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리즈 ciriz Oct 22. 2021

영화 <소울>: 불꽃이 없어도 내 삶은 의미 있다

내 삶을 매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될 때까지

2021년 초, 개봉 전부터 기대하던 영화 소울이 공개됐다. 원래는 2020년 말 개봉이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1월 개봉으로 연기된 적이 있던 터라 더 손꼽아 기다렸었다. 원래도 디즈니와 픽사면 믿고 보는 나지만 이번만큼은 마음부터 몸까지 지쳐있어서 그런지 간략한 예고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소울 혹은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차있었다.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달려가서 <소울>을 보았고,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 슬픈 장면도 나를 괴롭게 하는 장면도 하나 없는 전체관람가의 무해한 영화였지만 맹목적인 목표만을 쫓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어루만져졌다.


이 영화를 본지 몇 개월 후 나는 퇴사를 했다. 퇴사 후 하고 싶던 일 중 하나는 낮에 여유롭게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목표만을 향해 달렸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나의 소울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영화 <소울>을 구매해서 다시 보게 됐다. 



불꽃을 찾고 싶어 

뉴욕의 한 중학교의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는 ‘조 가드너’는 재즈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조는 예전부터 동경하던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 오디션을 보게 되고 합격한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길 가는 도중 전화를 하다가 맨홀에 빠지면서 죽는다.(정말 급전개다) 


이렇게 갑자기 죽었다 (c) Walt Disney Studios


갑자기 사후세계(The Great Beyond)에 온 조는 황당하다. 당장 오늘 밤 도로시아 밴드 공연에 가야 하는데, 사후세계라니..! 사후세계를 벗어나려 하던 조는 우연히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에 도착한다. 그곳은 태어나기 전인 영혼들이 성격과 관심사를 형성하고 삶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불꽃(spark)을 찾는 곳이었다. 

조는 그곳에서 영혼들이 불꽃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멘토 역할을 하게 된다.

태어나기 전 세상 (c) Walt Disney Studios


영혼 22번은 그동안 간디, 링컨, 테레사 수녀 같은 위인들이 멘토로 거쳐갔을 만큼 지구에 가지 않고 유 세미나에서 오래 머물던 영혼이다. 각 영혼들은 마지막 빈칸인 불꽃을 찾으면 지구 통행증을 얻을 수 있게 되는데, 불꽃은 지구에서 영감이 될만한 것들을 다 모아놓은 ‘모든 것의 전당’이나 멘토의 삶에서 영감 충만한 순간을 모아둔 ‘당신의 전당’에서 불꽃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모든 것의 전당 (c) Walt Disney Studios


나도 어쩌면 22의 모습이었다. 나도 그동안 나만의 수많은 정보가 가득한 책, 유튜브, 기사 등이 있는 모든 것의 전당에서 불꽃을 찾아 헤맸다. 근데 다른 친구들처럼 쉽게 불꽃이 생기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몇 가지를 해보지 않아도 금방 자신의 불꽃을 찾아서 살아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에서처럼 누군가 던진 공에 맞은 우연처럼 별 것 아닌 일에도 자신의 것을 발견했고, 몇 번 해보지 않았던 일에도 금세 '이거잖아 이거!'라고 인정하고 열심히 살아나가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내 불꽃은 아무리 노력해도 찾아지지 않았다. 22번은 수 천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정말 모든 것의 전당에서 해본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베이킹을 발견했다. 영화에서 소울들은 맛도 촉감도 느끼지 못하고 불꽃도 생기지 않았지만, 나의 세상에서는 빵의 향도 촉감도 맛도 다 느끼고 내 불꽃처럼 여겨졌다. 

베이킹 불꽃 찾기 (c) Walt Disney Studios



무아지경과 단절의 차이

22는 수천 년 동안 찾지 못했던 불꽃을 짧은 시간에 찾기는 어려웠다. 그런 22는 조에게 육체와 영혼의 중간쯤인 어둠의 구역이란 곳을 소개한다. 그곳은 즐거움에 깊이 빠져 무아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불안과 집착을 해결 못해서 길을 잃고 삶과 단절되는 영혼들도 있었다.

무아지경 영혼 The zone/ 삶과 단절된 영혼 Lost soul (c) Walt Disney Studios


길 잃은 영혼 중 거래의 강박을 가지고 헤지펀드 매니저가 등장했다. 거래해(Make a trade)를 되뇌고 있는 길 잃은 영혼이었다. 그는 분야만 달랐지 내 모습과 똑같았다. 영화 속 펀드매니저는 ‘거래해’를 되뇌었지만 나는 ‘성공하고 싶어. 난 잘하고 싶어. 잘 나가고 싶어. 매번 뭐든 성공시켜야 해’를 되뇌는 길 잃은 영혼이었다. 

의식을 거행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자신을 되찾았고 영혼이 몸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갑자기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급전개 (c) Walt Disney Studios


현실에서는 이렇게 집착하던 것을 박차고 나가기는 쉽지 않다. 영화에서 남은 길 잃은 영혼이 훨씬 더 많이 있었듯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에서 문 윈드가 말한다. 

“길 잃은 영혼도 무아지경에 이른 영혼과 비슷해. 무아지경은 즐겁지. 하지만 즐거움이 집착이 되면 삶과 단절되는 거야”

말 그대로 집착이 되어 머릿속에서는 특정 문구와 목표만을 생각하고 옆에서 말하는 얘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가진 목표 혹은 집착하는 생각 하나로 가득 차서 몸은 살아있지만 삶과 단절이 된 채로 산다. 


