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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경 4시간전

의자 생활자들이 알아야 할
운동 도구의 역사

우리는 왜 함께 러닝을 즐기는가?

태초의 인류에게 달리기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자연에서 인간은 사냥감을 쫓거나 반대로 맹수에게 

쫓기면서 뛰어다녔다. 아킬레스건은 더 빨리, 더 오래 뛸 수 있도록 인류가 진화한 흔적이다. 하지만 

사냥감만큼 이동속도가 빠르지 않았기에 인간은 도구를 사용했고, 여럿이 무리 지어 장거리를 뛰어다니며 

사냥감을 한곳으로 몰아넣는 방식으로 먹잇감을 구했다(오늘날의 런 클럽은 함께 뛰는 인류의 유전자가 

몸속에 내재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농경 사회로 들어서면서 달리기는 제의적 성격을 띠게 된다. 기원전 776년 그리스에서 열린 

고대올림픽(올림피아제)은 제우스 신을 기리는 종교 제전이었다. 올림피아에 모인 선수들은 높이 12m의 

제우스 신 석상 앞에서 경기를 치렀다. 처음에는 경기 종목이 단거리 달리기뿐이었지만 복싱, 레슬링, 

원반던지기, 높이뛰기, 전차 경주 등이 추가되었다(참고로 플라톤은 뛰어난 레슬링 선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이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올림픽에서 검투 경기를 금지했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아예 기독교를 국교로 택하면서 종교적인 이유로 올림픽 경기를 완전히 폐지시켰다. 이후 1896년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다시 부활할 때까지 운동은 국가적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중세 시대에는 육체노동 외에 모든 놀이와 운동은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했고, 신체가 아닌 정신을 수련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운동의 암흑시대였던 이때에도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교회의 종을 구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추를 떼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체력을 단련시켰다. 지금의 덤벨 운동 방식이다. 

덤벨의 어원은 여기서 비롯됐다. 단어 ‘dumb(말 하지 않는)’와 ‘bell(종)’이 합쳐져 ‘덤벨dumbbell(울리지 않는 종)’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이후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방식의 근력 운동 도구 이름에 ‘벨’을 붙이기 시작해 바벨, 케틀벨 같은 용어가 자리 잡았다. 


1672년 밧줄 타는 운동 동작 삽화를 추가한 <체조술(De Arte Gymnastica)> 내지. (출처: Wellcome Collection)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극장이나 시장만큼이나 

흔했던 체육관은 수백 년을 거치면서 흔적만 

남았다. 16세기에 이탈리아 의사 지롤라모 

메리쿠리알레Girolamo Mericuriale는 이 폐허가 된 유적지에서 영감을 받고 잃어버린 고대 그리스·로마의 체육 예술의 장대함과 존엄성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파르네세 추기경의 주치의로 일했던 그는 1573년 최초의 운동 종합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체조술(De Arte Gymnastica)>을 집필하게 된다. 초판이 인기를 얻자 개정판에 책 곳곳에 운동하는 신체를 역동적으로 묘사한 삽화를 추가했는데 모두 화가 피로 리고리오Pirro Ligorio의 작품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걷기, 달리기, 수영, 

권투, 레슬링은 물론 웃기, 울기, 숨 참기도 운동 

종목으로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중 

달리기를 최고의 운동이라고 강조했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두 다리만 있으면 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야외가 아닌 실내 러닝 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워싱턴 대학교의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교수와 웨인 퀸튼Wayne Quinton 박사가 심장과 폐 질환을 진단하기 위한 의료용 기기로 제안한 것인데, 러닝 머신은 사실 19세기 초에 죄수를 고문하기 위해 개발된 

기구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당시 법적으로 수감자에게 의무적으로 중노동을 시켜야 했기에 1818년 

영국의 기술자 윌리엄 큐빗은 10~20명이 동시에 

발로 굴릴 수 있는 거대한 원통형 기구를 고안했다. 수감자들은 주 5일간 하루 6시간씩 운동하는 고문을 

당했고 여기서 발생한 동력으로 물을 퍼내거나 곡물을 분쇄했다고 한다(하지만 증기기관과 전기가 

발명되면서 인간이나 가축의 동력에서 얻는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낮았다). 게다가 1898년 수감자 인권 보호법이 통과되면서 이 잔인한 고문 기구는 잠시 자취를 감췄으나 이제는 헬스장에서 없어선 안 될 

운동 기구가 되었다. 

