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네 번의 ‘키아프리즈’가 남았다.
스위스 아트 바젤, 시카고 아트 페어와 함께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꼽히는 프리즈 페어. 2003년 런던 리젠트 파크에 설치한 임시 텐트에서 시작한 이 행사는 나머지 두 페어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뉴욕, LA에 깃발을 꽂으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난해 5월, 아트 바젤 행사가 열리는 홍콩이 정치 상황과 팬데믹에 맞물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사이, 프리즈 페어의 아시아 첫 개최지로 서울이 낙점되었다는 뉴스는 예술계를 들썩거리기에 충분했다. MCM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에 독일 쾨닉 갤러리가 진출했고 뉴욕 글래드스톤 갤러리도 삼성동에 서둘러 문을 열었다. 2016년 삼청동에 문을 연 프랑스 페로탕 갤러리는 올해 8월 도산공원에 2호점을 냈고, 2017년 안국동에 자리잡은 뉴욕 리만머핀 갤러리도 올봄 한남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프리즈 서울과 5년간 파트너십을 맺은 키아프KIAF는 지난해 열린 행사에서 판매 추산액 65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고, 올해 5월 개최된 아트 부산 2022 또한 76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기록을 갈아치웠다. MZ세대 컬렉터가 미술계의 새로운 큰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올해 프리즈 서울의 흥행 성적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전 세계 21개국 11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해 9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린 프리즈 서울.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최 측은 매출액 합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키아프 실적을 크게 웃돌았다는 것은 갤러리 부스에 내걸린 작품의 가격대와 판매된 작품 옆에 부착되는 빨간 딱지만 봐도 쉽게 짐작 가능할 정도였다. 프리즈 서울 디렉터 패트릭 리Petrick Lee 역시 “페어 현장과 도시 전체의 에너지가 매우 뜨거웠다”며 흡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프리즈 서울은 국제적 갤러리가 참여하는 메인 전시와 아시아의 12년 차 이하 젊은 갤러리를 초대한 ‘포커스 아시아’, 고대부터 현대까지 걸작을 아우르는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프리즈 마스터즈’에서는 피카소, 에곤 실레, 앤디 워홀, 바스키야 등 20세기 거장부터 데미안 허스트, 올라퍼 앨리아슨, 데이비드 호크니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총출동해 미술 애호가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국내 갤러리와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집중된 것은 물론이다. 백남준은 물론이고 김환기, 박서보, 김창렬, 김수자, 서도호, 양혜규, 이불 등 해외에서 이름을 떨친 작가들이 프리즈 서울에 작품을 전시했고, 국제 갤러리, 갤러리 현대, 학고재 갤러리 등 국내 갤러리 12곳이 부스로 참여했다.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서는 올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류성실 작가의 작품이 P21 갤러리에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아니쉬 카푸어와 LG 올레드, 이배 작가와 생로랑, 김종학 작가와 샴페인 브랜드 루이나 등 아티스트와 브랜드 간의 컬래버레이션도 활기를 띠었다.
4일 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프리즈 서울과는 상대적으로 키아프 서울과 키아프 플러스는 한산했다. 작년까지 컬렉터들을 사로잡았던 키아프가 프리즈 서울이라는 공룡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된 것 아니냐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글로벌 무대에 보여줄 수준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을 찾은 해외 컬렉터들과 미술계 인사들에게 21년의 역사를 가진 키아프라는 행사를 소개할 수 있었고, 국내 갤러리들 또한 구매력 있는 컬렉터를 명단에 풍성하게 추가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덜 알려진 역량 있는 한국 작가들을 세계 무대에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측면은 긍정적으로 풀이된다. 행사 전야에는 한남 나이트가, 오픈 당일 밤에는 삼청 나이트가 열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늦은 시각까지 문을 활짝 열고 작가들과 미술계 인사들과 파티를 즐기는 문화 또한 이전까지 상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앞으로 남은 네 번의 ‘키아프리즈’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지 주목해보도록 하자.
*본 원고는 각색, 수정되어 월간 <디자인> 2022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