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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Oct 30. 2022

용돈 없는 청소년 그리고 아토피안

용돈 없는 청소년, 그리고 아토피안

유튜브 '씨리얼'에서 '용돈 없는 청소년'이라는 연재물을 본 적이 있다. 10대 때 받는 용돈의 차이가 인생 전체에 끼치는 영향을 다룬 탐사보도물이다.


'와 어떻게 이런 제목을 뽑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제목을 클릭한 기억이 난다. 바로 내가 용돈 없는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알약을 깔아놓은 내 컴퓨터에는 가끔씩 화면 한편에 생리대 살 돈이 없는 여학생을 후원해달라는 팝업 광고가 뜬다. 나도 매달 생리대 값을 걱정하던 여학생이었다. 진열대에 놓인 수많은 생리대 중에서 가장 값이 저렴한 생리대를 늘 골랐고, 이따금씩은 그것도 아끼느라 휴지를 둘둘 말아 겹쳐 사용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용돈 없는 청소년임과 동시에 나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청소년이기도 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아토피에 대한 걱정보다는 경제적인 걱정 그리고 그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가 더 큰 고민거리였다. 급식비처럼 학교에 내야 하는 비용을 제 때 낼 수 없거나, 용돈이 필요할 때에도 선뜻 부모님께 그 말을 꺼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아토피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더 내 청소년기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건 술만 먹었다 하면 시작되는 아빠의 폭언이었다. 아빠가 술을 먹고 집으로 오고 있는 저녁이면 그때부터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삼켜져 있는 것처럼 극도로 불안했다. 심장이 쿵쾅 거리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오늘은 또 얼마나 시달릴까. 오늘은 또 얼마나 화가 나서 올까.


가족회의랍시고 밤새 시달린 다음 날이 되면 나는 비참한 마음으로 '제발 내가 아토피를 평생 앓아도 좋으니까, 아빠의 폭언에서부터 우리 가족이 벗어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곤 했었다. 아니 여러 번 그런 생각을 하고 두 손을 모았었다.


그때부터 내가 가진 차선의 과제와 내 생에서 가장 없애고 싶은 문제를 맞교환하려고 하는 이상한 심리적 기제가 생겼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아는 지인이 '뚱뚱해져도 괜찮으니까 아토피만 나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 것처럼.


그 시기의 나에게 아토피는 다른 복합적인 문제들 앞에서 엷게 희석되었다. 당시 아토피가 고민의 축에 못 끼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 그것대로 다른 것은 다른 것 대로 그때 몰아닥친 온갖 것들이 나를 형성하는 일부분이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한참 동안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냈다.


시리얼채널 '용돈없는청소년' 탐사보도물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나았다는 말

나이가 들면 증상이 호전된다는 말과는 다르게 나의 아토피는 성인기로도 전환되었다. 가끔 청소년기에 아토피를 앓았다가 지금은 완치된 이들은 내 피부를 보곤 한 마디씩 덧붙였다.


'저도 예전에 아토피가 심했는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면서 나았어요'


'어떻게 해서 나았어요?'라고 물으면, 나이가 들면서 그냥 저절로 없어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엄마가 혹독하게 과자나 고기도 못 먹게 했다는 사람도 있고, 전국을 떠돌면서 좋다고 하는 건 다 해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쳇'하는 목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터져 나오곤 했었다. 그들 딴에는 공감대 형성이겠지만 나는 공감이 별로 안됐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했던 차도 없던 한방치료와 청소년기에 그때 그때마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것 외에는 안 해본 게 더 많은 나로서는 뭐라 덧 붙일 말이 더 없었다.


더러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절실하게 모든 시도를 다 해볼만큼 나의 아토피의 정도가 심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그때 우리 가족의 경제적인, 심리적인 상황이 나의 아토피까지 챙길 정도로 여유가 있지 못했던 걸까 하는 생각을. 그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성인기까지는 넘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물론 그런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인기로 전환된 이들도 있다. 그렇게 아토피는 종잡을 수 없는 질환이라 이 질환을 낫고 낫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어느 무엇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투어 일행으로 온 아주머니 한 분이 '아토피는 돈만 있으면 다 낫는 병이야'라는 말을 하고 옆을 쓱 스쳐갔다.


돈 많으면 다 낫는 병?

