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imize Impact Oct 30. 2022

체질 탓이 아닙니다

내 몸에 영향을 주는 것들

2016년도로 돌아가 보자. 당시 언니의 결혼 후, 혼자 살게 된 나는 둘이 나눠내던 월세 40만 원이 부담스러워 서울의 00구에 작은 전세방을 마련했다. 


삼 층에 위치한 볕 잘 드는 집. 방 두 개에 작은 화장실, 그리고 부엌 하나 딸린 전세방의 가격은 4,500만 원. 평수에 비해 서울에서 구하기 어려운 가격과 집 구조 때문에 나는 집을 본 날 바로 계약을 했다.


당시 모아놓은 얼마 안 되는 돈에 정부지원 대출금까지 받아 보증금을 마련했고, 계약할 전셋집이 5,000만 원 이하라 조금 더 저리로 대출할 수 있음에 기뻐했던 게 기억난다.  


집은 대로변 인근에 위치해 버스 정류장과도 가까웠고, 직장에는 환승 한 번이면 40~50분 만에 갈 수 있었다. 처음 계약해보는 전셋집에 나는 다소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고, 무엇보다 월세를 아껴 돈을 더 쉽게 모을 수 있겠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80년대에 지어진 낡은 상가 주택이었지만, 나는 낡은 꽃무늬 벽지에 흰색 페인트(친환경이라고 쓰여있었지만,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는 알 수 없는)를 칠하고, 조명을 달고, 오트 색 주방 수납장을 흰색 시트지로 바꿨으며 예쁜 새 가구를 들였다. 낡은 집이 제법 멋들어지게 변했다. 



집을 이사할 즈음, (당시 다니던) 회사도 새로운 사옥으로 이전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건물이 모두 리모델링이 되기 전에 회사는 급하게 사옥으로 이전했고, 우리 팀은 층 별로 공사가 마무리될 때마다 2~3개월 간격으로 뺑뺑이 이사를 다녀야 했다(4층에서 근무하다 6층 공사가 마무리되면 6층으로, 그리고 다른 층 공사가 마무리되면 다시 해당 층에 이사 가는 식). 


새 층에 이사를 갈 때마다 새롭게 칠해진 페인트와 새 가구가 우리를 맞았다. 8층에서 근무하는 누군가는 말했다. 그래도 그게 나은 거라고, 자기들이 있는 층에는 사무실에서 비닐을 쳐놓고 공사를 하는데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근무할 때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라고.  


당시 내 몸은 집을 가도, 회사를 가도 새집증후군(또는 헌 집 증후군)에 노출된 셈이었다. 그렇게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 군데군데가 염증으로 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염증부위가 몸 군데군데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약해진 면역력 탓인지, 2차 감염된 얼굴에 수포가 올라오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렇게 일을 병행하기를 몇 개월, 계약이 만료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연장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정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집에서 몇 개월을 푹 쉬면 나을 거란 기대를 뒤로하고 증세는 날로 심해졌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사는 집과 동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대로변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할 줄만 알았는데 창문 너머로 새까만 매연이 매일 넘어오는구나, 이 동네에서는 비행기가 이렇게까지 낮게 나는 걸 볼 수 있구나, 신축 아파트, 신축빌라, 대형마트까지... 이곳은 주변에 공사가 끊이질 않는구나. 




체질 탓, 유전 탓, 관리가 소홀한 탓?

이전까지는 장소가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그리 크게 고심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장소의 바뀜, 공기의 질(매연, 미세먼지 등), 도시의 개발 환경, 실내외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유독한 환경을 몸으로 부대끼며 나의 몸이 어떻게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받고, 취약성을 드러내는지 알게 됐다. 


그건 단순히 식생활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먹고 가끔은 의학 처방을 받는 것으로 도저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곳곳이 공사 현장이 아닌 곳이 없던, 하나가 다 지어지면 다른 하나가 부서지고 다시 지어지던 개발 붐이 한창이던 동네, 봄가을이면 뿌옇게 밀어닥치던 황사와 미세먼지, 새롭게 인테리어 된 사무실에서의 근무 환경, 어디를 가도 새롭게 인테리어 된 가게들. 모든 것에 이다지도 규제가 느슨할 수 있는가?를 매일 생각했다. 


