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속 정체성 상실과 회복
치매로 인해 신체는 정상적이지만 인지 기능의 저하로 생산성을 잃는 경우, 하반신 마비로 인해 신체적 제약으로 생산성을 상실하는 경우, 또는 우울증으로 인해 신체와 인지 기능이 정상적이어도 생산성을 잃는 경우가 있다. 병이 장기화되면 이러한 특정 기능 저하는 결국 다른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기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특성들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거대한 벌레로 변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을 상실함으로써 사회적 관계 역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단순하면서도 실존적인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유능한 가장이라는 ‘생산적인 존재’로 규정된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함과 동시에 생산성을 상실하자, 가족으로부터 무관심과 혐오를 받게 되는데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외부의 역할, 특히 생산성에 의해 정의되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가장 흔하게 해석되는 것 같다.
그러나 갑작스레 가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혐오스러운 거대한 벌레가 차지하게 된 가족들의 혼란과 충격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실제로 가족의 가장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의 방에서 커다란 벌레가 나타나 가족과 타인을 위협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 상황은 가족에게 큰 공포와 혼란을 줄 것이다. 벌레라는 외형 자체가 혐오감을 일으키는 데다,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벌레가 그레고르라는 근거는 그가 단순히 그레고르의 방에서 나타났다는 사실뿐이다.
사업 실패로 인해 가정을 위기로 몰아넣은 아버지는, 자신의 실패를 극복할 기회를 얻기도 전에 아들에게 가장의 역할을 넘겨주게 되었고, 그 결과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생활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성장 동기를 상실하면서 느낀 패배감은 아버지를 소파에 틀어박히게 만들었지만, 그레고르의 변신 이후 가장의 역할을 되찾으며 그는 점차 활력을 회복하고, 현재 자신의 수준에 맞는 일을 찾아내 재기에 성공한다. 어머니는 바느질 일을 시작하며, 동생 그레테 역시 판매원으로 취직해 가족이라는 팀 안에서 각자 자신의 몫을 담당하며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이는 가족이 서로에게 의존하기보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그레테는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그레고르를 돌보며 세심하게 그의 상태를 살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통의 부재 속에서 점점 지치고 만다. 이는 처음 가장의 역할을 맡아 가족을 부양하던 그레고르가 처음에는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을 주었지만, 점차 그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며 특별한 의미를 잃었던 것과 유사하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가족이라는 팀워크는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책임지고, 서로의 노력과 희생을 인정하며 지속될 수 있다. 힘들 때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알아차릴 수 없다. 만약 그레고르가 영업 일이 힘들고 버겁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면, 아버지도 다시 일을 시작할 동기를 얻고 가족의 재정 상태에 대해 더 잘 파악하며 부담을 분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점차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사고 능력도 퇴화하며,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레라는 사실을 완전히 수용하지 못한 채 가족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계속 가족에게 고통을 주며 집에 머물렀다.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실존의 방식을 찾지 않는 개체가 고립되고 도태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이는 정신적·신체적 문제로 가족에게 극단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 보호자가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실과 닮아 있다. 이러한 선택을 두고 모질다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실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퇴행을 통해 인간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인간은 삶을 지속해야 한다. 삶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며, 고통과 절망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이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존재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설사 그 방식이 남들에게는 모질고 비인간적으로 보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