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님의'행복한 개구리' 되기
얼마 전, 구글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님께서 유퀴즈(115화, 21.07.14)에 나오셨다. 링크드인 1촌이었던 분이라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저번 주 예고 등장부터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에는 구글 외에도 빅테크 회사들에 재직 중인 한국인을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지만 내가 대학교를 갓 졸업했던 시절만 해도 주요 테크 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의 소식을 듣기는 다소 어려웠던 것 같다. 이번에 구글의 일반적인 연봉, 복지 내용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해주셔서 김은주 디자이너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해외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부 때 우연한 기회로 미국 LA에 위치한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 회사였던 탓인지 미국에 가기 전 실력이 향상될 거라 예상했던 영어와 디자인만 빼고 다 늘었던 경험이 있다.
인턴 생활 동안에는 미국 내 한인 이민자의 삶이 비자와 영주권, 시민권 등 visa status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 식당, 마트, 병원, 교회, 변호사 등을 이용하는 패턴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일해보고 싶던 곳들은 북미 메이저 회사들이었기에 한국 회사가 아니라면 커리어도 라이프스타일도 뭔가 다를 것이라는 마음속에 막연한 기대와 이상을 항상 가지고 살았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항상 뭔가를 성취하고 더 나아지고 싶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유일한 지표였고, 각종 눈에 보이는 성적 숫자를 바꾸면 내가 그만큼 성취하는 것 같았다. 마음 한켠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좋은 성적을 받으려 애썼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나이가 들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커리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내에서도 사람에게서도 그냥 뭐든 잘하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고 인성도 나이스, 퍼펙트, 굿으로 무장한 짱짱맨이 되고 싶었다. 사내에서의 추가 프로젝트와 기본 업무, 그리고 매니징에 있어서도 내가 있는 에너지 전부를 쏟아부었고,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참 열심히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부 때 선배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근황 얘기를 하다 보면 나와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항상 뭔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았고, 반면 선배들과 지인들을 보면 어느새 해외 주요 빅테크 회사 입사 혹은 뭔가 뛰어난 성취들을 해내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정말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남들은 다 쉬워 보이는데 나는 왜 안될까, 내가 선택을 잘못했던 걸까, 내 실력이 부족한 것 같다, 성격이 문제인 것 같다, 내 직무가 문제인 것 같다' 등 내가 안 되는 이유를 찾기에 급급했고,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떨어진 자존감이 함께 어깨 뒤에 짐처럼 따라다녔다.
나의 커리어는 내 이상과 항상 거리가 있어 보였고 가까워질 기미조차도 없어 보였다. 덤으로 회사에서의 크고 작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는 극도로 심해져갔다. 그러다 보니 나의 총 에너지는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문제가 너무 꼬여버려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꼬여진 실타래 같은 마음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유퀴즈 방송을 보게 되었다.
구글 입사 후 성과 평가나 문화가 달라 개인적으로 겪었던 어려운 경험을 이야기해주셨다.
김은주 디자이너님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쉬기 어려워지고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잘릴 거라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미국은 성과가 낮으면 바로 해고거든요. 실력이 없다는 걸 알아챌 거라는 불안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사는 '당신 몸과 마음이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애쓰니까 지금 애쓰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고 조금만 본인한테 친절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김은주 디자이너님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서 회사로부터 올해 성과 평가가 시작된다는 공지를 받고, 디자이너님이 팀원들에게 전체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 모두 잊지 말도록 해요. 우리 모두 다 각자 보석 같은 사람들이고 혹시라도 '난 여기에 속하지 않아. 부족해'라고 괴로워하고 있다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며 아래 <우물 안 개구리> 스토리를 같이 보냈다고 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스토리는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쓴 글이라고 하셨다. (풀스토리: 김은주 디자이너님의 개인 링크드인에 올려주신 미디엄 글 https://medium.com/the-innovation/are-you-happy-living-in-the-usa-as-an-alien-ca5d7d68d751 )
<우물 안 개구리>
한국에 살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자는 마음으로 미국에 갔다. 좁은 우물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떠났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다 보니 한인들 모여 있는 곳 : 한인 식당, 한인 교회 등 문득 돌아보니 나는 한국에서 보다 더 작은 우물에 살고 있었다. 한동안 이 고민으로 괴로웠다. '내가 이럴 거면 여기에 왜 왔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온 깨달음. 내가 왜 '어디에 있는가'에 집중할까. 우물 안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물 안 개구리>의 핵심은 우물 안에서 불행하게 산다는 것이다.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개구리인 나를 버리고 바다 개구리가 되려고 엄청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바다 개구리'라는 것은 없다.