내 몸은 이런 도시 환경 안에 물리적인 실체로 존재했고, 그 몸을 편히 둘 곳이 없다는 사실이 숨 막히게 혼란스러웠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집(그리고 동네 환경)마저 내 몸을 공격했으므로. 



한 날, 누군가가 아토피안 커뮤니티 게시판에 남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사 간 이후로 갑자기 아토피가 심해졌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 집에서 당장 나와라.' 


나는 미련스럽게도 그 집, 그 동네에서 무려 3년 반을 살다가 나왔다. 쉽사리 이사를 나오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당시 그 정도의 보증금을 가지고 또 어디로 이사를 갈 수 있을지 막막했고, 

두 번째로는 이사를 간다 한들, 매연이나 주변 재개발 현장, 미세먼지나 황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을 서울 안에서는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 들고 있는 돈이 한정적이면 한정적일수록 선택지는 더 줄어들었으므로, 내게 있는 선택지에서 고를 수 있는 환경이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내 두 발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실제로도 예산을 맞춰 발품을 팔면, 재개발대상지나 개발이 필요한 낙후된 동네가 대부분이었다). 


지역으로 터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히 고민하기도 했다. 나의 몸이 삶의 터 그리고 직업에 대한 선택권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도 있겠구나를 실감하면서. 미련한(?) 두려움과 실제 하는 현실 속에 끼여, 돈이 어느 정도 모이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판단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이사할 수 있었다. 


사회역학*자 김승섭이 쓴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동아시아 출판>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인 '원인의 그물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구절이 나온다. 

*사회역학: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같은 저서 내, 저자의 설명)


우리 몸이 세계라면/김승섭/동아시아 출판


이 논문(<역학과 원인의 그물망: 거미를 본 사람이 있는가?>)에서 크리거 교수는 우리가 오늘날 질병의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1960년대부터 역학 교과서에 등장한 '원인의 그물망'은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제2형 당뇨병을 생각해보지요. 당뇨병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노화와 가족력은 물론이고, 고혈압과 과체중도 원인입니다. 여러 원들이 서로 엉켜 함께 당뇨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역학 연구들은 '원인의 그물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습니다. 크리거 교수는 그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 '원인의 그물망'이 마치 처음부터 주어진 것인 양 생각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이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중략)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프다면, 그 그물망을 만든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 그물망을 엮어낸 역사와 권력과 정치에 대해 물어야 하고, 좀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고 크리거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김승섭/동아시아 출판>


내가 앓고 있는 질병이 무조건적으로 사회의 책임이고 탓이라는 걸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몸은 내가 타고난 특질이며, 내 몸이 가진 고유한 질서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질병의 증세가 발현할 수 있는 정도의 격차에 개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적인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면, 우리는 우리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차원에서만 바라보고 처방하는 방식에 대해 제고해볼 필요가 있다. 


아토피가 '환경병'이라는 인식이 낯설지 않음에도, 여전히 개인의 생활습관(먹거리, 운동, 수면, 영양 등) 또는 개인의 체질에서만 그 원인을 찾고 교정하려는 의학적 처치 또는 담론이 주를 이룬다. 


물론, 체질과 생활습관의 교정 또한 치료와 호전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큰 부분이기는 하지만, 분명 개인이 가진 원인 이외에도 이 질병의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인 원인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의 아토피가 이전보다 더 심각한 방식으로 발현되고, 또 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함을 인지함에도 그 상황 속에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개인의 상황(개인의 질병과 재정 상태 등)과 더불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 환경, 난개발에 무방비한 노출, 일터 환경, 건축자재/먹거리/생활용품 등의 느슨한 규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순간순간마다 마주하게 될 질병이 주는 순간들을 주어진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해나가는 것도 평생에 걸친 만성 질병인들의 중요한 숙제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떨어져 나와 질병의 원인의 원인에 대해 묻고, 원인의 그물망을 만들어낸 '거미'를 찾고 개선을 요구하는 연대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조금 더 아토피안 또는 만병질병인들이 살 만한 세상이 구체화되지 않을까.

이전 06화 우리에겐 관계편식이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