몇 해 전 나, 언니 그리고 엄마와 함께 베이징으로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일정 비용을 내면 버스를 타고 2박 3일 동안 베이징의 유명 코스들을 투어 하는 여행이었다. 아토피안에게 여행은 대부분 그렇듯 바뀐 기후, 음식, 물, 생활패턴으로 몸의 균형이 깨지면 피부가 뒤집어지기 시작하는데 베이징 여행도 다름 아니었다.


건조한 날씨와 기름진 음식으로 하루 이틀이 되지 않아 온 얼굴이 시뻘게진 나를 보고 함께 단체여행을 하던 관광객들이 걱정스러운 듯 한마디를 건넸고 가이드와 쇼핑코스의 점원들은 내게 더 많이 물건을 팔려고 했다(마침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원에서 약을 처방받는 코스도 끼워져 있었다).


그러던 중, 투어 일행으로 온 아주머니 한 분이 '아토피는 돈만 있으면 다 낫는 병이야'라는 말을 하고 옆을 쓱 스쳐갔. 그 아주머니는 도대체 들어봤자 도움 하나 안 되는 말을 무슨 저의로 한 걸까? 의도가 파악되지 않는 말에 한동안 어리둥절해있다가 종국에는 화가 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저렇게 가벼운 말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건강불평등, 그리고 새로운 가난의 정의

물론 개인의 건강과 경제력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국가, 사회, 개인의 경제력에 따라 건강불평등이 존재한다.


*2013년도 건강보험 데이터에 따르면 유방암은 부유한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 것처럼 집계되지만 유방암으로 사망하는 여성은 가난한 집단의 여성이 부유한 집단의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다. 부유한 집단은 조기 검진을 통해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참고. 우리 몸이 세계라면/김승섭/198p).


돈이 있다고 모든 질환과 질병이 완벽하게 관리되고 완치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고 개선될 수 있는 확률에는 차이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아토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최근 몇 년 새 새로운 신약들이 하나둘씩 시중에 나오기 시작했다. 중증 아토피 안인 지인은 주변인의 추천으로 주사용 신약을 출시 초기부터 투여받기 시작했다. 지인은 투여 이후의 삶은 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만족하고 있다고 했지만 보험이나 산정특례 적용을 받지 못하던 치료 초기의 첫 해 의료비 지출은 거의 2,00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경구용 신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수입으로 감당하기에는 한 달 치료비가 부담이 되어 다시 아토피가 올라오지 않을 만큼의 시간과 양을 계산하여 약을 잘게 쪼개어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당시 제약회사의 이벤트로 3달 정도 치료비 보조를 받으면서 약을 타고 있는데 지원기간이 끝나면 장기적으로 치료를 계속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두렵다는 말과 함께.


얼마 전 온라인 서점을 뒤적거리는 데 눈에 띄는 책 제목이 있었다.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책 소개 중 일부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었다.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가난의 정의


"상대적 빈곤에 담긴 비교 요소의 핵심은, 어떤 사람이 상대적으로 빈곤한지 아닌지는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사는 타인들과 비교할 때에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1930년대 영국에서 끔찍한 고난을 겪어 본 사람들은 이제 ‘진짜’ 빈곤은 사라졌다고 말하곤 한다. 빈곤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러한 비교는 잘못된 것이다. 21세기에 적당한 생활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짧은 기간으로 보아도 일반적인 생활수준이 계속 향상하고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에,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가 다수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안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계속 등장한다.” -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루스 리스터


아토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각종 과학적으로 증명된 고가의 신약들이 나오기 전에는 이 종잡을 수 없는 질환 앞에서 어느 정도 똑같은 막막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모두에게 똑같이 막막했다. 환자마다 발현 원인이 다 다르고, 딱히 확실한 치료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토피의 발현 기제를 파악하고 보다 정교하게 아토피 발현 원인을 억누를 수 있는 고가의 신약들이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상응하게 아토피를 개선하고 관리하기 위해 개인의 경제력 수준이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떠올랐다.


물론 치료법이 없는 막막한 현실에서 새로운 신약이 개발되는 것은 단비 같은 일이다. 하지만 한 가정,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선뜻 도전을 망설이게 하는 고가의 치료비 때문에 뻔히 관리의 가능성이 눈앞에 있음에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연출되는 건 아닐까?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난의 정의 중에 하나가 '누구나 똑같은 꿈을 갖고 있지만 실현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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