나도 처음에는 일도 베이킹도 무아지경으로 즐거울 때가 있었다. 어느 프로젝트나 베이킹에 몰두해서 내가 나인지를 인지 못하고 시간이 얼마큼 지났는지도 인식 못하는 나 말이다. 그런데 어느새 그게 과다해지면서 길 잃은 영혼이 되어 버렸고, 스스로 성공적이면서도 잘하는 것을 찾겠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커져서 괴물이 되어버렸다. 


22도 나중에는 길 잃은 영혼이 되어 ‘난 마지막 칸만 채우면 돼. 자격 없어 안 돼. 마지막 칸만 채우면 돼. 포기할래’만 되뇐다. 자신에게 다른 영혼들이 했던 말이나, 자신이 안 되는 이유를 계속 반복한다.


“넌 자격 없어

정직하지 못해 네 선택은 다 틀렸어

넌 어리석어 결국엔 안될 거야

너무 이기적이야 다들 널 싫어할걸 루저

세상엔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데 넌 내가 본 영혼 중 가장 보잘것없어

볼꽃 절대 못 찾을걸 멍청이

넌 포기야 

그건 목적이 아냐, 멍청이야 그건 그냥 사는 거지. 시간 낭비야

넌 목적이 없으니까

불꽃 절대 못 찾을걸”

여러 말들과 그 말을 했던 사람들에게 압도되기 쉽다 (c) Walt Disney Studios


나에게도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타인이 내게 했던 말들과 내 스스로가 만들어낸 내 안의 소용돌이에 갇혀 압도될 때가 많았다. 

‘나는 못할 거야. 실력이 안돼서 결국엔 안될 거야. 경력이 별로라 안될 거야. 똑똑하지 않아서 안될 거야.’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단절시키는 큰 벽을 세워서 뚫고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불꽃은 정말 완벽한 걸까?

조는 엄마에게 말한다.

“음악은 제게 직업이 아니라 삶의 이유예요. 두려워요 만약 오늘 죽는다면 무의미한 인생일까봐”


너무나 간절한 조의 꿈을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에게도 지지를 받으며 엄마표 좋은 슈트까지 선물 받았다. 그리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도로테아와의 무대를 하고 찬사를 받은 조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한다. 그런데 예상하던 기분과는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도로테아와 조 (c) Walt Disney Studios

공연이 끝난 후 도로테아에게 묻는다. 

조: 다음은 뭐죠? 평생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상상하던 기분과 달라서요.

도로테아: 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가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젊은 물고기가 말했지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22도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 별 감흥도 없고 음악이 싫다고 말한다. 그런데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본 길거리 연주자의 음악에는 푹 빠져버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조는 ‘오늘 무대에 서기만 하면 문제는 다 해결될 거야. 새로운 조 가드너의 탄생.!”라고 말한다.

조의 몸안에서 음악에 빠진 22 (c) Walt Disney Studios


우리는 불꽃만 가지면, 내가 1등만 하면, 내가 ~로 승진하면, 내가 00 회사로 이직만 하면, 내가 결혼만 하면 등 원하던 것을 이루면 삶은 완전히 바뀔 것이란 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도 항상 매번 그 허구의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하지만 조처럼 원하던 것을 이뤘을 때도 기분은 잠깐이었고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불꽃이라 믿던 것도, 불꽃이 아니라 믿던 것도 삶의 목적이나 로또가 될 수는 없다. 설령 그 불꽃을 내가 찾는다 해도 영혼들이 성격이나 관심사들을 채워갔듯이 그저 일부일 뿐이다. 우리 삶을 차지하는 하나의 조각 말이다. 



매 순간 삶을 즐기기

의식을 통해 뉴욕에서의 삶을 살게 된 22는 피자를 먹는 맛도 알게 되고, 음악을 관두려는 코니의 열정을 살려주기도 하고, 샤워하는 법도 배우고, 이발사의 꿈 이야기도 들어준다. 22는 조의 몸으로 삶을 직접 살아보며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22는 가만히 앉아 웃으며 길을 걸어가는 부녀, 떨어지는 낙엽, 나무 등을 보며 삶을 느낀다. 조 엄마의 실타래, 이발사가 건네준 사탕, 지하철의 소리치는 남자까지 좋았다고 한다.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22 (c) Walt Disney Studios


22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가상으로 배운 삶과 지구에서의 삶은 달랐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는 겪을 수 없던 온도와 감정, 날씨, 자연, 사람, 음식 등 진짜 삶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우리는 더 이상 사소한 것들에 새로워하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는 무난한 일상 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삶이 별 보잘것없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빠지게 될 때도 있다. 여러 이유로 남의 삶을 보느라 시간을 보내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하고, 사소한 일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면서 서서히 삶과 단절되어간다. 


나도 지금까지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길 잃은 영혼이었던 헤지펀드 매니저 같은 삶이었다. 번아웃 증상을 극적으로 겪은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내 영혼도 어둠의 영역에서 문 윈드와 의식을 거행하고 나에게 찾아온 건 아닐까? 열심히 의식을 치러 다시 내게로 연결된 영혼과 단절되지 않도록 삶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



지구로 다시 돌아갈 기회를 얻은 조에게 제리는 묻는다 

“인생을 어떻게 보낼 건가요?”

조는 이렇게 답한다. 


글쎄요.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요. 매 순간을 즐길거라는 거
(c) Walt Disney Studio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