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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08. 2019

어뷰징 업체를 떠난 후

어뷰징 업체를 떠나고 시간이 좀 지난 후의 일이다. 인터넷을 보다 우연히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다니던 어뷰징 업체에서 출고한 기사였는데 작성자를 보고 약간 놀랐다. 어뷰징팀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 중 한 명이 이제 자신의 바이라인을 달고 기사를 내고 있었다.


뭔가 상황이 달라졌나 해서 업체명과 그 직원의 이름을 함께 넣고 포털에서 기사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를 보니 어뷰징에서 진일보한 기사를 내고 있었다. 방영 중인 드라마의 내용을 종합하거나 화제가 되는 연예인 또는 운동 선수의 이력을 정리하는 것으로, 예전에 한 차례 언급한 리사이클링 기사다. 일반 어뷰징 기사가 타사의 기사 하나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라면 리사이클링 기사는 주제 하나를 정해 옛 기사 여러 건을 묶은 것을 말한다. 이런 기사는 아무래도 어뷰징 기사보다는 글이 길어지는데 그렇다고 해도 신문에 실리는 주요 기사보다 짧은 수준이다. 어뷰징 업체는 글이 길다는 핑계로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묶은 기사 하나를 서너 건으로 나눈다. 그리고 기사마다 사진까지 몇 장 첨부하면 스크롤이 뻥튀기된다. 그러니까 짜깁기한 기사 한 건을 독자가 그럴듯한 연재 기사 서너 건으로 보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리사이클링 기사는 일반적인 어뷰징 기사에 비해 길이가 길고 제목도 포괄적으로 다는데다가 이런 기사는 서로 베끼는 것도 아니어서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언뜻 보면 분석 기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꺼풀 들춰보면 규모만 다를뿐, 취재 없이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모아 기사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즉 그들은 여전히 어뷰징만 하고 있었다.


기명기사들을 보니 그들의 업무가 어뷰징인 것은 확실한데 하루에 내는 기사 수는 내가 있을 때 그들이 내던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다. 계속 일하면서 어뷰징 요령이 늘면 늘었지, 퇴보할 리는 없다. 기사 작성 건수가 많아도 해고당하는 마당에 어뷰징 기사를 일반 취재 기자들과 비슷하거나 더 적은 건수로 내는 어뷰징 담당자를 회사가 남겨뒀을 리도 없다. 추측으로는 하루에 기사 몇 건만 본인의 이름을 적어 기명기사로 내고 상당수는 바이라인없이 내는 것 같다. 그들은 지금도 회사에서 제대로 인정받는 인력이 아닌데 이는 그들이 기명기사는 내지만 회사가 그들에게 메일 주소조차 주지 않은데서 알 수 있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의 이름을 그렇게 찾아보니 남은 사람은 소수고 다수가 해고되거나 그만둔 모양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래도 기사를 성의있게 쓰던 직원은 회사에 남아있지 않았고,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의문점을 가질 줄 알았던 직원도 이제 없었다. 남은 직원은 해당 팀에서 기사를 잘 쓰던 사람들이 아니어서 회사의 해고와 고용 기준에 의문이 생겼다. 남은 직원이 최근에 쓴 리사이클링 기사가 기명기사로 남아있기에 읽어봤는데 거칠다거나 미숙하다는 말로 포장할 수 없을 만큼 조악했다. 나만의 착각은 아닌 것 같다. 직원의 이름과 회사 이름을 넣어 검색했더니 어떻게 게시판 수준도 안 되는 것을 기사라고 냈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기사 링크와 함께 출력되었다.


이들이 기명기사를 내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취재를 하지 않고 기사를 내기 때문에 자신이 낸 기사를 책임질 수 없다. 그들은 더 위험해졌다. 기사 작성이 아닌, 기사 복제 요령만 배우고 일했는데 이제 바이라인 뒤로 숨지도 못하게 되었다. 다른 언론사 경력직으로 가면서 기명기사를 제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어뷰징 업계에서의 이동은 가능할 것이다. 어뷰징 계통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애쓰는 인사가 몇 있다고 했다. 나는 이들을 결정하는 기준도, 회사의 해고 기준도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나라면 남겼을 사람은 없고 그 반대의 사람은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하는 유능함과 어뷰징 업체가 생각한 유능함은 퍽 다른 모양이다.


내부에 남은 어뷰징 담당자가 업무를 통해 기자로서 성장을 이룬 것 같지는 않다.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그 원인이 포털이 아닌 경우, 그들은 해당 검색어가 왜 올랐는지를 알아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저 검색에만 걸리게 몇 달 전의 기사를 다시 긁어다 붙이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어뷰징 기법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했다. 이시각 키워드라며 대놓고 실시간 검색어 여러 건을 제목에 나열해 기사 하나로 검색어 서너 개를 커버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어뷰징 담당자도 모르는 내용을 기사에서 다루지도 않고는 버젓이 제목으로 다는 낚시, 중의적인 제목 달기도 점점 늘고 있다.


한국 네티즌으로 기사를 볼 생각이 있으면서 어뷰징 기사를 피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껏 찾지 못했다. 나는 어뷰징 기사 작성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뻔히 알지만 여전히 그들의 트래픽을 올려주는 수익원이기도 하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호기심에 검색어들을 한 번 클릭해보고 별 내용이 없어도 괜히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어떤 기사도 안 본다면 모를까, 기사를 볼 생각이면서 어뷰징 기사를 피해 읽을 방법은 없다. 포털 우측 상단의 검색어 하나를 클릭해 통합검색화면을 보면 페이지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전부가 어뷰징으로 만들어진 문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뷰징 기법은 점점 진화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정보성 글이나 기사를 쓰는 사람은 어뷰징 기법을 모르기 때문에 인터넷에 좋은 콘텐츠를 공개하고도 검색 화면 끄트머리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기도 어렵다. 광고성 글, 어뷰징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글의 품질에 절대 공을 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검색어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검색어 화면에 잘 걸리는지에 날마다 몇 시간씩 투자하고 그것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다. 남의 기사를 보란듯이 베끼고도 원본 기사보다 내가 베낀 기사를 더 상위에 올라가게 하거나, 기사를 베꼈는데 왜 원본이 내가 베낀 기사보다 상위에 있는지를 연구하고 한 명이라도 사이트에 더 들어오게 하기 위해 그들끼리 서로 경쟁하며 새로운 기법을 만든다. 순진한 콘텐츠 제작자가 이들에게 밀려나는 것은 안타깝고 황당하고 이러면 안 되지만, 당연하기도 하다.


이 문제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포털을 끊고 언론사 사이트를 즐겨찾기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것은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동참하면 모를까, 나 한사람만 어뷰징을 피해가자는 생각이라면 소용이 없다. 이미 대부분의 언론사가 포털의 검색어를 따라가는 방침을 정한지 오래다. 이제 언론사 사이트로 직접 들어가도 포털과 어뷰징이 한바탕 휩쓴 길을 그대로 지나가게 된다.


어뷰징에 대한 내 이야기는 17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뷰징 업체를 떠난 후 나는 다시 실직자가 되었다. 내 메일함에는 제출되고 소식 없는 이력서 메일 수백 통이 있다. 나는 오늘내일 먹을 밥을 걱정하며 새로 이력서를 쓰고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린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라는 속담의 물음표가 조금씩 지워지더니 이제는 마침표만 남은 것 같다. 나는 난파선에서 망망대해로 쫓겨나 다른 배를 찾고 있지만 배는 보이지 않고 갈 길은 요원한데 내 손에는 나침반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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