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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Oct 30. 2022

아픈 사람이 약속을 지키는 방법

얼마 전, 지인들과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총 4명으로 구성된 지인 중에 나를 포함한 3명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인데, 각기 진단받았던 병명은 다르지만, 몸이 아팠던 경험은 우리를 누구보다 더 가까워지게 했다.


나는 오랫동안 아토피를 앓았고, 한 명은 각기 다른 종류의 암을 2번 겪었으며, 다른 한 명은 몇 해 전 목에서 퍼진 대상포진이 신경을 건드려 목과 얼굴 한쪽 면이 마비가 된 적이 있다. 모이다 보니 병자 클럽이 된 우리 그룹은 만나면 항상 서로의 건강을 체크하는 일로 대화를 시작한다. 


몸의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새롭게 시작하는 것들, 몸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삶을 계획해나가는 이야기, 지난주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상태는 어떤지... 


이들과의 만남에서는 몸이 건강한 사람들 앞에서는 따분해질까 말을 아끼게 되는 내밀한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오간다. 


우리가 겪고 있는 질병은 달라도 '몸이라는 실체'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아픈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우리는 참 많은 부분에서 통한다. 


강릉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평소 자신을 암 2관왕이라고 일컫는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아 말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이렇게 기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불과 며칠 전, 간만에 사람들과의 약속을 치르고 하루를 끙끙 앓았었는데, 오늘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을까 봐,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 많았다고. 


우리는 컨디션의 호조로 인해, 오늘 이 여행이 계획한 대로 무사히 시작될 수 있었음을 서로 축하했다. 




아픈 사람에게 '약속'은 적지 않은 중압감을 준다. 

적어도 자신의 컨디션이 자신의 의지대로 조율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 흔한 약속이라는 말 앞에 아픈 사람의 마음을 참 흐릿하게 만든다. 무력해진다는 말이 조금 더 옳을까? 


당일 속이 좋지 않고 울렁거릴까 봐, 당일 피부가 심하게 뒤집어져버려 사람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는 게 두려워질까 봐, 당일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까 봐, 지나친 피로함에 약속을 지켜내는 것이 안 하는 것만 못하게 될까 봐... 


질병에 따라 우리가 걱정하게 되는 지점은 저마다 다르다. 약속 날짜까지 건강하게 내 몸이 버텨줄 수 있을까? 내가 하루 전이나 당일에 약속을 미뤄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들의 줄타기가 이어진다. 


질병에 따라 우리가 걱정하게 되는 지점은 저마다 다르다. 약속 날짜까지 건강하게 내 몸이 버텨줄 수 있을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약속이 있기 며칠 전부터 고도의 컨디션 관리에 들어가는 일이다. 


특히, 아토피안인 나에게는 식생활, 운동, 잠에 들고일어나는 시간까지 모든 것을 혹독할 만큼 제한하고, 그래도 낫지 않을 경우 아주 단기간 항히스타민제나 간헐적인 스테로이드 투약으로 몸을 다스린다. 


그래서 아토피안에게는(아니 질병을 가진 이들에게는) 약속이 정해지기 전, 그 약속을 수행해내기 위한 전초작업을 진행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픈 이들에게 '약속'이란 단지 '약속'한 시간에 타인을 만나는 그 시점뿐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약속'이란 '약속'을 무리 없이 지켜내기 위해 컨디션 관리에 들어가는, 그래서 몸과 마음이 행여나 아플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그 모든 준비 시간부터 시작된다. 


학창 시절에는 늘 생각했다. '입학식 때는, 첫 반 배정될 때는...' '졸업사진 찍을 때는 제발 피부가 뒤집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나이가 들어서는 '면접 갈 때는... 입사 초창기 때는', '소개팅할 때 첫 만남... 아니 두 번 세 번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프레젠테이션할 때까지는 제발...' 


상황은 늘 달랐지만 내가 누군가의 면전에 서야 되는 중요한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을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피부가 뒤집어지더라도, 사람들에게 내가 겉모습과 관계없이 어울릴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며 

같이 지내면 유쾌한 사람이라는 걸 납득시킬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번 후에야 뒤집어지게 해 달라고.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각은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남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조금 두렵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피부를 가지고도 나는 당당할 수 있다고. 건강할 때나 그렇지 못할 때, 나는 여전히 당당하며 다른 사람과 거리낌 없이 눈을 마주치며, 활기차게 활동할 수 있다고. 나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못하다. 


어릴 때부터 내면화한 아름답지 못한 피부를 가진 나에 대한 거부감, 건강한 나와 그렇지 못할 때의 나를 분리하고 되도록이면 건강한 나로 타인을 마주하고 싶은 욕심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몸이 아프고 피부가 망가진 나는 덜 아름다운 나라고, 그렇지 않은 건강한 내 모습을 먼저 바라봐 달라고 하는 그 목소리를. 사실 그게 '욕심'이기나 한 걸까?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욕망이 왜 나에게는 욕심이 되는 걸까?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래도 여전히 상상한다. 피부가 아픈 나를 잘 돌보며, 이런 모습을 스스로 검열하는 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나를. 


타인의 시선보다 내 몸과 마음을 잘 돌보는 나를. 

보기에 좋은 모습으로도 좋지 않은 모습으로도 

흔들리지 않은 자아로 타인과 조우하는 내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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