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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Mar 25. 2021

장대 (装台)

누군가의 무대를 만드는 당신에게


■ 제목: 장대 (装台, 좡타이)

■ 장르 : 드라마 / 가정 / 도시

■ 년도 : 2020

■ 감독 : 李少飞

■ 주요 배우 : 张嘉益,闫妮,秦海璐,凌孜 등



오늘 소개드릴 드라마는 2020 하반기에 방영됐던 따끈따끈한 드라마, <장대(装台)>입니다. 제목의 뜻은 '무대 설치'라는 뜻으로, 주인공이 무대 설치 노동자라는 데서 따왔습니다. 33부작이라는 양심적인 길이의  드라마는 제가 2020 보았던 드라마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인데 막상 소개글을 쓰려니  긴장되네요.


 드라마는 천옌(陈彦)이라는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들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체력 노동으로 여겨지는 무대 설치일을 전문으로 여기며  열심히 임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배경이 샨시성 서안(陕西西安)인데, 실제로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서안이나 샨시성 출신을 캐스팅했고, 중간중간 샨시 사투리를 대사에 섞어 서안이라는 도시의 특색을  드러냈습니다. 저도  드라마를 보고 샨시  몇 가지를 배울  있었어요.


이런 드라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 드라마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봤을 때였습니다. 사실 그 포스팅의 내용보다 저를 더 유혹한 건 이 드라마가 '섬서 서안(陕西 西安)', 그것도 '서안에 사는 일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 그리고 소개글에 나와 있던 서안의 먹거리들이었습니다. 드라마 1화 초반에 등장하는 이 수많은 서안의 먹거리들은 서안에서 이 맛을 한 번 본 사람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거든요.


서안은 여행으로  , 출장으로   다녀왔고, 항상 유쾌한 일만 있었던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도시입니다.  수도인 도시들에서 으레 느낄  있는 오만함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치고는 북경에 비해서 많이 인간적이고, 회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문화가 섞여 있어 색다른 경험도   있죠.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습니다. 벼보단 밀가루를 먹는 음식 문화라 각종  요리가 발달해 있고, 회족(이슬람)들의 특이한 () 있죠. 양고기는  얼마나 맛있게요.


그런 제가 서안에 갔을  정말 반한 음식이 있는데, 요우포몐(油泼面, 유발면)입니다. 기름을 끼얹은 면이라는 뜻인데, 절대 상상하는 것처럼 느끼하지 않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면에 원하는 토핑을 올리고, 끓고 있는 고추기름을 살짝 끼얹어서 나오는 음식으로, 비벼서 먹습니다. 놀라운  정말 동네 김밥천국처럼 아무 음식점이나 찾아 들어가서 시킨 면이 너무너무 맛있었다는 점입니다. 깜짝 놀라서 내가 모르는 재료가  들어갔나 한참을 그릇을 뒤적거렸습니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요린데 한국에는  면의 맛을 아는 사람이 없는지 아직 들어와 있지 않은  있죠. 그리고  요리가,  드라마 1 오프닝에 나온 겁니다.


회족거리의 낭(囊) 상인과 서안에서 먹었던 유발면


'고작 유발면 하나 때문에 드라마를 봤단 말이야?' 네, 부끄럽게도 맞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인연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저와 이 드라마의 인연은 이렇게 깊었던 모양입니다. 제 기대를 알기라도 했는지 1편뿐 아니라 드라마 내내 등장인물들은 일이 끝나거나 일을 시작하기 전 모여서 면을 그렇게 맛있게 먹습니다. 저녁에 이 드라마 보면 엄청 배고파요.


,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이런 음식 인서트로 유혹당하긴 했지만 드라마를 보기 전에 사실 저는 약간 편견이 있었습니다. ' 서안이야?'라는 편견이었죠.  얘긴 제가 <장안십이시진(长安十二时辰)> 소개드릴    했었는데, 서안이라는 도시가 갖는 한족 문화, 중화사상의 중심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런 드라마가 나온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방송사도 중국 중앙방송국(CCTV)이예요. 이건 100% 체제 홍보다, 주선율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죠.


물론 2020년이라는 시점에 서안이라는 도시의 각종 면모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나온 것이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말한 체제 홍보나 중화사상의 선전이라는 함의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목적을 일반적인 체제 선전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뤄냅니다. "서안이 최고예요! 중화사상의 중심지예요!"라는 말을 고층빌딩이나 번화한 도시를 보여주면서 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서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이 평소에 쓰는 말은 뭔지, 어떻게 입에 풀칠을 하는지 아주 진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CBD 고층빌딩을 보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하죠. 그렇게 시청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서안의 매력에 빠집니다.  생각엔 이것이 제작진이 바라던 바인  같아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따슌(大顺) 친챵(秦腔)이라는 무대예술을 위해 무대 설치를 하는 사람입니다. 조명, 음향, 무대장치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죠. 누군가는 그를 보고 따타이(搭台)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는 그의 일이 좡타이(装台)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따타이(搭台) 그저 정해진 장치들을 무대에 설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라면, 좡타이(装台) 실제 무대가 어떻게 진행될지, 배우들에게는 어떤 조명이 좋을지 등을 '생각'하면서 설치하는 사람을 의미하죠. 무대 설치 일에 있어서 따슌은 일류입니다. 무대 뒤에 그가 없으면 항상 뭔가 문제가 생기죠.


하지만 공연장 밖에서의 따슌에게는 아주 골치 아픈  천지입니다. 혼자 키운 딸은 대뜸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해오질 않나, 어렵사리 만난 중년의 여자 친구는 딸이 죽자 사자 반대하질 않나, 무대 설치 일을  했는데 주임이 돈을 떼먹으려고 하질 않나..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것인데, 남이 주인공인 무대는 그렇게  만들어주면서, 따슌은 정작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에서는 항상 우물쭈물 결정을  못하고, 비참하기 이루 말할  없는 모습입니다.


