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뷰징 업체에 입사하기 전, 이 회사는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것도 일부가 아니라 절반 가까이를 내보냈다. 회사의 외양은 화려했지만 사무실 안에는 주인 없는 빈 자리가 주인이 있는 자리보다 많았다.
어뷰징은 전문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언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경영자가 신생업체를 만들어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 몇 개 붙이고는 대충 기사 베끼라며 순진한 청년들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업체에 들어갔다면 나는 버티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고 그 경영자의 미련함에 고개를 내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일하던 관리자들은 본인의 분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정리해고라는 칼바람에서도 살아남았고 회사가 하루라도 더 연명하게 만들 방법을 모색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제대로 취재하고 좋은 기사를 내는 보람을 알았다. 여성 노출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침이나 어뷰징의 자괴감을 너무나 잘 알았고 어뷰징이 언론을 황폐화시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아가서는 어뷰징이 결국 회사의 목을 조를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어뷰징팀이 함께 트래픽 순위를 점검하다가 자사 사이트에서 트래픽 순위 21위를 차지한 기사가 포털 3위에 랭크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포털이 이 회사보다 인터넷 점유율이 훨씬 높은데, 포털 전체에서 3위를 차지한 기사가 어떻게 자사 순위는 고작 21위에 불과할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들은 언론사를 찾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자신이 어떤 루트로 뉴스를 보는지 떠올려 보자. 대개는 어떻게든 포털을 거친다. 포털로 접속해 메인 화면에 뜬 기사를 클릭하거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클릭해 그때그때의 기사를 확인한다.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가 있어도 그와 관련된 검색어를 포털에 입력해 들어가지, 해당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놓고 직접 접속하는 일은 드물다.
언론사가 기사 하나를 올리면 그 기사는 연동되어 포털로 올라간다. 모바일 환경이 되면서 포털에 제공된 기사를 보는 사람들은 언론사에 접근할 필요없이 계속 포털만 빙빙 돌다 나가게 된다. 기사는 언론사가 올리지만 포털의 트래픽만 올라가는 것이다. 재주는 언론사가 넘고 돈은 포털이 챙긴다. 포털은 이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판단해 포털 메인에 기사를 내걸었고 포털 랭킹 3위를 차지했지만 막상 이 회사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이 기사를 본 사람은 많지 않아 언론사의 트래픽 순위는 21위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털 3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 수치냐고 물었더니 어쨌든 포털에서 상위 랭크를 차지한 기사가 하나 나오면 그 기사를 통해 자사 홈페이지로의 유입을 노릴 수 있다고 했다. 하단에 배치한 인기기사나 연관기사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인기기사나 연관기사는 실제 인기기사나 읽은 기사와 연관도가 높은 기사를 시스템이 알아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기사를 언론사 내부에서 편집해 넣는다. 당연히 여성 노출 기사를 주로 넣는다. 열악한 언론사의 경우 이 부분을 편집할 여유도 없어 몇 주째 똑같은 연관기사 리스트가 나가기도 한다.
이 회사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인터뷰하기 어려운 사람을 공들여 섭외해 좋은 기사를 단독으로 내기도 했고 스포츠 전문기자가 고품질의 분석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다. 품을 들여 기사를 써 올리고는 회사 차원에서 해당 기사를 전면에 배치한다. 그리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트래픽 순위를 받아보니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투자한 기사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여성 노출 사진 한 장 가져다 올린 것보다 조회수가 한참 낮은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나 기자 입장에서나 맥이 빠지는 일이다. 맥만 빠지면 괜찮은데 광고 수익도 안 들어오고 나중에는 기자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상황을 맞는다.
한국은 기자가 아무리 경력이 뛰어나고 실력이 있어도 어느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고는 독자적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렵다. 그러니 기자는 회사 꼴이 이게 뭐냐며 대책 없이 사표를 던질 수도 없다. 그들은 어떻게든 회사가 굴러가게 만들어야 한다. 어뷰징은 생존 수단이지,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다. 어뷰징을 그만두면 지금 죽고, 어뷰징을 계속하면 하루를 연명할 수 있다. 언론을 황폐화시키는 대가로 하루를, 또 하루를 더 사는 것이다.
