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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Feb 02. 2021

후배의 퇴사

언제나 힘든 '잘가요. 그동안 수고했어요'의 순간.

같이 4년 가까이 일해온 후배A가 있다. 싹싹하고 일도 열심히 하던 이쁜 친구다.

그러던 후배가 몇 주 전 메신저로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하며 말을 걸었다.  그때의 싸-한 기분이란.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했던가.  아니나 다를까 이직을 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은 아니다.  그녀가 회사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숨 쉴 겨를 없이 몰아치는 일들, 쫓기는 기분으로 사는 나날들의 연속. 이런 생활 속에서 불만을 가지지 않을 친구들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2020년 작년은 최악의 한해였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했고, 이와 더불어 수많은 보고들을 쳐냈다. 일에 대한 칭찬과 질책이 숨 가쁘게 오고 갔다. 이 속에서 나와 팀원들은 서서히 지쳐갔고 소진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는 내년보다 나아질꺼야. 다시 한번 힘내서 일해보자' 라는 격려가 마음에 닿을리가 없다. 특히 이 회사에서 7년 차에 접어든 후배 A에게는 하나마나한 얘기다.  


이런 상황을 빤히 알기에, 적극적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체념 섞인 한숨과 함께 '그래.. 내가 네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알겠다. 언제까지 업무 마무리할 수 있니? 실장님 면담도 빠르게 잡아보자' 라는 얘기로 퇴사 1차 면담을 서둘러 마무리하였다. 입안이 썼고, 기운이 빠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후배에게 2차 면담을 청했다.  맘을 돌릴 길 없더라도, 뻔히 그 맘 알더라도, 아끼던 후배에게 같이 조금만 더 일해보자 라는 얘기를 해주지도 않고 그냥 보낸다는 것이 영 맘에 걸렸다. 거절 당할게 뻔해도 한번 설득은 해보고 싶었다.


'작년에 그 고생을 했는데, 이직하고 또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면 또 힘들지 않겠니. 작년에 열심히 일한 보상도 제대로 받고, 올해는 작년보다 프로젝트 수도 적으니깐 작년에 우리가 놓쳤던 것들 하나하나 챙기면서 업무 노하우를 축적해보자. 소진된 마음도 좀 추스리고'  (이직으로 인한 기회비용의 상기)

'같은 업계로 이직하는 것보다, 너의 잠재력을 살려 다른 업계, 더 좋은 회사로 가는게 어떨까? 조금만 더 같이 일하면서 역량 쌓고, 내년에 이직하자. 올해는 아니다'  (근거 없는 희망)

'이런저런 부분을 보완하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기에, 내가 올해는 그 부분에 중점을 맞추어 A님의 성장에 큰많은 도움을 드리려 계획하고 있었다. 타이밍에 이직을 하면 흐름이 끊긴다. 조금 더 성장하고 가자. 내가 더 잘할께'  (무조건 사정)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양한 설득 멘트를 바쁘게 날렸다. 후배 A가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번 다시 생각해볼 기회는 주고 싶었다.  아끼던 후배이기 때문에 도전을 응원하는 마음도 있지만, 조금 더 같이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2차 면담 이후 주말을 보내고 온 후배의 결론은 여전히 '죄송합니다.'였다. 당연한 대답이었다. 옮길 곳이 확정되면,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네, 알겠어요. 마무리 잘 해봅시다' 로 퇴사 면담은 마무리 되었다.


나는 4번의 이직을 하였다. 첫 이직은 회사 네임 밸류만 보고 결정했었고, 업무가 너무 맞지 않아 1년을 겨우 채우고 두번째 이직을 했다. 그리고 조인한 회사에서는 5년을 일했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세번째 이직, 또 다시 5년을 일했다.  그리고 네번째 이직 후 지금 회사에서 4년 가량을 일해오고 있다.  매번 이직의 이유는 같았다. 마케터로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시야를 높이기 위해 해왔던 선택 들이었다.  그 선택들 속에서 많은 동료들에게 안녕을 고했었다. 익숙한 업무에서 벗어난다는 시원함, 새로운 업무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떠날 때의 마음은 항상 후련했었다. 친한 상사,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은 아쉽지만, 그게 뭐 중하리. 어차피 그만둬도 만날 사람은 만날꺼고, 중한건 나 자신인데.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연차가 점점 많아지면서, 내가 후련하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작별을 고하는 순간보다 서운함을 가지고 '잘가요. 그동안 수고했어요' 라고 인사하는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결코 쉽지는 않다.  1차적으로는 팀원의 결원으로 생기는 업무 리소스의 손실, 대체할 사람이 오더라도 교육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 등과 같은 팀장으로서 겪는 실무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더 쉽지 않은 건 작별 그 자체다. 아무리 요즘 친구들이 개인주의적이라 하더라도, 워라벨을 철저히 분리하고 상사 = 불편한 존재라는 등식이 뿌리 깊이 자리 잡아 있더라도, 내가 그들에게 향하는 마음까지 억지로 거기에 맞출 수는 없다.  팀장은 그 누구보다 팀원들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일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감정, 표정을 읽고 문제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한다 (내가 예민한 편일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그들의 입장일 때 어땠을까 자문자답하고 감정을 이입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 성찰의 결과가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에 대한 내 인식의 방향을 수정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게끔 노력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 보면, 그들이 나에 대해 가지게 되는 감정의 정도에 비해 나의 그들에 대한 감정의 정도가 좀 높아지게 된다. 당연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나름대로의 '정'을 가지게 된다. 일단 나는 그렇다. 아끼던 후배라면, 말할 것도 없고..


후배들한테 항상 말해왔다. 이제 '직장'이 아닌 '직업'이 중요한 시대이고, 너만의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경험의 확장은 필수고, 그를 위한 이직이라면 언제든 응원한다고. 두려워 할 필요 없이 새로운 무대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이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유능한 친구들일 수록 더 응원하고 격려할 것이다.  


다만, 작별의 순간은 항상 씁쓸하고 허전할 것이다. 지금의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일꺼다.

그저, 언젠가 나와 같이 '잘가요, 수고했어요'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들이 오면 알게 될꺼라 생각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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