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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Mar 07. 2023

집중력은 단순함에서 온다

아내는 게으르다.


아내가 구독하는 브런치에 이렇게 솔직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용기 있는 남편이 대체 누군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목을 보고 아내는 이미 눈치챘을 거다.

본인에 대한 칭찬이 이번 글의 주요 내용이겠구나라고.

맞다. 하지만 극적 재미를 위해 험담이 좀 더 필요하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결혼을 해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 서로 불편한 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신혼 초 서로에게 바라는 점 한 가지를 얘기해 보라고 하면 아내가 양말을 세탁기에 넣지 않고 아무 데나 벗어놓는 것을 꼽았다.

보통은 아내들의 불만사항 중 하나인 이것이 나의 불편사항이었다. 하지만 결혼 16년 차인 지금까지도 아내는 한결같다. 그래도 이제는 양말을 늘 같은 곳에 벗어놓는다는 게 조금 나아진 점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지저분한 편은 아니다. 자신의 몸을 씻고 가꾸는 일에는 그렇게 부지런할 수 없다.

화장대엔 화장솜이, 바닥엔 머리카락이 항상 뒹굴어 다니지만 매일밤 씻고 닦고 바르고 늘 정갈한 상태로 잠자리에 든다.




또한 아내는 심부름을 잘 시킨다.

일단 소파에 앉고 나서는 물이 먹고 싶다며 이미 소파에 앉아있는 나나 아이들에게 물 한잔을 배달시킨다. 가족이 모두 누워있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들면서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침대에 눕는다. 그러고 나서 불을 꺼달라고 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일단 당사자를 호출한다. 본인이 가는 법이 없이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매우 효율적으로 산다.


그리고 아내는 집중력이 좋다.

마루에 TV가 켜져 있으면 지나가다가 그대로 얼음이 되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는 게임이 생각날 정도다. 옆에서 아무리 불러도 TV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핸드폰을 들면 자동으로 기사를 검색한다. 메인에 있는 모든 기사를 한 번씩 눌러서 스캔을 완료하기 전까진 주위의 얘기를 잘 듣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답답할 수 있지만 언제든 한 가지 일에 푹 빠져들 수 있다는  큰 강점이다.

책을 펴면 딴생각부터 나서 진도가 잘 안 나가는 나로서는 여간 부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서점에 갔다가 아내를 주제로 쓴 책을 발견했다.

'원씽,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단순함의 힘'

책은 안 봤지만 아내를 보면 원씽의 힘을 알 것도 같다.

우리 가족은 자기계발 톡방을 운영 중이다.

각자 스스로 정한 미션을 매일 수행하고 자기 전까지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이다.

영어문제집을 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아내는 단연 가장 성실하다. 매일 자기계발 미션이라는 일이 머릿속에 정확히 입력되면 그때부터는 원씽이다.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간다.

아프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미션인증은 그저 하나의 루틴이 되어 시스템처럼 돌아간다.


스마트폰 세상이 되면서 왠지 더 바빠진 것 같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수많은 모임이 쉴 새 없이 멀티로 울려댄다. 사진과 영상의 홍수에 파묻혀 산다. 자녀 학교부터 학원까지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처리할 일 투성이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 속에서 과연 단순하게 사는 게 가능한 일일까.

어떻게 하면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을까.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인 이 책이 나오기 16년 전부터 아내는 원씽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고작 양말 따위에 손톱만큼의 에너지도 낭비할 수 없었던 거다.

자기 전에 물을 마시고 불을 꺼야 하는 하나의 루틴은 머릿속에 입력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거다. 대신해 줄 사람이 남편, 아들, 딸 3명이나 있는데 굳이?라고 생각했을지도.

TV를 볼 땐 TV에, 핸드폰을 볼 땐 그저 핸드폰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종료시간은 오직 내가 정할 뿐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실제로 아내는 책도 금방 읽고 공부해서 보는 시험은 거의 합격이다. 잠자리에서도 쉽게 잠든다.

아내를 보면 단순함이 곧 집중력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삶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고 쓸데없는 생각은 철저히 차단하는 능력. 그것이 아내의 경쟁력이었다.

양말은 꼭 세탁기에 넣어야 하고 항상 주변의 모든 일에 신경이 쓰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없는 고도의 집중력이 있다.


우선 한 가지 일에 집중해 보자.

3월의 원씽은 글쓰기로 정해봐야겠다.

근데 글을 쓰는 지금도 자꾸만 잡생각이 머릿속에 찾아든다.

우선 저 책을 한번 읽어볼까.


#글루틴 #팀라이트 #매일글쓰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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