나는 어뷰징에 반대하고 여성 노출의 방침에 구역질을 느꼈지만 이 회사에 남은 기자들은 취재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 어뷰징이라는 벼랑까지 몰린 게 아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정보 소비자들이 고품질의 기사보다 여성 노출 사진을 더 원한다니 이들은 기자로서의 자존심까지 버리고 자사 사이트를 그에 맞게 바꿔나간 것이다. 네티즌이 공들인 기사를 선호하고 어뷰징 기사를 기피한다면 기자들이나 나나 어뷰징팀의 다른 직원들이 어뷰징을 할 이유가 없다.
현재 포털은 자체적으로 고품질 콘텐츠를 생산할 능력이 없다. 과거에는 더더욱 없었다. 이는 포털이 자랑하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가운데 포털이 생산하는 콘텐츠가 올라가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포털 검색어의 대부분은 전날이나 당일의 예능 또는 드라마 프로그램이다. 혹은 출연자나 가끔 연예인 스캔들 정도가 올라온다.
포털 중에서도 네이버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인터넷 이용을 네이버로 시작해서 네이버로 끝내는 것을 목표로 잡고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 기사 콘텐츠 생산 능력을 가진 언론사가 네이버에 기사를 공급하는 게 당장은 돈이 들어오니 실적이 쌓이는 것 같겠지만 이 일이 장기화되면 사람들은 포털, 특히 네이버에 가면 모든 기사를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단계에 이르면 언론사는 네이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사실상 종속된다. 이 일은 이미 거의 성공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는 어뷰징뿐 아니라 언론 전체가 처한 문제지만 이와 관련된 기사는 가뭄에 콩 나듯 1년에 한 번 볼까말까하고, 기사의 온라인 공급에 관한 정책을 짜는 기자들은 네이버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않는다. 오히려 네이버에서 어떻게 하면 금싸라기 땅을 점할 수 있을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나는 이런 모습이 나라 팔아먹고 애국자를 자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방금 언급한 이야기는 어뷰징 업체가 아니라 그나마 제대로 기사를 낸다는 언론사의 이야기다.
네이버 메인에 걸리는 기사는 네이버의 뉴스 편집자가 선택하지만, 검색어 클릭 화면에서 기사를 상위에 노출시키겠다는 의도라면 좋은 기사를 쓸 필요가 없다. 특종을 잡은들 어차피 어뷰징을 하는 타사가 긁어가면 우리가 잡은 특종은 맨 뒤로 묻히고 어뷰징으로 복사와 붙여넣기를 하느라 우리보다 늦게 올린 타사 기사가 상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땅콩 회항 사건 직후 KBS는 사무장을 단독 인터뷰해 내보냈다. 사무장이 KBS 뉴스에 출연한 사실과 인터뷰 내용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가운데 KBS 뉴스를 직접 봤거나 KBS 홈페이지에 접속해 리포트를 확인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해당 뉴스를 캡처한 이미지 하나와 복제되어 포털에 일파만파 퍼진 어뷰징 기사를 읽었을 것이다. 특정 언론사가 어떤 보도를 했다는 게 화제가 되어도 사람들은 언론사를 찾지 않고 포털을 찾는다.
언론의 포털화와 언론의 디지털화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어뷰징을 하는 업체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언론사의 상당수도 자사 홈페이지와 어플리케이션에 검색이나 정렬 순서 변경 등 기본 기능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 너저분하게 광고만 붙여 독자에게 불편을 준다. 그저 포털을 통해 트래픽을 올려야 한다며 포털에 기사를 하나라도 더 납품하는데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언론사들은 점점 독자적인 정보 유통망을 빼앗기고 네이버가 기사 유통망을 장악하는 모습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다.
기자와 정보 소비자는 어뷰징을 비난하지만, 그들은 포털을 떠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