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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an 30. 2023

신비의 산에서 폭우를 만나다

쩐쟝(镇江) 지역연구 2일차 (2)

배 타고 들어가야 하는 산이라니!


날씨가 영 좋지 않다. 게다가 원래 가지고 다니던 우산 겸 양산의 살이 어제 기차 안에서 똑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아마 그동안 우산을 잘 말리지 않아서 안이 부식되었던 모양이다. 날이 맑았으면 상하이로 돌아갈 때까지 버텼을 텐데, 닝보도 그렇고 왠지 이번주 강남의 날씨가 심상치 않아 어제저녁 왓슨즈에서 우산을 샀다. 양산 겸용되는 것을 사고 싶었는데, 그런 하이엔드 우산은 왓슨즈에 없었다. 그냥 분홍색 심플한 삼단우산을 샀다. 베이꾸샨을 둘러본 뒤 본래 근처에서 점심이나 먹을까 했는데, 날이 영 심상치 않아 다음에 가기로 한 산을 마저 보고 좀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차피 삼산 중 이 산이 마지막이니.



마지막으로 가게 된 산은 위 지도에서 3번에 해당하는 쟈오샨(焦山). 1번이 진샨, 2번이 베이꾸샨이다. 쟈오샨은 삼산 중에서 유일하게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산이다. 높이는 70m로 삼산 중 가장 높다. 강에 떠있는 산이라 강에 떠있는 옥(江中浮玉)으로 묘사되곤 하며, 강남의 수상공원이라는 별칭이 있다. 진샨은 연꽃에 비유되었는데 여긴 옥이다.



베이꾸샨에서 쟈오샨이 있는 곳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 편하게 도착했다. 파워 P, 즉 즉흥형인 나는 쟈오샨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여기가 강에 둘러싸인 산인지 전혀 몰랐다. 어디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계획만 있지 어떻게 생긴 곳인지는 미리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도착해 보니 입장권에 섬이 그려져 있고, 갑자기 배를 타란다. 비 오는 날 배를 타야 하다니, 왠지 무섭다. 입장료는 50위안이었다.



날이 워낙 안 좋아서 그런지 나루터에 사람이 없다. 하지만 지역연구를 똑같은 장소로 두 번 올 수는 없는 운명이기에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일단 배를 타고 쟈오샨으로 향해 본다. 저 멀리 입장권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의 쟈오샨의 모습이 보인다. 산 위에 보이는 높은 탑은 꼭대기에 있는 만불탑(万佛塔)이다. 비가 와서 아마 가까이서 볼 일은 없을 듯하고, 탑은 그냥 이렇게 멀리서 사진으로만 남겨야겠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은 정말 '산 = 절'이라서, 이곳 쟈오샨에도 이 산을 대표하는 절이 하나 있다. 정혜사(定慧寺)라는 이름의 절인데, 1800여 년 전 동한 때 지어진 강남에서 오래된 사찰 중 한 곳이다. 본래 이름은 보제선사(普济禅寺)였는데, 원나라 때 산 이름을 따서 초산사(焦山寺)가 되었다. 이후 화재로 타버린 뒤 명나라 때 다시 만들어졌다. 그래서 사찰 건축 양식은 동한의 양식이 아니라 명나라의 양식이다. 청 강희제가 남순하여 쟈오샨에 왔을 때 사찰 이름을 정혜사로 바꿨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다니다 보니 삼조(三诏)라는 말이 보인다. 이 삼조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쟈오샨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야 한다. 쟈오샨의 쟈오(焦, 초)라는 말은 동한 때의 '초광(焦光)'이라는 사람의 성을 따왔다. 이 초광이라는 사람이 이곳 쟈오샨에서 은거를 했다고 하여 초산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초광은 동한 말년에 이곳에 은거하며 산에서 약초를 캐 만든 약으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곤 했다. 그의 명성을 듣고 한 헌제가 세 번이나 조서를 보내 관직에 임하라 청했지만 그는 나이가 들었다는, 아내가 아프다는, 혹은 멀리 떠나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세 번 다 거절을 했다고 한다. 실상은 당시의 한 조정이 너무 부패해서 거기 섞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어쨌든 황제의 세 번의 부름, 그러니까 삼조(三诏)를 거절하고 이 산속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며 살았던 그의 삶을 기려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그의 성씨를 따 쟈오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초산지(焦山志)>에 따르면,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송나라 진종이 병이 나 몸져누웠는데,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자신을 동남방의 은사 초광이라 소개하며 단약을 하나 주고 갔단다. 꿈에서 깨니 몸이 가뿐해진 송 진종은 대신들에게 이 초광이라는 사람의 정체를 물었고, 대신들이 그에 대해 알려주자 그를 명응공으로 봉하고 쟈오샨 일대에 세금 우대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황제가 이렇게 영험한 꿈을 꿨다는 소문이 들리자 쟈오샨은 '영험한 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그래서 진샨이 백사전, 베이꾸샨이 동오의 흔적으로 유명하다면, 이곳 쟈오샨은 '영험한 산', '용한 산'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듯하다.



