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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주 Apr 15. 2019

우울해서 보내는 편지

들어가는 말

우울증. 누군가로부터가 아닌, 나 자신에 의하여 어쩌면 홧김에 또는 무기력함에 나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규정해버렸다. 불현듯 엄습해오는 불안과 침잠하는 자존감, 그리고 끝없이 따라붙는 책망은 나를 그저 건강하다고 또는 정상적이라고 다독이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든다. ‘-증’과 같이 누군가의 상태를 병리적 현상으로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진 않으나 미주알고주알 내가 겪는 모든 것을 섬세하게 표현할 재간이 없을뿐더러 때로는 사회적으로 규정되고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온 하나의 개념이 무언가를 정의하는 데 있어 놀랍도록 경제적인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표현하는 바 그대로 나 자신의 상태를 그저 그렇게 표현해버리고자 한다. - 어쩌면 이러한 나태함 또한 내가 겪고 있는 상태의 반증일는지도.


어쨌든 앞으로 조금씩, 우울함을 느낄 때마다 무언가를 적어보려 한다. 내면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거대한 담론 또는 소소한 사물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치밀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은 거칠더라도 마음의 안내에 따라 가능한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글을 쓰고자 노력할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글을 세상 밖에 던진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견딜 수 없을 낯뜨거움일 테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불완전함이 내가 가진 마음의 병 일부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형식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지의 형태를 빌어 독백과 푸념에 가까운 글을 써 내려가려는 것이고, 수신인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한정한 것이다.


이 보잘것없고 이기적인 편지를 읽는 분들은 따라서 그저 우연히 수신인이 바뀌어 잘못 전달된 편지를 뜯어 읽게 되었다는 심정으로 이곳에 쌓이게 될 편지들을 대해주셨으면 한다. 언제, 어떤 내용으로 불쑥 부쳐질지 모를 불친절함과 꽤 자주 소통이란 것을 모른 채 고립되어 끄적이기만 할 내가 어떤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 스스로를 강제하고 있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 무관심일 뿐이라는 걸 감히 헤아려주시길 기대하며.


배경 이미지: Max Liebermann, Liebespaar. Verso: Bread-cutting scene from J.W. Goethe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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