저는 그냥 개구리인 거예요. 개구리라는게 문제가 아닌 거예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개구리가 어때서? 나 개구리야!' 개구리인 것으로 행복하게 살자라고 생각했다.
"난 행복한 개구리입니다"
>>풀스토리 링크는 김은주 님이 개인 링크드인에 남겨주셨습니다. https://medium.com/the-innovation/are-you-happy-living-in-the-usa-as-an-alien-ca5d7d68d751
난 행복한 개구리입니다
이 이메일을 보낸 이후로 많은 답장들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구글러들이 쓴 사내 이메일을 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답장 이메일 이외에도 별도 개인 면담 요청한 분들도 많았는데, 만나면 딱 쳐다보고 그분이 울기 시작하면 김은주 디자이너님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울고 그렇게 서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나도 영상을 보며 울었다. 나도 그 메일을 보낸 누군가, 개인 면담을 신청한 그 누군가와 같은 마음이었다.
한국 어디에선가 버티는 직장인인 나와 구글의 어느 이름 모를 디자이너도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힘들어하고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주요 기업인 구글 재직자라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치 인생 선배 누군가가 '우물 밖 개구리들도 같은 개구리야. 나도 그냥 개구리인데, 나랑 같이 행복한 개구리가 되지 않을래?’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도 속한 곳 어디에서나 커뮤니케이션, 성과, 결과물들로 날 입증해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스스로 혹은 조직에서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긴 경험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로 인해 스스로 압박을 받기도 했고, 나를 채찍질하기에 바빴다. 보이지 않는 채찍질로 나를 상처 내고 더 노력하라고 푸시하며 직장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시장에서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압박감에 내 몸이 쪼그라들어 없어질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 땐 그저 혼자 몰래 눈물을 훔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긴장되고 숨쉬기도 어려워지는 경험을 하면서 이러다 큰 병 걸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두려워지기도 했다.
나에게는 내가 갖지 않은 것을 크게 보고 내가 가진 것은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A는 B의 서울/수도권의 집을, B는 C의 커리어를, C는 A의 안정된 결혼생활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것만 가지면 행복한 개구리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노력한다.
나는 우물 안에서 나는 왜 바다에 못 가냐고 커리어에 불평하고 좌절하는 개구리였다.
분명 나는 우물 밖에 나가기만 하면 달라질 거란 환상으로 버티고 살았다. 그런데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문제는 우물이 아니란 것을 알아버렸다. 우물 밖으로 그렇게 나가고 싶었던 나인데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우물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우물 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바다에만 가면 행복할 줄 알고 상상하던 나였지만 내가 우물 안에 있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불행한 개구리라고 인정하게 됐다. 사실 내가 불행한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는 데까지도 몇 년에 걸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힘들어’라는 마음에만 빠져서 사느라 스스로를 그 생각에서 꺼내 줄 힘도 정신도 없었다. 그렇지만 최근 행복한 개구리가 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걸 깨달았고, 몇 년간 심리상담의 도움으로 한 발씩 한 발씩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시도한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베이킹이다. 베이킹 덕분에 퇴사하지 않아도 행복한 개구리가 되는 과정의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꼭 소개하고 싶다.)
지금도 어렵지만 스스로를 관찰하고 돌보며 행복한 개구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우물 안 개구리> 글에 답변 보냈던 어느 구글러의 깨달음을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나여도 괜찮아.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스스로 압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나여도 괜찮고, 내가 가진 것보다 나의 결핍에 집중해 나를 사지로 몰아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각자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진 보석 같은 존재다.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당신도 행복한 개구리가 될 수 있어요. 우리 같이 행복한 개구리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