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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즈 ciriz Oct 22. 2021

멈출 수 없는 눈물과 함께 번아웃이 와버렸다

제주도 그리고 베이킹

제대로 돈 되는 사이드 프로젝트 찾기에 점점 조급함이 더해가고 있었다.

어느새 긴 외투를 꺼내 입는 계절이 다가왔고, 우리 팀에도 많은 인원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 팀원 분은 퇴사를 했고 다른 팀에도 새로 온 팀원들과 작별해야 하는 팀원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약 20명이 참여하는 큰 회식을 앞두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을 들렸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일이지? 나 심지어 회식도 기대하고 있었잖아…그런데 눈물이라니 왜 이러지…’

스스로 너무 당황스러웠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흐르는 눈물을 정리하고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왔을 때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도저히 일을 지속할 수 없는 수준이라 매니저에게 DM으로 말씀드리고, 반차를 냈다. 

깜짝 놀란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다. 

“유진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라고 질문을 듣는 순간, 걸어가는 길에서 눈물이 더 품어져 나왔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요..” 

나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

“오늘 반차 말고 내일도 휴가 내고 주말까지 푹 쉬어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잘 쉬어요 꼭” 

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집으로 왔다. 


놀란 나를 달래주는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마음을 안정해보려 했지만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내 몸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지,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마주한 건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 최근 우리 팀원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퇴사했다. 
- 나머지 몫까지 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음이 스스로를 압박했다. 
- 개인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그동안 열심히 찾아 헤맸다.


내가 생각해낸 건 이 3가지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눈물이 날 정도의 힘이 들지는 않았다. 분명 난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의 반응을 보니 몸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회사로 다시 출근한 월요일. 매니저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했던 말은 주로 '전 그다지 힘들지 않은데, 내 몸이 이렇게 반응해서 당황스럽다'였다.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다. 

그랬더니 매니저가 말했다.

“저도 타운홀이 끝났는데 갑자기 울음이 멈추지 않아서, 그 길로 바로 퇴근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나아졌던 것 같아요. 유진도 꼭 잘 쉬면서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유진이 나아지려면 지금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추가 인원을 채용하올해 내로 1주일 이상 긴 휴가를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요 ” 

회사 매니저가 도와줄 수 있는 최대치였다. 이외에도 나의 마음에 나의 상태가 괜찮은지 물어보는 대화가 오갔고, 나는 그런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컸다. 


몇 달 후, 매니저가 약속한 대로 여러 채용 과정을 거쳐 나와 함께 일할 인턴을 채용했고, 연말이 다가와서 긴 휴가도 갈 수 있게 됐다.


휴가지는 코로나 시국에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제주도였다.

제주도에 마침 4년 전 같이 일했던 골방 회의실의 E선배가 거주하고 계셨다. 난생처음으로 관광을 위한 코스가 아닌 쉼을 위한 무계획으로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제주는 12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곳이었다. 

12월의 제주도 (c) ciriz

회색도시 서울과는 다른 곳임에 확실했다. 처음으로 빌리는 렌터카와 함께 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관광지도 아니고 제주도 거주민의 삶을 사는 느낌이라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선배의 집에서 본 제주도는 또 달랐다. 도심인데도 저 멀리 바다와 나무들이 보였다. 집에서 보이는 뷰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던 것 같다.


부동산 아저씨가 이름 붙여준 '퍼시픽 오션 뷰' @E선배 집

 


베이킹의 시작

제주도 동네를 구경하며 선배와의 그간 삶도 업데이트했다.

E선배는 현재 호텔업계에 종사하고 있는데, 코로나 직후 2020년 초반에는 제주도 호텔업계에 타격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 베이킹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베이킹이요? 오 대단해요 진짜!!”

“너도 빵 한번 만들어 볼래?”

“제가요?”


빵은 사 먹을 줄만 알았지, 누군가 만든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웬만한 곳이라면 동네에 하나 이상의 빵집이 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까 사 먹기가 훨씬 쉬웠다. 그런 내가 선배의 권유로 선배와 함께 집에서 빵을 만들게 됐다.

생각보다 빵 만드는 재료는 간단했다. 빵마다 다르지만 기본 빵에는 물, 강력분 밀가루, 이스트, 소금 이렇게 4가지만 있으면 된다. 

밀가루와 물의 비율을 맞춰서 넣고 이스트와 소금도 넣었다. 재료를 넣고 조물조물하니 한 덩어리의 빵 반죽이 완성됐다. 그리고 발효하는 시간을 거친 후에 성형(우리가 먹는 빵의 모양으로 만드는 과정)을 하고 오븐에 넣으면 끝!

