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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L Jun 12. 2018

 환자 십계명

환자를 위한 Dr.L의 10가지 쓸모 있는 잔소리

1. 병원에 왔으면 일단 믿어라.  


병이 낫기를 바란다면 빨리 진통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의사는 상처를 낫게 하려고 소독하거나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아프게 할 수도 있다. 환자는 종종 이 때문에 의사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빨리 증상만 좋아지면 병세가 숨겨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증상 치료를 먼저 하게 되면 병의 경과에 나타나는 다른 증상들이 숨겨진다. 복통을 예로 들어보자. 맹장염은 초기에 아랫배가 아닌 다른 곳이 아플 수 있다. 그래서 초기에 진통 조절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의사를 믿어야 맹장염에 걸려도 멀쩡해 보이는 생배를 째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수술을 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 경과를 관찰하고 있는지도 모르니 이해가 안 되면 화부터 내지 말고 왜 진통을 안 해주는지 물어보시라. 의사는 초능력자가 아니므로 그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일단 병원에 왔으면 담당 의사를 믿어보자.




2. 의사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기대하지 마라. 

의사는 하루에도 수 십 명 이상의 환자의 호소를 듣느라 늘 과로에 시달리고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시간관리를 위해 환자의 말을 끊는 차가운 의사가 오히려 유능할 수도 있다. 마이클 잭슨의 주치의는 너무나도 따뜻한 의사여서 원하는 데로 들어주느라 진통제와 수면제를 아끼지 않다가 사망에 이르게 하였고 동료 의사들이 고발하여 감옥에 가게 되었다. 병이 나으려면 현재와 달리 바뀌어야 하고 그러려면 잔소리를 듣고 야단맞고 싫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3. 병이 생겨 의사를 만나면 뭘 해야 하는지 물으라.

이 병이 악화되면 죽을 수도 있는지 먼저 묻고 원인(why) 보다는 무엇을 해야 할지(how)를 물으라. 흔히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명쾌하게 비용과 수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묻고 무엇을 따르고 얻을지 생각하지 골치 아픈 고장 메커니즘은 듣기 싫어한다. 그러면서 왜 병이 생겨 괴로운데 이해하기 힘든 골치 아픈 의학 병인론을 갑자기 강의를 듣고 연구하고 싶어 하는가? 병인론도 궁금할 수는 있으나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4. 간단한 건강의 문제라도 혼자 자가 치료하지 마라.

 김연아도 코치 없이 혼자 금메달을 딴 게 아니다. 관리자 없이 객관적인 시각을 잃으면 악화되는 것도 모르게 되고 치료에 성공하기 힘들어진다. 자기 증세의  심각성을 알고 싶으면  증상을 자기 애완견에게 같은 증상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때가 많다. 우리말로 된 법률용어도 이해를 못해서 법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변호하지 못하고 법률전문가에게 변호를 맡기면서  의학용어는 더 어렵다. 의사들 간에도 종종 이견이 생기는 의학적 문제를 이해도 못하면서 의사에게 안 맡기고 의학지식이 없는 가족의 의견대로 따르거나 자기 판단대로 치료를 하는 게  성공하겠는가?  
 





5. 병이 생겼을 때 상식이나 이론만으로 대처하지 마라. 


TV나 인터넷에서  얻어들은  의학지식이나 상식은  대부분  쓸모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의학 이론을 실수 없이 실제 임상에 적용하려면 경험이 필요하고 개개인의 체질이 천태만상인데 나에게 적용할 수 없는 의학지식은 몰이해로 오히려 오해만 부른다.  지식으로는 최고인 정치학 박사 교수를 대통령으로 가장 적임이라 생각하지 않듯이,  많이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다. 병을 잘 아는 간호사, 박사, 교수도 병을 판단하는 훈련을 받지 않아 치료를 할 수 없고 약학박사도 치료를 할 수 없다.  임상에서 의학적 적용을 위한 판단을 수련하는 과정은 전혀 별개여서 대부분 의사들이 의대를 졸업하고도 나서도 개업하려면 경험 있는 의사 지도하에 수년간 임상 경험을 쌓거나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6. 병으로 갑자기 많이 아플 때, 의사를 만나면 응급처치 외에는 기대하지 마라. 

응급상태가 호전되어도 증상이 전에 반복된 적이 있다면 덜 아플 때 다시 상담을 하라. 건축가가 집을 수리할 때도 불난 집은 불부터 끄는데 집중하지 뜬금없이 불난 집 앞에서 집수리 상담은 안 한다,  많은 환자들이 증상이 호전되면 자기 판단으로 치료를 중단해서 악화시키고 다시 치료하기를 반복한다. 비가 와서 지붕에 비가 새면  비가 그친 후에 지붕을  고치야 하지 않겠는가?  증상이 재발할 수 있는지를 묻고 완치 판정을 받고 재발이 없을 때 까지는 다 나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7. 절차를 지키고 새치기하지 마라. 

