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 지역연구 1일차 (2)
중국엔 5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 인구수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수민족이 바로 회족(回族)이다. 수가 많은 만큼 중국에는 회족의 자치구도 있고, 웬만한 대도시엔 회족이 대부분 살고 있다. 물론 회족이 하는 음식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회족이 하는 가게를 구별하는 법은 간단하다. '청진(清真)'이라는 글자를 찾으면 된다. 원나라 이후 중국 학자들이 '청(淸)', '정(靜)', '진(眞)'이라는 글자로 이슬람교를 서술한 데서 온 명칭이다. 보통 이 표시는 무슬림들이 행운의 색이라고 생각한다는 녹색으로 되어 있다.
시안에도 회족들이 꽤 많이 살고 있고, 이들이 주로 사는 주거지가 회족 거리(回民街)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당나라 때부터 아랍과 교류를 한 뒤로 실크로드를 따라 무슬림들이 중국으로 많이 들어왔고, 그들이 중국에 정착해 회족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회족 거리 근처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들의 사원을 만날 수 있다. 관광지라고 하기엔 2% 부족한 골목으로 스윽 들어가면 '참관하려면 저쪽으로 가시오'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고, 그걸 지나면 정문이 나온다. 입장료는 25위안이었다.
이슬람 사원이라 하니 모스크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 청진대사는 당 현종의 윤허로 성 안에 만들어진 첫 이슬람 사원이라 중국적인 건축 양식과 이슬람 건축 양식이 융합된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겉에서 봤을 때는 동양의 건축물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이슬람 특유의 화려한 디자인을 볼 수 있다.
건물마다 자세히 보면 보이는 이슬람 문자와 화려한 문양의 조각들이 인상적이었다. 사원 안에는 우리 같은 관광객도 있었지만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신도들이 목욕하는 곳도 있었다.
이 성심루(省心楼)는 이슬람 사원에 흔히 있는 미나레트(첨탑)인데, 하루 다섯 차례 예배를 드릴 시간을 수동으로 알려주는 곳이다. 보통은 원형의 모스크 옆에 굴뚝처럼 붙어 있는데, 여기는 동양적인 건축 양식이라 정자(亭子) 같이 되어 있는 점이 독특했다.
또 특이했던 점은 이 청관석(清官石). 과거를 보기 전에 이 돌에 못을 박아 들어가면 합격한다는 전설과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여기에 못을 박는 데 성공하면 좋은 관직으로 가고 실패하면 안 좋은 자리로 간다는 전설이 공존한다. 사원이라 그런지 여기서 이렇게 자신의 운을 점쳐보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면 이곳 청진대사의 예배대전이 나온다. 파란 기와가 넓게 드리우고 있는 건물인데, 최대 천 명까지 동시 수용 가능한 넓은 홀이라고 한다. 현재도 교인들에게 사용되고 있는 공간이라 관광객은 밖에서만 볼 수 있다.
사실 이 청진대사는 내가 이번 시안 지역연구를 계획하면서 두 번째로 다시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첫 번째는 회족 거리) 대학 2학년 여름 베이징에서 한 달 연수할 때 예배사(礼拜寺)라는 작은 사찰을 다녀온 뒤 한적하고 조용한 사찰의 매력에 빠졌는데, 2010년 답사에서 가본 이곳 청진대사가 나의 그러한 로망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와서 보니 사찰의 모습이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물론 사찰이 달라진 건 아니다. 사찰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진 것. 바깥에 설치된 간이 의자에 앉아 히잡을 쓰고 표를 팔던 아주머니가 사라지고, 이곳을 위한 매표소가 생긴 것은 작은 변화에 속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이곳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세와 떨어진 것 같은 조용함 속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신도들의 발소리만이 울리던 사원이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로 채워져 묘하게 소란스러웠다.
확실히 그 9년 사이에 시안으로 놀러 오는 사람이 많이 늘었나 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를 다소 실망시켰다. 조용한 사원을 둘러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던 목적이 실패했다. 역시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사원을 나선다. 아까 우리가 들어온 골목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인가 보다. 출구로 나와 방향을 바꾸니 이렇게 기념품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역시 변했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일행이 같이 헤나를 하잔다. 옆을 보니 '문신(纹身)'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헤엑, 문신!? 내가 너무 놀란 표정을 지으니 제안한 언니가 헤나는 문신과 달리 금방 지워진다고 걱정 말란다. 예전에 덴버 풍선껌에 있던 판박이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여튼 나는 생각하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나서 문제다. 이 가게에서는 헤나 말고도 실제로 문신(!)도 하고, 레게 머리 같은 드레드 헤어도 해주는데, 나는 얌전하게 헤나만 하기로 했다..
헤나는 중국어로 하이나(海娜)란다. 헤나를 들어만 봤지 해본 적은 없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했는데, 언니가 먼저 시범을 보여준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가게엔 수많은 도안이 있는데, 좀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것도 있고 비교적 그리기 쉬워 보이는 것도 있다. 이 도안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직원에게 말하면, 도안대로 구멍이 뚫린 스티커를 팔에 붙여준다. 그다음 그 위에 전용 색소(?)를 가지고 색칠을 한다. 마르면 스티커를 떼어내면 된다. 스텐실의 원리였다. 한 번 하는 데 30 위안이었다.
같이 간 언니는 예쁜 장미꽃 모양을 했는데, 나는 고양이 두 마리가 그려진 도안을 선택했다. 하고 보니 목줄 색이 하나는 빨강, 하나는 파랑으로 서로 달라 더 귀여웠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얼른 사진 찍어 전송. 청진대사에 실망해 울적해진 마음이 금세 달래졌다.
자우림의 <일탈>이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 노래방에서 목청 높여 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했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 '비 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은 못하지만, 노래방에서 그 가사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 이미 그것들을 한 것처럼 해방감이 밀려왔다. 대학에 진학한 뒤엔 제대로 된 일탈을 할 줄 알았지만, 쫄보라 막상 이렇다 할 일탈 행위를 해보지 못한 나로선, 이날 한 헤나가 뜻밖의 일탈이었고 도전이었다.
헤나 하나 하고 일탈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마다 일탈의 기준은 다 다르지 않을까? 네일아트, 피부관리, 스파, 외국에서의 마사지 같은 것도 해본 적 없는 나니까. 이후 지역연구를 다니면서 점점 옅어져 가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시안의 사원 앞에서 했던 작은 일탈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그래. 내가 중국에 나왔으니 이런 걸 해보지, 한국에 있었어봐. 언제 하겠어? 역시, 고양이는 무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