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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an 18. 2018

아사다 마오란 이름의 용기

그녀의 트리플 악셀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떠나갔다. 2월 9일 평창 올림픽이 펼쳐내는 겨울 축제 속에 아사다 마오의 이름은 없다. 50개가 넘는 메달을 목에 걸었고, 세 번이나 세계 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 정상에 올랐지만 결국 올림픽 금메달 없이 빙판에 이별을 고했다. 초라하진 않지만 완성되지 않은 시나리오다. 어딘가 쓸쓸하다. 심지어 2015년 1년의 휴식기를 갖고 복귀한 시즌에선 거의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나 2016년 3월 영국 보스톤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에서는 7위라는 치명적인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스포츠는 메달의 색깔만으로 얘기되는 서사가 아니다. 메달 너머에, 혹은 메달이 없는 자리에 땀방울과 빛나는 눈물이 모여있다. 그리고 나는 아사다가 떠나간 자리에서 도전이라 불리는 이름의 용기를 본다. 메달과는, 순위와는 다른 차원의 성과를 본다. 아사다는 김연아와 다르다. 김연아가 자신의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아사다는 자신의 역량을 외연으로 확장시키는 스케이팅을 했다. 그녀가 트리플 악셀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사다는 '스포츠 대륙'이란 프로그램에서 '매해 같은 레벨의 연기를 하면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채찍질하다(攻める)'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내일을 견인하는 스케이팅, 자신을 어떤 정점으로 몰아가는 일, 그것이 아사다의 스케이팅이다.


  

물론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은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그녀의 점프는 자주 회전 부족 판정을 받았고 그렇게 더블로 다운처리 됐다. 점프를 시작하는 스케이트 날의 방향도 자꾸 틀려 감정을 자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단념하지 않았다. 트리플 악셀은 아사다의 스케이팅 그 자체였고, 스케이팅은 곧 트리플 악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트리플 악셀에 스케이팅이 가려져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녀는 휴식을 선택했다. 1년의 공백기를 갖고 지금까지의 자신을, 20년 넘게 계속해온 스케이팅을 새삼 재고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택한 건 방향의 전환이다. 연습에 임하는 마음을 바꿨고, 마음을 전환하는 방식에 변화를 줬으며, 자신을 지도하는 코치도 교체했다. 2011년 그녀는 타티아나 타라소바에게서 사토 노부오 코치에게로 옮겨갔다. 특기인 스텦에 공을 들여 표현력도 더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1년이란 시간의 공백은, 20년 넘게 계속해온 트리플 악셀이란 이름의 스케이팅은 새로운 시간에 적응하지 못했다. 6위와 9위 12위와 은메달 하나. 아사다가 남긴 마지막 시즌의 기록이다.


모스크바 호텔 방에 앉아 타라소바 코치가 스케이팅 연기에 대해 심사 평을 하는 장면을 넋놓고 바라보는 아사다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시즌 후 아이스 쇼에 참여하며 다른 선수들의 연기에 몰두해서 바라보던 표정 역시 떠나가지 않는다. 아사다 마오는 현명하지 못하다. 무엇이 이득이 되고 무엇이 실이 되는지 분간하는 것 역시 못한다. 그러니까 현실적이지 못하다. 달리 말하면 영특하지 못한 게 아사다 마오다. 하지만 누가 매번 레벨을 올려 도전하는 선수의 자세를 비난할 수 있을까. 현실 밖의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넓혀가는 태도를 평가할 수 있을까. 아사다는 웃음을 위해 연기한다. 그녀가 복귀를 결정한 이유도 웃으면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복귀 후에 결과가 밝기만 했던 건 아니다. 2016년 보스톤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에선 한 번 넘어졌고, 트리플 뤂은 회전을 다 채우지 못했으며, 심지어 트리플 악셀은 회전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스케이팅 그 자체인 트리플 악셀이 완전하지 못했다. 곁엔 남은 건 7이라는 초라한 숫자 뿐. 하지만 아사다 마오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나는 여기에서 홀로 고독하게 쌓아온 어떤 성과를 느낀다. 메달이, 순위가 자리하지 않는 어떤 곳에 피는 아름다운 꽃을 본다. 지난해 12월 호놀룰루에서 마라톤에 도전한 건 그녀의 또 다른 시작이다. 42. 195km를 달리는 경주에서 그녀는 자신의 목표인 4시간 30분에 조금 못 미치는 4시간 34분 13초를 기록했다. "15km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참아냈고, 20km에서 몸이 무거워졌지만 참아냈다. 그것의 반복이라 너무 힘이 들었다. 마라톤은 피겨와 닮은 것 같다'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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