저는 그런 따슌의 모습이 그냥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차장님이나 부장님  회사에선 간부급인  누군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보고하고 열심히 자료를 만들지만, 정작 자신이 주인공인 무대에 서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거리는 모습 말이에요. 남을 위한 무대만 설치하느라 정작 자신을 위한 무대에는 소홀한 모습. 익숙하지 않나요?  드라마가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명을 일으킨 것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드라마에는 장쟈이(张嘉益, 장가익) 남자 주인공을, 옌니(闫妮, 염니) 그의 중년 여자 친구를 연기했는데,   사람은 사실 <일복이주(一仆二主)>라는 드라마에서의 호흡이 먼저입니다. 둘 다 샨시성 출신인데, 그래서 그런지 약간의 샨시 사투리를 섞은 대화가 오갈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둘 다 나이가  많은 배우인데, 막상  드라마를 보면 매력에 빠지실 거예요. 장쟈이는 너무 사람 좋은 아저씨고, 옌니는 나이에 비해 너무 귀엽습니다. 현실에서는 함께한 작품이 많아서 거의 형제처럼 지낸다고 하네요.


사실 이 드라마로 저는 장쟈이를 완전 다시 봤습니다. 제가 처음 장쟈이를 본 드라마는 <와거(蜗居)>라는 드라마인데, 여기서 장쟈이는 젊은 여자와 불륜을 하는 고위급 간부로 나오거든요. 그래서 전 원래 이런 역할을 주로 맡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그는 <장대(装台)>처럼 인간미 넘치는 역할을 연기했더라고요. 현실에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장대(装台)>의 장쟈이와 <와거(蜗居)>의 장쟈이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OST 언급하지 않을  없겠네요. 노래들이  서안의 특색을 담은 노래들인데, 특히 오프닝에 나오는 노래 <불수(不愁)> 샨시성 방언으로 부른 버전이 있어 들어볼 만합니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쑨하오(孙浩)라는 사람인데, 드라마에서는 철주임(铁主任)으로 나오는 배우이고, 실제로 샨시성 민요를 부르는 가수이기도 하다고 하네요. 가사도 좋은 노래라 여기 노래와 가사를 함께 소개합니다.


■ <불수(不愁)> - 쑨하오(孙浩)

https://youtu.be/Fc3JdsKsTDs


만터우를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삶이 좀 추레해도

어차피 아침 일찍 일어나 밤까지 열심히 일하고 끝나면 술 한 잔 하는 거지

좀 고되고 힘들긴 해도, 걱정은 없지

我鼓劲咬了一口馒头 / 虽然生活有些简陋

不过是起早贪黑 / 晚上还能喝个酒

苦些累些 / 不愁


한가할 땐 같이 농담 따먹기 하고 추억팔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지

가끔 현실에 머리를 숙여도 마음만큼은 부자야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걱정은 없지

我闲了还有一帮朋友 / 开开玩笑还很念旧

偶尔对现实低头 / 但是心里富有

吃吃谝谝 / 不愁


가끔 딸한테 '행복한  올 거야'라고 허풍을 떨지

누군가는 그런 나를 아무것도 모른다며 비웃지만

이건 삶에게 한 방 먹이는 거야

我偶尔对女娃吹牛 / 说幸福的日子在后头

他们笑我啥都不懂 / 我说这叫不跟生活认怂


삶이 나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괴롭혀도

난 그를 첫사랑처럼 대하지

머리를 꼿꼿이 들고, 모르겠으면 하늘에 물어보는 거야

生活虐我千遍万遍

我待它如同初恋

高高的仰起我的脸 / 不懂就问问苍天


삶이 나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괴롭혀도

난 그를 첫사랑처럼 대하지

자유롭게 사는 거야, 바보처럼 실눈을 뜨고

生活虐我千遍万遍

我待它如同初恋

舒坦自在地活着 / 憨憨的眯起了我的眼


그럼 마지막으로 드라마를 보고 나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오늘 리뷰 마치겠습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보다가 울었다 ㅠㅠ 온전히 샨시를 위한 드라마였던 <장대(装台)>  봤다. 감히  드라마를 2020년판 <인생(活着)>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CCTV에서 방영한 드라마긴 하지만, 정부 선전물 같은 느낌도 없고, 인간적이면서 삶의 진솔한 모습을 그렸다. 장쟈이(张嘉益) 옌니(闫妮) 같은 샨시가 고향인 배우들을 데려다가 샨시의 드라마를 연기하게 하고, 샨시 사투리로 말하게 하고, 샨시 음식을 먹게 하니, 보는 내내 다시 서안에 가고 싶었다. 샨시 방언도 많이 배웠는데, 예를 들면 碎碎的事(별거 아닌 ), 美得很(좋다), (겁쟁이), 哈松货(나쁜 놈, 멍청한 ) 같은 말들? 장쟈이는 내가 <와거(蜗居)> 송쓰밍(宋思明) 고위간부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다른 이를 위해 무대 설치를 하는 일반 사람으로 변했다. 역시 베테랑은 뭔가 다르다. 무엇을 연기하든  사람으로 변한다. 드라마 속에서 남자 주인공 말고 다른 모든 인물들이 다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데, 남자 주인공 슌즈(顺子) 무대 위의 연출만을 신경 쓰느라 무대 아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결정을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그래도 마지막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찾아와서 다행이다. "삶이란  이런 거지. 우리는 어차피 담담하게 내일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다" 무대 아래의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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