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1900년대 초반에 쓰였던 의료 도구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톱, 망치, 그 외 집을 짓거나 부술 때 사용할 것 같은 장비들이 무시무시한 위용을 뽐내고 있더라고요. 와, 저 시대에 살았으면 난 수술받기 전에 기절했을 거야. 저런 시절엔 사람이 어떻게 살았지.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료 기술이 진보한 것처럼,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팩트풀니스>는 말합니다. 하나하나 통계를 근거로 세상이 좋아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더 많이 배워가고 있다고 팩트로 때려줍니다. 저자가 하나 하나 힘을 주어 외치는 세상의 발전에,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이 좋아졌다는 증거들보다도 우리가 왜 세상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할까가 더 궁금해졌어요. 아마도 여러 이유가 있겠죠. 책에 나온 여러 본능들 외에 정치적인 이유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 문제가 많으니 더 많은 기부를 하라고 주장하는 기부단체도 있을 것이고, 세상이 안 좋아지고 있으니 정권을 바꿔야한다고 외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고요. 혹은 '라떼는 말이야...' 옛날이 좋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시대의 발전을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요.
어쨌건, 이 정도로 팩트로 맞았으니 이제 세상의 발전은 의심하지 말아야할텐데... 왜 저는 아직도 세상의 발전이 의심스러울까요.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고, 미국 인구의 절반이 그 사람을 지지하는 걸 보면 정말 세상이 발전하는 건가 싶어집니다. 한국의 정치상황도 미국만큼 극단적으로 갈리다보니 더더욱 그렇고요. 어쨌든 세상이 진짜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의심일랑 떨쳐버리고 저의 발전에도 힘을 써야겠습니다. 몇 십년 지나 꼰대처럼 아 그때가 좋았어... 따위의 생각을 한다면 부끄러우니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