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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Oct 30. 2022

눈에 보이는 질병

작년 생일에 아는 동생으로부터 책 <헝거>를 선물 받았다. 그녀가 몇 년째 참여하는 독서모임에서 책 물려주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세 번째 주인으로 이 책이 내게 온 것이다. 책을 돌려 읽은 사람들이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때 적은 추천 코멘트 쪽지와 함께. 쪽지 내용 중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가 평소에 의식을 하건, 하지 않건 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하고...' 


몸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에 산다는 것

책 <헝거>는,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로도 유명한 아이티계 미국인 '록산 게이'의 몸에 관한 자서전이다(그녀는 TED에서 <나쁜 페미니스트>를 강연 제목으로 연단에 서기도 했다). 이 책은 190cm라는 거구의 키에 유색인종 비만인인 그녀가 미국 사회를 살아가며 겪은 혐오적인 시선과 세상이 자신의 몸을 평가하고 다루는 방식 그리고 자기 검열의 긴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써 내려간 고백록이기도 하다. 록산 게이는 이 책에서 '다양한 몸에 대한 이야기*'가 배제된 사회에 저항하며, 자신의 몸 그대로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는 갈망과 동시에, 사회가 '정상'이라 규정한 사이즈와 표준화된 체형이 되어 사회에서 인정받는 틀에 수용되고도 싶은 심리적 허기도 동시에 여과 없이 드러냈다. 

*여기서 '다양한 몸'이란, 몸의 사이즈, 피부의 색깔, 장애의 유무 등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다 


표준적인 체형이나 맑고 깨끗한 피부에 대한 강박과 환상이 심한 사회일수록, 비만인과 아토피안은 자기 검열을 더욱 강화하게 되기도 한다.


비만인과 아토피안의 경험, 무엇이 비슷할까?

이 책을 쓴 록산 게이 당사자가 비만인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몸의 다양성' 중에서도 주로 '몸의 사이즈'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몸을 가지고 살며 그녀가 겪어낸 일련의 경험들과 때론 세상의 평가에 한없이 무너져 스스로를 검열하고 가둬버리는 자의식에 대한 고백이, 아토피안으로서의 나의 삶과도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비만과 아토피라는 증상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간에 이는 당사자가 좋건 싫건 간에 겉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 전시되기도 쉽다. 특히나, 표준적인 체형이나 맑고 깨끗한 피부에 대한 강박과 환상이 심한 사회일수록, 비만인과 아토피안은 자기 검열을 더욱 강화하게 되기도 한다. 더불어, '피나는 노력 끝에 정상화된 몸'을 신화화하는 미디어(대부분 의료계, 건강식품산업, 미용계에서 자주 이런 메시지를 발신한다)는 비만인과 아토피안들에게 '환경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개인의 자아상을 심어주기도 한다는데서도 닮은 구석을 찾을 수 있다.


표준적인 체형이나 맑고 깨끗한 피부에 대한 강박과 환상이 심한 사회일수록, 비만인과 아토피안은 자기 검열을 더욱 강화하게 되기도 한다.


예전 아토피안 환우 모임에서 어떤 분이 내게 말했다. "가끔 길 가다가 뚱뚱한데 피부가 좋은 사람이 옆에 지나가면 그런 생각을 해요. 아, 내가 저 피부를 가질 수 있다면 차라리 뚱뚱해지는 편이 낫겠다라고요." 반대로 길을 걸어오던 뚱뚱한 그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병'을 지닌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타인의 콤플렉스'를 자신의 질병과 대조하고 등가 교환하는 상상을 가끔 하곤 한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차라리, 저랬으면...', '아니... 저것보다는 이 편이 낫겠어...' '저렇게 편안한 피부를 가지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저 사람은 자기가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살아가기나 할까?' 오랫동안 질병을 앓아, 질병 자체를 자기 자신으로 내재화한 사람들의 몹쓸 버릇일지도 모르겠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면서도 쉬이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면에서 책 <헝거>는 결론이 지어지지 않는 흔들리는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책은 콤플렉스를 극복한 승리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요, 질병을 관리하거나 치유한 사람의 통찰이나 해법을 보여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그저 표준에서 벗어난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몸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려면서도 그것이 또 어떻게 한없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반복하는 고백록라는 말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해피엔딩이라는 선명한 결말보다는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증언이다. "삶은 완성될 수 없는 영원한 과정이라는 진실을 <헝거>보다 더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책은 드물 것이다"라는 이 책의 추천사에 마음이 동한 채, 나는 오늘도 아토피안의 몸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아래 <헝거 - A Memoir of (My) Body) / 록산 게이/ 사이행성 출판> 일부 발췌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다. 지금 이곳에서 내 이야기와 내 역사를 들려주려 한다. 내 몸과 허기에 관해 고백을 하려 한다. 


(중략)


이 순간에도 나는 간절히 바란다. 나에게 결단력과 의지력이라는 자질이 있어서 당신에게 승리의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실은 지금도 계속 그러한 결단력과 의지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 몸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 몸이 견뎌온 그 모든 것, 내 몸이 되어온 것 이상의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그 다짐이라는 녀석은 나를 그리 멀리 데리고 가지 못한다. 


이 책을 쓰는 건 고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헐벗은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말이다. 나에겐 이런 진실이 있다고 털어놓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내) 몸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이 책은 내 몸, 내 허기에 관한 책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라지고 싶고 다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원하는, 간절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비록 그 과정이 한없이 느려 터지긴 했으나, 마침내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는 것이 가능함을 배우게 된 한 사람에 관한 책이다. 


(중략)


내 몸으로 산다는 것의 현실은 이렇다. 나는 감옥에 갇혀 있다. 이 가옥이 가장 좌절스러운 점은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인다는 점이다. 감옥 밖으로 손을 뻗을 수는 있지만 많이 뻗지는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괜찮게 여기고 잘 지내는 척하면서 매우 쉬울 것이다. 내 몸을 내가 미안해하고 설명을 해야 하는 무언가로 보지 않는다면 좋을 것이다. (중략)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악의적인 문화,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통제하려 하는 문화 안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내 몸이나 내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준에 저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중략)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르게 작동한다. 내 몸을 편안하게 여기는지 여부가 전적으로 미의 기준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완벽함에 관한 것이 전혀 아니다. 이는 내가 내 피부와 뼈를 하루하루 어떻게 느끼면서 사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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