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의 사과

프롤로그 베르사이유의 붉은 장미

반짝이는 햇살이 피부를 간지르는 화창한 봄날이다. 공기까지 낡은 것 같은 파리의 고풍스러운 사무실을 나와 오랜만에 교외의 공기를 쐬며 걷는 길은 상쾌하기만 하다.


여기는 베르사이유. 태양왕 루이14세가 파리 교외에 온갖 호사를 다해 지은 궁이 있는 곳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군주의 사저는 세월이 지나서 공화국 국민들의 공원이 되었지만 그 화려함과 장중함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다. 바로크 문화는 베르사이유에서 최고봉에 이르렀고 로코코는 이곳에서 결실을 맺었다고 하니까.


하지만 오늘의 행선지는 화려한 베르사이유궁이 아니라 자못 소박하고 시끄러운 파머스 마켓, 마르셰 노트르담이다.


마르셰 노트르담은 파리 근교에서 손꼽히는 큰 시장이다. 꽤 큰 규모의 상설 실내시장이 있는데다가 화, 금, 일요일에만 여는 파머스마켓이 있는데 나는 파머스마켓 방문자다. 일요일 오전에 이곳에 와서 커다란 바게뜨 샌드위치나 조각피자, 크로아상 같은 것을 사물고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장도 보고 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이번주는 여러가지 일로 주중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스트레스를 받던 참이라 오늘의 파란 하늘, 친절한 바람, 만든 사람의 친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맛난 냄새들을 통해 구원을 받는 느낌이다.


초콜릿 크로아상을 하나 사서 물고는 시장을 돌아본다. 때는 무르익은 봄이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싱싱한 야채가 많이 나올 때지만 왠지 이날 저녁은 요리가 하고싶지 않아서 신선식품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직접 안 해먹으면 어떻게 먹을 것인지, 베르이유에서 먹고 갈지 혹은 파리로 돌아가 13구의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이라도 먹을지 등등을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그런데,


뭔가 정신이 확 들었다. 평온하고 북적이는 흐름에서 갑자기 감각을 끌어당기는, 센세이션, 을 느꼈다.


수많은 부스 중의 하나를 지키고 있는 앳되보이는 아가씨···, 아니 소녀인가 싶은 나이다.

프랑스도 젊은이들이 농사 짓는 경우는 별로 없는지라 이곳 파머스마켓의 상인들도 대개는 중장년이다. 그러니 성년이 되었을까 말까 싶은 앳된 소녀가 혼자 서있는 부스는 당연히 눈에 띈다. 게다가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어디 베르사이유궁의 무도회라도 가는 길인가 싶게, 화려한 타오르는 빨간 색의 새틴 드레스다. 장사꾼은커녕 장보러 오기에도 너무 과하다 싶은 복장이긴 한데, 소녀의 미모와 화려한 옷차림이 눈을 끌어서인지 그 부스에는 사람들이 벅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작은 부스에서 무엇을 파는지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나도 줄을 서다시피 기다려서 부스 앞으로 갈 수 있었다.


다가가 파는 물건들을 살펴보니 치즈며 버터 등의 유제품들이다. 척 봐도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조잡한 포장이다. 하지만 조금 잘라놓은 치즈를 시식해보니 이건 ‘아티잔(Artisan)’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을 훌륭한 퀄리티다.


범상치 않은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만 살펴보면 유제품뿐만 아니라 기이하게도 낡은 골동품 같은 것들도 같이 팔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아시아나 아메리카에서 들여왔을 것 같은 장식품이나 조각들이 있었다. 네팔의 구르카족이 쓰는 쿠크리로 보이는 단검도 있었다. 뿌옇게 색이 바랬지만 손잡이는 상아로 보이는데, 만약 그렇다면 꽤나 값진 물건임에 틀림없다. 오래전 동양의 식민지에서 온 것 같은 나무 조상(彫像)은 티크목을 쓴 것으로 보이고, 어디 수도원에서라도 나온 것 같은 테피스트리 등이 눈에는 띄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여기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가야 하는 나에게는 짐만 될 뿐이었다. 화장품 그릇 같은 것은 크기나 무게가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물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척 봐도 상당한 가격이 나가보이는 물건들이 테이블 하나를 빼곡이 매우고 있는데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도 아니다.


책도 몇 권 있었다. 표지라고는 낡은 가죽장정이 전부인, 가장 초라한 한 권에 손이 가 닿는 순간, 여러 책 중에서도 그 한 권이 기이한 힘으로 나를 당겼다. 가죽으로 장정이 된 책은 귀족이나 부자들만 책을 볼 수 있던, 대학교 학비보다는 책값이 오히려 더 비싸던 그런 시절의 물건들이다.


잠시 이것저것을 살피다가 그 중에서도 특히 낡은 책 한 권에 흥미가 일었다.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을 들여다보니 필사본의 노트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인쇄본이 아니라 누군가가 펜과 잉크로 쓴 것이다. 그렇다고 구텐베르크 시절 이전의 책은 아니고, 아마도 18세기. 프랑스 혁명 어름 시기일까? 아니, 혁명기보다는 조금 전인가. 전문가로서의 촉각이 순식간에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런 판단 보다도, 뭐랄까, ‘인연’ 같은 것을 믿는 나로서는 어떤 느낌에 끌려 그 노트를 집어들게 되었다.


