이 갔고 취미나 연애를 즐기기보단 그저 일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오히려 난 남들보다 늦게 가고 있었다. 공부도 늦었고 연애도 늦었다. 내 적성과 진로를 못 찾아 5번이나 직장을 옮기기도 했고 여전히 퇴직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나의 엔진은 업그레이드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앞서가는 차들을
따라잡으려고만
했다.
엔진이 과열되어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서야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섰다.
인생의 도로에서 빨간
신호등도 많이 만났다.
학사경고를 받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았다.
빨간 불을 만날 때마다 답답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내 인생엔 초록불만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설 때마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를 다잡고 다시 달릴 준비를 하며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결국 난 여기까지 왔다.
초록불에 달리고 빨간불에 멈춰 서고 다시 초록불에 달렸다. 난 늦지 않았다.
애초에 이건 경주가 아니었다.
다들 각자의 레이스를 할 뿐이다.
속도를 준수하고 신호를 지키며 각자의 엔진에 맞게 달리면 된다.
그 수고의 끝에 모두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길 빌어본다.
#글루틴 #팀라이트 #매일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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