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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군 Sep 04. 2020

청춘에 집이 있었다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한 여자에게 반했다. 같은 과 동기였다. 그 뒤는 영화 건축학개론과 비슷하다. 둘이서 맨날 붙어 다니고, 같이 선배들에게 밥 얻어먹고, 그러다 그 선배와 그 여자가 사귀고. 3월 한 달을 그렇게 보낸 뒤 맞이한 4월은 '춘래불사춘'. 내겐 봄이 왔으나 봄이 아니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아 허망한 인생. 중 2병스러운 감상에 빠져있다 앞자리를 보니 K가 보였다. 남녀공학 남녀합반 고등학교를 다니다 온, 항상 여자들 무리 속에 껴있던, 이상할 정도로 친화력이 강하던, 하이톤의 목소리에 키는 짜리 몽땅하고 얼굴은 새카만데 어떻게 보면 HOT의 강타를 닮은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최주봉을 닮은 녀석이었다. 뜬금없이 K에게 물었다. 야, 여자가 뭐냐. K가 눈빛을 빛내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게 알고 싶어?

 그 녀석으로부터 여자가 뭔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 날부터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녀석도 마침 좋아하던 여자에게 차인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건축학개론은 흥행할 수밖에 없던 영화였다. 그 시절의 남자 신입생들은 마치 좋아하는 여자와 선배들이 사귀는 걸 지켜봐야만 어른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허한 마음을 달랠 곳을 찾던 우린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했다. 제일 처음 간 곳은 락밴드였는데 동아리 방에서 세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를 않아 그냥 나왔다. 다음 간 곳은 연극 동아리였는데, 학교 내 연극 무대 안에 동방이 있다는데 아무리 뒤져도 동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 바깥쪽에 입구가 있었더라. 그다음엔 학교 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수화 동아리에 갔는데, 선배로 보이는 인간이 여자애들만 데리고 밥을 사준다며 나갔다. 우리는 대학 내의 각박한 인심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지쳤을 때 K가 말했다. 나 고등학교 때 풍물패 했는데 풍물패는 어떠냐. 어? 나 OT 때 보니까 문과대 풍물패가 중앙 풍물패보다 잘하던데. 거길 가보자.

 문과대 풍물패는 문과대 꼭대기에 있었다. 옥상에 올라서자 난간 너머로 한강과 남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과대가 근처 건물 중 가장 높았기에 볼 수 있는 전망이었다. 그 풍경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동아리방은 옥상 가운데 있는 옥탑방이었다. 그 안은 넓었지만 막걸리 냄새와 악기들, 오래된 소파와 장판 등으로 어수선했다. 벽엔 그동안 했던 공연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만취한 사람들의 벌게진 얼굴을 담은 사진이 다른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섰을 때 동방 안에선 겁나 예쁜 여자가 도도하게 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별 말없이 우리에게 장구부터 안겼다. 얼떨결에 장구를 배웠다. 이게 쿵이고 저게 따고 같이 치면 덩. 덩쿵따! 30분 정도 퉁탕거린 뒤 그녀가 동방을 떠났다.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여기다! 여기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다! 

 그 뒤로 우린 동방의 붙박이 장승이 되었다. 오래지 않아 우리의 벌게진 얼굴도 사진이 되어 벽에 붙었다. 주말이건 방학이건 쉴 새 없이 학교를 가고 악기를 치고 술을 마셨다. 2학년이 되면서 나는 풍물패의 상쇠가 됐고 K는 회장이 되었다. 둘이 함께 죽마고우로, 또 동아리 동기로 실컷 놀고 즐기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 2학년이 끝난 뒤 후배들에게 직위를 넘겨주고 둘이 함께 나란히 군대를 갔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우리가 군대를 간 사이 동아리가 망해버린 거다. 우리의 2년 후배들이 운동권 집회 나가기 싫다며 집단 탈퇴를 해버렸고, 그다음 해엔 신입생을 못 받았고. 2년 간 군대에 있다가 돌아왔더니 남은 후배들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K에게 말했다.  

여기 이대로 보낼 수 있어?

아니.

 다시 한번 K는 회장. 비슷한 시기에 복학한 다른 형이 상쇠, 나는 상장구를 맡았다. 복학생 세 명이 동아리를 살리겠다고 의기투합했다. 각 과 행사에 가서 악기 치고, 홍보 전단지 돌리고, 괜히 밥자리 술자리에 가서 개인기 보여주고, 애들 꼬시고, 그 와중에 집은 왜 또 둘 다 망했는지 둘 다 돈이 없어서 번갈아 알바를 해서 술값을 마련했다. 한 명이 술값을 벌면 다른 한 명이 애들 붙잡고 술 사 주는, 그래도 돈이 없으면 동방으로 초대해서 밥솥에 밥해서 후배들 먹이는 생활을 졸업 직전까지 했다. 그리곤 신입회원을 첫 해 5명, 이듬해 7명 받았다. 나와 K가 함께 꿈을 꾸고 가꿔왔던 공간이 다시 살아났다. 풍물패가 연습만 한 번 해도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와 쫓겨나곤 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얼마 전 동아리방이 철거된다는 소식에 K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폐허가 된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간도 부서져 있음을 보았다. 벌게진 얼굴 사진들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우리가 졸업한 뒤 후배들도 애를 썼지만 풍물패는 사라져 가고 힙합 동아리는 늘어나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아마도 우리의 청춘에 집이 있었다면 이 곳이었을 것이다. 너와 나의 만취한 얼굴들을 보고 웃던 곳.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울고 땀을 흘리고 희열을 느낀 곳. 평생을 함께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난 곳. 그런 공간이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청춘의 한 막이 닫혔음을, 예쁜 꽃도 시들듯 좋은 날도 언젠간 간다는 것을, 하지만 끝나지 않은 소설의 다음 장을 이어서 써야만 한다는 것을. 

 엉망이 된 동아리 방에 진혼주 삼아 소주를 부었다. K도 나처럼 말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잘 가라고, 고마웠다고. 청춘의 다음 장도 잘 써보겠다고. 여기서 보낸 시간에 부끄럽지 않도록 뜨겁게, 얼굴 벌게져서. 앞선 장을 쓸 때 그랬듯 최선을 다 해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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