절을 둘러보고 좀 걸으니 뭔가 낯선 풍경이 보인다. 동굴 같은 것이 여러 개 파져 있는 것 같은 이 모습은 쟈오샨의 고포대(古炮台)다. 이 포대는 1840년 아편전쟁 시절 청나라에 의해 만들어졌다. 1842년 영국이 양자강 전투를 시작했을 때, 영국 함대가 장강을 통해 침략해 왔고, 그때 진샨과 이곳 쟈오샨에 있는 포대의 대포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결국 침략당하긴 했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보존되어 제국주의에 대항한 중국인의 흔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아차, 비가 점점 거세진다. 배 타고 건너온 이곳 쟈오샨에 더 볼거리가 많은 듯하지만 아무래도 배를 타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하니 일단 후퇴해야 할 것 같다. 고양이의 인사를 받으며 다시 육지로 향한다.



비가 와도 진강삼괴(镇江三怪)는 맛봐야지


쩐쟝에 오면 뭘 먹어야 할까? 바로 진강삼괴(镇江三怪). 쩐쟝의 3가지 특별한 것이라는 뜻인데, 식초, 야오러우(肴肉), 그리고 꿔까이몐(锅盖面)이 그것이다. 식초는 씨진두에 대한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고, 야오러우는 무엇인가 하면 쩐쟝에서 유명한 염장 고기를 말한다. 아래 사진에서 면 옆에 있는 고기다. 짠 편육 같은 느낌인데, 이 고기를 쩐쟝 식초에 찍어 먹는다.


그리고 대망의 주인공은 꿔까이몐. 꿔까이(锅盖)는 뚜껑을 덮는다는 뜻으로, 꿔까이몐(锅盖面)은 뚜껑을 덮어 만든 면이라는 뜻이다. 그 기원은 청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 건륭제가 변복을 하고 강남 지방에 왔을 때, 장 씨 아주머니가 하는 면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장사가 무지하게 잘 되던 식당이었는데, 면을 한 그릇 시켜 맛을 봤더니 너무 맛있어서 사복 차림의 건륭제가 '너무 맛있다!'를 연발했다고.


그 비법이 궁금해서 주방에 들어가 본 건륭제는 면을 삶던 큰 냄비에 작은 냄비 뚜껑이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 씨 아주머니에게 어째서 냄비 뚜껑이 냄비에 들어가 있냐고 물으니 그제야 눈치챈 장 씨 아주머니. 너무 바빠서 뚜껑을 같이 끓이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뚜껑과 같이 끓인 면을 건륭제가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면서, 쩐쟝의 꿔까이몐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허겁지겁 끝난 쟈오샨 구경을 뒤로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온 나는 택시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식사할 식당으로 고른 곳은 장얼면관(张二面馆)이라는 식당. 꿔까이몐으로 유명하다고 하여 골랐다. 아마도 이 꿔까이몐에 얽힌 이야기에 장 씨 아주머니가 등장해서 식당 이름에 장(张)을 넣지 않았나 싶다. 식당에 가던 길이 도로 공사 중이었는데, 비가 와서 흙탕물이 되어 있어서 아주 힘겹게 식당에 도착했다.



