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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Feb 10. 2024

별의 시간_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그저 나에게 주어진 길을, 삶을 살아 낸다

우리는 모두 이런저런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슬픔을 경험한다. 공통적으로는  마치 욕구는 당연히 충족돼야 한다는 듯이 개인의 욕구가 불발될 때 부정 정서를 경험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고통을 유발한 사건이나 이유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도 헤어나기 힘들 때도 있지만,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소한 일들로 지나친 고통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므로 내가 뭐라고 판단할 수 없지만, 때로는 환자가 주도적으로 자기 자신을 고통스러운 상태로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브라질의 여자 작가인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유작이다. 작가는 남자 작가의 시점으로 모든 하루는 죽음으로부터 훔친 하루라는 현실적인 삶에 대하여, 추하고 무차별적인 가난 속에서 비참하지만 결코 비참하지 않게 사는 젊은 여자의 삶을 적나라하고 무미건조하게 써 내려가면서 삶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작가가 조망하는 젊은 여자는 어린 시절 양친을 모두 잃고 고모에게 학대받으며 자랐지만 자신이 학대받고 자랐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살아간다. 삶에 대해 무능하고 순수한 그녀는 문제가 생겨도 도무지 해결책을 찾을 줄도 화를 낼 줄도 모른다. 부당 해고 통보에도, 불치병 진단에도, 남자 친구에게 헤어짐을 통보받아도 그저 다정하고 순종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화자인 작가와 독자는 공허감과 답답함, 분노를 느끼지만 결국 ‘그저 답이란 건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거야’라는 그녀의 세상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보고 통찰을 얻게 된다. 이 세상에 그것 말고 다른 답이 있을 수도 있을까? 다른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는 우리는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삶의 부조리 앞에서 어느 정도는 삶이 원래부터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살아낼 수 없다.


자기가 개인 줄 모르는 개처럼 그 여자는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몰랐고, 그래서 그녀는 불행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걸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며 심지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행복은 탄성을 일으키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고통은 자신을 발견하는 방도가 되어 앞으로 나가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알지 못했고,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 속에 작은 영광이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렇기에 객관적으로는 보기에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소소한 행복-라디오 듣기, 식은 커피 마시기, 장미 한 송이 사기-을 누릴 줄 안다.


보통의 인간은 모든 것을 향한 굶주림 속에서 꿈을 꾼다. 우리는 아무런 권리도 없으면서 그 모든 것을 원하고 욕구가 불발되면 분노한다. 보통의 인간인 작가나 독자의 눈으로 볼 때 비참한 사건만 연달아 경험하는 삶에 대해서 정작 그녀는 자신이 왜 항상 벌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든 일은 세상 이치에 따라 일어난 거라고, 뭘 위해 싸워야 하는지 모르는 나는 아무런 싸움도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현실의 삶을 사는 무력한 인간은 이 사회에서 나를 드러낼 때 설득력 있는 삶을 살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것들을 이루고, 열정과 그것이 가져다준 절망을 포함한 거의 모든 걸 체험해 보다 보면 결국 허무감과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느끼게 된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슬프고 또 조금씩은 외롭다는 진실을 가지고, 비어 있는 상태로 모든 걸 소유하려고 구하지 않고 그저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 삶의 일화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유난 떨지 않고, 혼돈을 경험하더라도 분노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정적을 통해 내 안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저 살아내는 것. 이러한 공백의 삶의 태도는 오히려 풍요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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