깜빠뉴 완성!

아까 분명 밀가루였는데 몇 시간 후에 빵으로 완성되어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심지어 갓 만든 빵이라 맛도 있어서 뿌듯함도 얻을 수 있었다.

이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집에도 오븐이 있으니 휴가 끝나고 다시 돌아가면 베이킹을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선배에게 배운 대로 만들어봤다. 그런데 분명 선배랑 만들 때와 같지 않았다. 똑같은 레시피인데 모양이나 질감이 왜 이렇게 다르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말해줄 수 있는 선배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 와중에도 빵은 레시피를 따라 어째 저째 완성은 됐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내 손으로 처음 만든 빵은 실패로 끝이 났다. 

실패해서 아쉽긴 했지만 분명 회사에서 겪는 실패와는 느낌이 달랐다. 실패 자체보다는 간단한 재료로 새로운 먹을 것을 만든다는 재미가 더 컸기에 좌절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곧장 ‘다음에 다시 해보면 된다’라는 말을 되뇌면서 하루빨리 만들고 싶어졌다. 


예전의 나라면 '실패=재미가 없다'였다. 그래서 기존 사이드 프로젝트들도 얼마 못가 중단됐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베이킹만큼은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도, '아쉽네. 그래도 다시 도전해봐야지'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변덕이 심한 내가 어떻게 베이킹에서는 재미를 찾을 수 있었을까? 베이킹은 대단한 재료가 없어도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밀가루의 촉감과 향을 느끼는 자체가 좋았고, 결과물도 웬만하면 하루 안에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성격 급한 내게 제격이었다. 


1번의 실패를 무릅쓰고 다시 도전하기 위해 선택한 빵은 베이커리의 가장 기본적인 ‘식빵’이었다.

식빵 틀 1개와 이스트는 인터넷에서, 강력분은 마트에서 구매했다. 유튜브를 뒤져서 적당해 보이는 영상을 찾아냈다. 영상을 보고 잘되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료를 한데 섞고, 발효하는 시간을 거쳤다. 그리고 식빵의 봉긋한 모양을 만드는 성형과정까지 마쳤다. 

식빵을 만들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식빵을 구우면 겉면이 알아서 갈색 껍질이 되는 건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그 갈색 표면이 되려면 계란 노른자 혹은 계란 노른자+우유 물칠을 해주면 표면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갈색 껍질로 변신한다. 

이렇게 에그 워시 처리를 한 빵을 오븐에서 구운 결과. 성공이었다!


처음 성공한 식빵 (c) ciriz


처음 만든 빵이라 그런지 맛은 뭔가 조금 부족한 듯했지만 모양과 맛이 크게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식빵을 성공한 이후로는 베이킹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계속해서 새로운 메뉴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1주일에 2-3개씩 만들어나갔다. 크루아상, 깜빠뉴, 치아바타, 포카치아 등 주로 밀가루와 이스트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재료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만드는 법에 따라 매번 새로운 빵이 탄생했다. 

베이킹 경력 3주째 만든 빵들(견과류식빵, 깜빠뉴, 치아바타)


주변에도 종종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다들 엄청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잘한다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잘한다고 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처음 실패 이후로는 시도해보는 빵마다 맛도 있고 모양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 기세를 몰아 제빵/제과기능사 자격증을 따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학원을 알아봤고, 주말반은 꽉 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평일 저녁반으로 등록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회사에서 더 열심히 집중해서 업무 했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고 일처리를 제대로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의 추천으로 제과기능사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클래스에서는 자격증 20가지 품목의 레시피와 공정을 실습해보았다. 한번 빠지면 레시피를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기 위해 정말 애썼다. 



병원 투어와 공황발작

퇴근 후에 제과학원에 가고 약 2-3시간 동안 1주일에 3번 정도 참석하다 보니 점점 지쳐가고 힘이 들었다. 

