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뷰징 담당으로 한 달을 일하고 회사의 인사 정책이 급변했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당일로 통보를 받고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어뷰징이 싫었고 여성 노출 위주의 방침이 싫었기 때문에 회사에 아무 미련이 없었다. 당장 생계 문제가 막막했지만 파견회사와의 계약은 1년으로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에 유예기간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알았다고 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비롯, 나름대로 회사에 정이라도 붙여보려고 구입한 몇 가지 개인 기물을 그 날로 챙겨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나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뷰징팀의 담당 팀장은 나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주었다.
어뷰징 회사가 나를 자를 이유는 하도 많아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적으로는 1위였지만 열정 페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시간 외로 일할 부분에 대해서 별도 비용을 요구했으며, 회식 중간에 도망갔고, 상부의 기사 방침에 수차례 반발했다. 그 외에 회사에 말하지는 않았지만 꾹꾹 눌러왔던 여러 불만을 관리자들이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인사 정책이 급변했다는 게 진짜 이유일 수도 있다. 그만큼 회사의 사정이 나빴다. 해고 사유야 어쨌든 지금껏 내가 쓴 글을 보면 회사가 나와의 계약을 하루라도 빨리 해지한 것이 얼마나 현명한 결정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사실이 파견업체에 통지되었고 파견업체 에이전트는 나에게 연락해 다른 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근로계약서의 거의 모든 조항이 나에게 불리하지만 단 하나 유리한 조항이 이것이다. 파견근로법상 사용사업주의 사정으로 직원이 해당 파견지에서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되면 파견업체는 최우선적으로 내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어뷰징 업체가 나를 쓰지 않겠다고 했어도 나는 파견회사와 1년간 계약이 되어 있었기에 파견업체는 일방적으로 나를 해고할 수 없다.
회사를 떠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사용사업주가 나에게 그만 나오라는 통지를 한 다음날로 고용보험 상실처리가 된 것을 알았다. 파견업체 에이전트는 다른 자리를 알아보겠노라고 나에게 연락했는데 사실은 나를 퇴사처리한 것이다. 나는 사직서를 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해고한다는 말 한 마디 듣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더니 부당해고가 맞다고 했다.
이에 나는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파견업체는 이 일을 심판기일까지 차일피일 미루더니 막판에는 나에게 전화해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라고 했다. 부당해고에 대한 이야기는 어차피 취하할 생각이 없지 않냐는 것이 전부였다. 취하하지 않으면 출근명령을 내리겠다고 했다. 파견직 직원이 출근명령을 받게 되면 사용사업주 쪽이 아니라 파견업체 본사로 출근해야 한다.
해직된 기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본다. 그들의 소송 목적은 원직복직이겠지만 나는 상황이 달랐다. 파견회사는 나를 원직복직시킬 능력이 없었다. 해고되었다고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들 복직을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게 파견직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파견업체에서 에이전트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러면 나도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피라미드에 올라서는 꼴이 되었다. 근로계약서상 나는 인터넷 언론사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파견업체에 출근해 기사라도 쓰라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사라는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충분한 취재력을 갖고도 침몰해 가는 언론사를 수없이 봤는데 직원을 돈으로 보는 파견회사 따위가 나에게 어디에 기사 작성을 시키겠다는 걸까. 출근명령을 받아 출근한들 모든 직원에게 찍힌 마당에 나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버틸까. 나는 파견회사 소속으로 되어 있지만 오히려 사용사업주에게 소속감을 느꼈다. 나에게 파견업체는 그저 내 월급을 중간에 30~40%씩 떼먹는 악덕업체에 불과했다.
파견업체는 출근명령을 무기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제법 유용했다. 나는 두 달 분의 급여를 받고 싶다고 했지만 파견업체는 한 달 분의 급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출근명령을 하겠다고 했다. 내가 뭘 하더라도 이들은 부당해고에 대한 패널티를 받을 일이 없었다. 정부가 관리하는 부당해고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출근명령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최저시급은 악덕업체의 공기를 마시며 받을 스트레스를 상쇄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한 달 분의 최저임금을 받고 이 일과 관련해 어떤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말았다. 합의취지는 화해지만 나는 여전히 일하지 않고 중간에서 돈만 가로채는 그들에게 이를 갈고 있고 그들도 내가 마음에 들 리 없다. 이제 나는 파견업체를 통해 언론사에 진입할 길은 막힌 셈이다.
내가 아는 기자 가운데 한 명은 약한 사람을 돕기 위해 기자가 되었다고 했다. 언론사 지망생들은 이처럼 언론에서 희망을 본다. 부정비리를 밝혀내면 세상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언론사에 입사한다. 언론사에서 제대로 일하려고 하면 부정비리와 싸울 일은 참 많다. 외부의 부정비리와 싸우기도 어렵고 내부의 부정비리와 싸우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언론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정비리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것도 철저히 다물어야 한다. 나는 언론사 세 곳을 겪으며 펜의 힘보다는 침묵의 카르텔을 배웠지만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해 늘 외로운 싸움을 치렀다.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저 내가 머무르는 곳만이라도 상식이 통하는 곳이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들은 벽에 부딪힌 공처럼 무력감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상식적이어야할 언론사에서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