나는 곱창(肥肠)과 돼지 껍데기(腰片)가 들어간 면, 그리고 야오러우 작은 것 한 접시를 시켰다. 사실 국물의 맛은 아주 전형적인 강남의 면 요리 맛, 즉 달고 짭짤한 간장맛이었다. 이 면이 유명한 이유는 추측컨대 뚜껑을 덮은 쪽과 덮지 않은 쪽의 온도차 때문에 면이 훨씬 쫄깃쫄깃해진다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정확한 차이점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도 많이 오고 으슬으슬 춥던 차에 따뜻한 면을 먹으니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비가 더 온다. 버스로 돌아갈까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또 택시를 부른다. 아무래도 비가 많이 와 쩐쟝을 더 이상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숙소 앞에서 저녁거리로 먹을 빵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비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었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나는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당겨 조금 일찍 상하이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행에 돌발 상황(意外)이 없다면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여행이 존재할까? 중국어에 "계획은 변화를 따라오지 못한다(计划赶不上变化)"라는 말이 있는데, 생각해 보면 정말로 지금까지 몇 군데를 지역연구로 다니면서 계획표대로 정확하게 이행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닝보만 해도 날이 습하고 안개가 자욱해 풍경이 좋질 않았고, 타이위안과 뤄양에 갔을 때도 엄청난 연착에 공항에서 맘도 졸인 바 있고. 그리고 그 돌발 상황이 이번엔 폭우였던 것뿐. 특별할 것은 없다.


그리고 아주 다행히 판단을 잘해서 오후에 보기로 했던 쟈오샨을 오전에 몰아서 봐버렸고, 그렇게 하니 쩐쟝의 유명하다는 삼산은 다 돌아보게 되어 비교적 미련 없이 일찍 상하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비록 쩐쟝이라는 도시와 그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좀 적었지만, 그래도 역사의 흔적들을 둘러보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쩐쟝은 대도시도 아니고 외국인에게 크게 알려진 도시도 아니지만, 3개의 아름다운 산이 있고 각각의 산이 각자의 역사를 품은 곳이었다. 진샨(金山)은 백사전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 그런지 하늘하늘 어여쁜 느낌이었고, 베이꾸샨(北固山)은 손권의 꿈이 담겨서 그런지 험준하고 직선미가 느껴지는 곳이었으며, 쟈오샨(焦山)은 배를 타고 들어가서 그런지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폭우라는 돌발 상황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보고자 했던 것들을 다 보고 돌아올 수 있게 비 내리기를 좀 참아준 하늘에 감사하며, 짧았던 쩐쟝 지역연구를 마친다.



[쩐쟝 2·3일차 일정]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짧았던 쩐쟝 여행이 끝났다. 이번엔 이틀째 오후에 폭우가 내렸는데, 다행히 일정을 잘 짜놔서 쩐쟝의 삼산을 소원대로 다 볼 수는 있었다. 쩐쟝의 세 산은 비록 모두 높이가 낮은 산이지만, 모든 산이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진샨은 백사전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고, 베이꾸샨은 유비와 손권이 동맹을 맞은 곳으로, 쟈오샨은 아편전쟁의 포대 소재지로, 각자의 매력이 있었다. 씨진두의 낮은 옛 길의 한적함이, 밤은 반짝이는 야경이 있었다. 또 이야기할만한 것은, 꿔까이몐이 맛있었다. 다들 주말 잘 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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