사실 제주도를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잠을 자도 너무 피곤했다. 항상 잠을 자면 개운한 느낌은 없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한 2개월쯤 더 지나니 아침에만 머리가 아프던 것이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받아보려던 수면다원검사를 받게 됐다. 얼마 후 결과를 들을 수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장했고, 수술은 입원에만 5-6일이 필요하고 이후 약 2-3주 동안은 제대로 먹지도 못할뿐더러 금액은 4자리 수 정도였다. 보험이 되긴 했지만 여러모로 직장인으로서 수술을 하기엔 시간적으로나 생활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수술은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머리가 아픈 증상이 없어지질 않아서 신경과에도 가봤다. 신경과에서는 일반적인 편두통이라면서 이전에 처방받은 적이 있는 편두통약을 처방해줬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제가 의사로서 이런 말 하기 좀 뭐하지만, 한의원에 가서 사혈 한번 해보세요” 

의사들은 한의학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의 통증이 아리송하셨는지 멋쩍게 한의원을 추천해주셨다.


얼마 후 한의원에 방문했다. 앞과 동일하게 증상은 두통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질문과 진맥을 거친 후에 한의사가 말하기를 일반적인 두통을 말하는 환자들과는 좀 다른 양상이라고 했다. 머리에도 목에도 등에도 몇 가지 침을 맞은 후에 약간 두통이 2-30% 가시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다지 시원하진 않았다. 

머리가 엄청 답답하면서 어지러운데 온갖 병원을 가봐도 해결되지가 않으니 답답했다. 몇 개월 지나니 두통이 이제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경지에 도달했고 회사생활은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고 있었다. 집에 가는 도중 역삼역에서 사람들이 지하철에 탔다. 그런데 평소보다 사람들이 나한테 밀려온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치 나를 덮칠 것만 같은 부담스러움에 ‘IC..’라는 말이 입에 튀어나왔다. '아니 이건 내가 속으로만 내는 말인데 이 말이 왜 나와'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갑자기 숨이 가쁘게 쉬어지더니 차츰 산소가 없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헐떡거렸다. 마치 누가 나를 물속에 갑자기 빠트려서 마구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 이건 분명 마스크 탓도 지하철의 텁텁한 공기 탓도 아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바로 다음 강남역에서 내려야 해서 내렸다. 계속 숨을 몰아쉬면서 환승을 했다.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나의 발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가야 할 곳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늦어지면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이성적인 생각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겨도 별일 없는 것처럼 환승지로 향하는 내 발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겪은 이 증상은 무엇일까? 혹시 TV에 자주 언급되던 공황장애 그런 거 아닌가? 해서 검색을 해봤다. 

공황발작은 강렬하고 극심한 공포가 갑자기 밀려오는 것을 말하며 심장이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곤란 등의 신체증상이 동반되어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불안증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공황발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공황장애라고 합니다.

증상 설명을 보니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 반복된 적은 없으니 공황장애보다는 공황발작이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공황발작이나 공황장애는 TV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이나 겪는 것인 줄 알았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충격이었다. 내 몸이 핸드폰 배터리처럼 빨간불이 들어온지는 꽤 오래돼서 종종 번아웃 증상과 극복에 대해서 정보를 많이 알아보곤 했었다. 그런데 번아웃임에도 충전을 방치하고 0%가 될 때까지 몸과 마음을 잔뜩 끌어다 썼던 탓이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사한 이유로 두통도 가시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었다.


방전이 되어버렸다 by ciriz


나는 결단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내 몸이 보내는 자잘한 신호(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지친 마음, 멈추지 않는 눈물, 두통 등)를 계속 무시해왔다. 제주도로 휴가도 다녀왔지만 그 정도의 휴식으로는 나의 배터리가 50%도 차지 않았다. 이후 베이킹으로 오랜만에 재밌는 감정을 느꼈지만 너무 베이킹에 과다하게 열정을 쏟아붓는 바람에 금방 에너지가 소진되어버렸다. 

지금 당장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이대로 더 큰 몸의 이상이 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젊은 나이에도 크고 작은 신체적/정신적 질병을 얻은 케이스들을 종종 보았고, 나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더 좋은 걸 찾기 위해 다음 단계로 달려갔다면, 이번에는 정말 나만을 위한 멈춤이 필요했다. 대책 없이 나를 어딘가에 내던지는 것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책 없는 휴식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회사 매니저에게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쉼을 위해 퇴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의 상태를 봐왔던 분이기에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 힘들어했었는데, 정말 수고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나였는데, 매니저에게 진심 어린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제부터 내게 그 흔한 '수고했어''잘했어'라는 말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나에게 칭찬도 격려도 없을 뿐 아니라 재미있는 예능을 시청할 때 이외에는 웃음도 사라져 가고 있던 나였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나의 마음을 더 알아줘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좋고 싫어하는 일을 알기 이전에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를 돌아보며 몸과 마음의 충전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걷던 삶과 달리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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