검진센터 의사는 진단에 주력하지 진단 이외 치료는 관심이 덜하다. 자동차도 검사소에서 수리는 하지 않는다. 수리는 카센터나 정비소로 가야 한다. 중국집에 가서 배고파도 주문하고 기다리지 주방에 직접 들어가서 내 밥 내놓으란 식으로 들이대지 않는다.  원스톱 서비스를 다른 데서는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병원서는 검진의사나 응급실 의사에게는 이런 서비스를 기대한다. 병원은 이런 분업화가 다른 분야보다 심하므로 절차를 무시하면 무시한 대가로 의료사고가 자주 생기고 의료계에서는 "VIP 증후군"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특별 대접을 받는 것이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평소에 건강을 지키고 지금 자신의 주치의가 없다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의사를 소개받으시라. 





8. 40세가 되기 전에 가급적 내 개인 사정을 잘 아는 주치의를 두라.

 40세 이전에는 대개 큰 병이 안 생기지만 40세가 넘어가면서 평균 3.5가지의 악화되면 치명적인 관리가 필요한 지병을 갖게 된다.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내지만  인체는 복잡해서  늘 몇 군데는 고장이 난 상태이고,  중년에 오는 대부분의 만성병은 이미 한 명의 의사가 완치시키기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있다.  통합적인 면을 생각하면  가급적 자신과 가족의 병력을 잘 아는 주치의를 두고 대학병원이나 대한민국의 전 의료진을 지휘하게 하라. 조그만 개인의원이 사령탑이고 의원장이 사령관이 된다. 차를 수리하려고 엔진부 전기부 판금부를 다 들러서 수리를 했는데도 출고하면 차가 굴러가지 않는 이유는 작업반장을 빼놓아서 조립이 엉망이기 때문이리라. 악기 연주자가 서로 다른 곡을 연주하는데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없이 교향곡이 연주되겠는가? 






9. 치료비를 깎지 말고 의사에게 지시하지 마라.  

짜장면 값을 깎으면 중국집 주인은 양을 줄이거나 재료를 뺀다. 의료에서 약간의 과잉치료는 오히려 해가 없으나 치료비를 깎아서 생기는 과소치료는 생명을 잃는다. 의사가 진료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 직전은 피하고 진료여건이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치료비를 아끼지 말고 의사에게 지시하지 말고 알아서 소신껏 치료하게 하라. 의사가 지시하고 환자가 따라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료가 잘 안 된다. 그래서 군에서도 군의관에게는 지휘권이나 장교의 계급을 주지 사병 계급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군 경험이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군대에 군의관이 많이 있는데도 군인이 군병원서 치료를 못 받고 외진을 다닌다. 의사에게 지휘권과 자율권을 안 주면 진료는 망가진다. 최근에 군 의료개선을 위해 의무사령부를 해체한다고 들었다. 작전사령부를 없애면 예산이 줄어 전쟁을 더 잘하리라는 식의 이상한 논리다. 아무튼 정부의 비의사 정치가들이 기획하고 규제하고 밀어붙이는 한국의료의 미래를 알려면 군 의료를 보면 된다. 조만간 국민들이 돈 싸들고 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10. 진료받으면서 절대 바쁘다는 등 치료를 못한다는 핑계를 대지 마라. 

아쉬운 건 환자다. 의사에게는 지금 진료 중인 환자가 치료를 기다리는 여러 환자 중에 한 사람이지만 골든타임을 놓치면 환자에게는 자신을 고쳐줄 의사는 지금 만나고 있는 단 한 명뿐일 수 있다. 아직 다급하지 않고 다급하더라도 환자가 치료받을 생각이 없어 보이면 “바쁘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의사는 그 치료받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복 없는 말하는 환자 치료를 포기하고 즉각 관심이 치료해야 할 다른 환자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 치료를 안 받더라도 예후가 최악의 경우가 어떨지를 꼭 들어보라. 의사는 매일 환자를 설득해서 치료받게 하느라 지쳐있으므로 그저 경고성의 무슨 소린지 뜻 모를 한마디 멘트가 설득의 다 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시기를 놓쳐 환자가 죽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의사들에게 이런 경우는 매일 겪는 너무 빈번하고 흔한 일이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인 건지 모르는 환자에게는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이나, 의사에게는 안쓰러움은 남겠지만 치료를 권했는데도 환자가 거절했다면 다른 환자에게 최선을 다 했으므로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애경내과 #신도림역내과 #구로동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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