원래 영국에서 죄수용 고문 기구로 개발된 트레드밀(러닝머신).

그렇다면 러닝 머신 외에 다른 실내용 웨이트 

트레이닝용 머신은 어떻게 발명된 것일까? 

1850년대에 ‘메카노테라피mechanotheraphy’를 주창한 스웨덴의 정형외과 의사 구스타브 산데르Gustav Zander는 부상이나 기형으로 신체 

움직임이 제한적인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일련의 운동 기구 시리즈를 디자인했다. 구부러진 메탈

프레임 구조, 추 역할을 하는 철제 플레이트와 탄성 있는 고무 밴드와 연결한 당시의 기구는 오늘날의 웨이트 머신과 작동 원리가 동일하다.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 전시한 

이 기구들이 화제를 모으자 산데르 박사는 운동 

기구 비즈니스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피트니스 기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창업해 

러시아, 영국, 독일, 아르헨티나 등지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의사 구스타브 산데르Gustav Zander가 개발한 운동 기구. 운동복이 아닌 일상복을 입고 운동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미국의 의사 조지 베이커 윈드십George Baker Windship도 그와 유사한 길을 걸었다. 어릴 적부터 운동 

애호가였던 그는 자신의 병원 옆에 헬스장을 열고 이곳만을 위한 ‘쇠질’용 웨이트 기구를 직접 디자인했다. 

환자들에게 병원에 오기보다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내라고 쓴소리를 할 정도였다. 여러 개의 추를 매달아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바와 플레이트로 구성된 바벨의 형태는 그가 1865년 고안한 것이다(하지만 덤벨은 

1927년 조지 F 조웨트George F Jowett가 특허 출원 했다). 

(왼쪽부터) 조지 베이커 윈드십이 1829년 디자인한 웨이트 리프팅 머신, 1927년 덤벨 특허, 1948년 바벨 특허.


한편 19세기 영국에서는 귀족들 사이에서 승마와 골프, 사냥 등 고급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제안하는 각종 매뉴얼 북이 출판되자 홈짐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를 눈여겨본 사업가 존 콕스John Cox는 1865년 에든버러 지역에 야외 체육관(당시 명칭은 ‘Royal Patent Gymnasium’)을 지었다. 당시 하루에 최대 1만 5000명까지 소정의 비용을 내고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트렉션은 600명의 사람들이 한번에 사용할 수 있는 로잉 머신 ‘바다뱀(Great Sea Serpent)’이었다. 이곳은 체육관이라기보다 놀이공원에 더 가까웠지만 어쨌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고된 노동이 아닌 즐거운 여가 활동이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Royal Patent Gymnasium’에서 어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로잉 머신 '바다뱀'
‘Royal Patent Gymnasium’을 홍보하는 1865년 4월 지면 광고.

앞서 소개한 <체조술>에서 메리쿠리알레는 “진정한 건강은 결코 편안함과 양립될 수 없다”며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일이 녹록지 않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동 기구의 역사를 꼼꼼히 읽어본 이라면 헬스장에 놓인 기구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 




참고 자료 

빌 헤이스, <스웨트>, 2023, 알에이치코리아

Carolyn de la Peña, 'The Origins of Cybex Space'Cabinet magazine Issue 29

남세희, 엘르 코리아, '운동기구의 대과거' (2017.10.01) https://www.elle.co.kr/article/19077


*본 글은 월간 <디자인> 2024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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