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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즈 ciriz Oct 22. 2021

영화 <줄리 & 줄리아> : 베이킹으로 마음 수련하기

<오티움 & 꾸움>이 되는 그날까지

올해 베이킹을 시작한 이후로 요리나 베이킹 분야에 관심을 더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애덤스 주연의 영화 <줄리 & 줄리아>를 보게 되었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오게 된 1912년생 줄리아 차일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모자, 브로치 만들기 등 클래스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흥미를 찾지 못한 줄리아는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원 ‘르꼬르동 블루’에 다니며 요리에 도전한다. 처음에는 실력이 따라가기에 버거웠는데 엄청난 노력으로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클래스 내에 그 누구보다 뛰어나게 된다, 그리고 친구 둘과 함께 <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라는 요리책을 저술한다. 이 책 덕분에 줄리아는 유명해지고 TV 출연으로 유쾌한 유머감각을 보이며 대중에게 프렌치를 알리는데 일조한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줄리아 (c) 영화'줄리&줄리아'

실제로도 줄리아가 나오는 영상을 보게 됐는데 유쾌하고 재미있다. 줄리아 차일드를 똑같이 따라 하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덤이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1973년생 줄리 파웰. 공무원으로 하루하루 재미없는 직장생활을 한다. 어느 날 자신이 집에 와서 요리를 즐긴다는 사실을 깨닫고 블로그에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전설적인 셰프 줄리아를 좋아했던 그녀는 줄리아의 책에 있는 524가지 레시피를 단 1년 만에 소화해야겠다고 목표를 잡는다. 

줄리와 줄리의 블로그 (c) 영화'줄리&줄리아'

524가지 레시피를 따라 하며 블로그에 업로드하기로 한 것을 줄리&줄리아 프로젝트라고 이름 짓고, 이후 유명세를 타면서 <Julie &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으로 책을 집필하게 된다.




줄리와 줄리아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두 사람이지만 주체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 애썼다. 줄리아는 무려 40세쯤에 요리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줄리도 자리 잡은 직장인이었지만 블로그를 통해 유명 작가로 변신하게 된다.


지금도 크게 다른 세상은 아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나 유튜브를 통해 인지도를 쌓고 유명세를 얻어 더 많은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하는 세상이다. 

세상에 줄리 같은 직장인은 많다. 나도 하루하루를 한숨 쉬며 사는 직장인이었다. 그런 내가 줄리처럼 유튜브의 수많은 줄리아들을 만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게도 줄리아 같은 랜선 베이킹 선생님이 있다. 유튜버 ‘꾸움’님이다.


처음엔 완전 초짜이기에 베이킹 정보를 얻으려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였다. 목소리 하나 없이 자막과 영상정보로 레시피를 전해주시는 분인데, 그 말투와 손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힐링이었다.


꾸움님은 대충 하는 법이 없다. 혼자 여러 번 시도하며 가장 좋은 레시피라고 터득한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한다. 혼자 하는 홈베이커로서 베이킹에 필요한 잔팁들은 모르기 마련인데, 베이킹을 하면서 얻은 쿠프(빵에 길게 나 있는 칼집) 내는 방법이나 온도 습도에 따른 수분 양, 특정 재료 대신 유사한 재료로 시도했을 때와의 차이 등의 노하우를 자세히 알려준다.


너무나 친절한 꾸움님의 가르침에 항상 고마웠고 정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나는 줄리 같은 마음으로 꾸움님의 레시피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식빵을 만들어보다가, 비스코티 쿠키, 크로와상, (달걀과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호두/피칸 타르트, 아웃백 부시맨 빵 등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위주로 따라 해 보았다. 

호두&피칸타르트, 부시맨 빵 (c) ciriz


디저트와 빵의 세계를 잘 몰라서 비스코티라는 것도 꾸움님 유튜브에서 처음 알게 된 메뉴였다. 그대로 따라 했는데 꾸움님과는 달리 비스코티의 모양이 썩 예쁘진 않게 나오기도 했다. 

모양은 망했지만 맛있던 비스코티 (c) ciriz


그리고 크로와상만큼 심플한 빵도 없기에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크로와상을 직접 만들기에는 중노동 중에 중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나 같은 초보에게는 난이도가 상당한 빵이었다. 제빵은 장비가 거의 필요하지 않은 편인데(손반죽 경우), 처음으로 밀대가 필요한 빵이기도 했다. 처음엔 밀대도 없어서 소주병으로 밀면서 만들었다.  

뭣도 모르고 막무가내 정신으로 레시피를 따라 하니 모양과 맛도 얼추 좋아서 고생스러웠지만 감격스러운 크로와상을 맛볼 수 있었다. 

처음 만든 크로와상 (c) ciriz


이렇게 만들다 보니 나도 줄리처럼 베이킹 과정을 기록하고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의 이름을 뭘로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괜찮아 보이는 한국어 단어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을 여러 언어로 번역해보았다. 한국어로도 외국어로도 단순하면서도 부르기 쉬운 이름들을 찾다가 ótĭum이라는 라틴어를 발견하게 됐다. 

Otium은 라틴어로서 여유, 여가, 유유자적, 휴식 등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최근 발간된 오티움이라는 책에서는 ‘나의 영혼을 기쁘게 하는 여가’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베이킹이 활동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주는 행위였다. 

베이킹을 통해서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otiumbakery라는 이름으로 지었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생성했다.

https://www.instagram.com/otiumbakery/

인스타그램 @otiumbakery


초반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한주의 3-4개의 빵을 구울 때도 있었다. ‘이걸 언제 다 해요?’라는 질문도 종종 받곤 했는데, 베이킹은 나에게는 명상과도 같았다. 평소 생각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너무 많은 나이기에 명상을 시도할 때마다 정말이지 쉽지 않았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그 10분 집중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베이킹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한 가지 행위에 집중을 하다 보니 여러 좋지 않은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억지로 0으로 비우려는 명상은 쉽지 않았는데, 역설적이게도 베이킹은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정신이 1가지에만 몰두하는 상태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머리가 비워졌고 빵이 완성된 후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꾸움님이 매일 명상하시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베이킹 내용뿐 아니라 꾸움님의 그 말투나 태도와 에너지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느꼈었는데, 마음수련을 하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여유로움이 묻어 나오는 걸까. 나도 마음을 잘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베이킹을 하다 보면 똑같은 레시피라도 더 잘되는 날도 덜 되는 날도 생긴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인듯하지만 항상 성공해서 맛있고 예쁜 빵을 만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긴 하다. 


하지만 줄리아 차일드는 이렇게 말한다.

If you're not going to be ready to fail, you're not going to be able to cook.  - Julia child

“실패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요리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현실에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내가 베이킹에서만큼은 실패할 마음 준비가 되어있길 바란다. 실패하는 날도 성공하는 날도 있다는 걸 인정하며, 베이킹에서 배운 태도로 삶에서도 그대로 살아내는 내가 되고 싶다. 


<시리즈&꾸움>이 되는 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즐겁게 빵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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