“마드무아젤, 저기 꽁떼 치즈를 하나 주세요. 그리고 이건 파는 건가요?”

“네, 꽁떼 치즈는 100그람에 15유로에요. 그쪽의 것은 다 파는 것이니 뭐든 흥미가 있으면 말씀하심 되요.”

“이사라도 하시나요? 재미있는 것들이 많네요?”

“네, 실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은 것들이에요. 이 치즈와 버터도 그렇고. 할머니의 유작이라고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이제 프랑스를 떠나서 여행을 가보려고 해서 집안을 정리하는 중이에요. 얼마든지 보셔도 되요.”


짧은 시간에도 발랄한 목소리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과연 그런 사연이 있었군, 하고 생각하며 다시 골동품 색션을 살폈다. 이 아가씨는 밀려드는 주문을 받으랴, 샘을 치르랴, 포장을 해주랴, 정신이 없는 참이다. 그녀에게서 내 존재가 미끄러져내렸다.


우선 콩테 치즈 작은 것을 하나 집어 계산대에 올렸다. 이렇게 붐비는 곳에서 혼자 우두커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상점 주인에게나 다른 손님들에게나 실례인지라 우선 치즈를 하나 사고 포장과 계산을 하는 동안 시간을 좀 벌어서 이 책을 찬찬히 살펴볼 생각이었다.

얼마나 오래 된 것일까? 종이가 부스러지기 시작하고 군데군데 얼룩이 진 필사본의 노트는 그 자체로 상당히 값이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일단 연식만으로도 제법 가치가 나가 보이지만, 처음 몇 페이지를 급히 훑어본 내용만으로도 요리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할 보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 노트는 얼마나 하나요?”

“아, 그거··· 글쎄요 다락방 구석 궤짝 밑바닥에 있던 건데··· 전 있어봐야 소용도 없는 거니까 그 치즈랑 같이 해서 80유로만 주실래요?”


콩테치즈 한 덩이만 해도 35유로 정도니까 그렇다면 노트는 45유로 정도다. 이 정도면 어떻게 봐도 거저에 가깝다 싶다. 책을 감싼 가죽값도 안 나온다.


'이건 미안하쟎아.'


뭔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가씨에게 사기라도 치는 느낌이라 죄책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치즈와 노트를 집어들고 100유로 지폐를 건냈다. 100유로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싶지만 그게 주머니 속에 있는 현금 거의 전부다.


“거스름돈은 안 주셔도 되요. 마드무아젤. 너무 싸게 사는 것 같은데 지금은 돈이 없네요. 제값을 치르고 싶은데, 언제 기회가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이렇게 말하며 파리의 사무실 주소와 이메일이 새겨진 명함을 같이 건냈다. 좀 수작 거는 것 같지만 그런 의도는 아니고, 거래는 줄 때든 받을 때든 제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 아가씨, 지금은 뭘 몰라서 이렇게 헐값에 노트를 넘기지만 훗날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연락을 해오더라도 제값을 치뤄줄 생각인 것이다.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무슈.”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소녀가 말했다. 붉은 장미가 오월의 햇살을 받아 화려한 빛에 숨막히는 향까지 내뿜는 것 같은 착각이 올 정도다. 나는 순간 호흡이 멎으며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실 필요 없다는 말에 거역할 힘이 빠져나갔다.


베르사이유의 빨간 장미 소녀는 천진한 눈웃음이 명함을, 그리고 내 아래위를 슥 훑어보고는 약간의 호기심을 더하더니 물었다.


“외국인이에요? 아니면 프랑스 사람?”

“외국인이에요. 수드 코레(Sud Coree, 남한)에서 온. 파리에 올 일이 있으면 연락 줘요.”

“네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리곤 또 치즈값을 치르는 사람들을 응대하는 겨를에 나는 다시 그녀의 의식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다시 한 번 천진한 눈웃음을 생긋 웃으며 말하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다 싶었지만 약간의 가식도 느껴졌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언제 밥 한 번 먹자’, ‘파리에 오면 연락해’ 같은 말들은 인사치례가 된 지 오래다. 아마 연락이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웬 아저씨가 수작부린다고 생각했겠지. 무리도 아니다. 특히나 프랑스 남자들은 나이고 뭐고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는 열심히 들이대는 문화가 있으니 그녀로서는 중년남자들의 구애도 귀찮도록 받아보았을 것이다.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돈을 더 주고 싶었으면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해서 모바일로 입금시켜도 되었을 일인데, 그런 생각이 이제야 번뜩 들만큼 현대 사회에 적응을 못 하는 사람이다.

어딘가 스타일 구긴 기분이 들면서 젠장, 하고 혀를 찼다.


직업이 그래서인지 확실히 나는 기술문명 적응이 늦은 편이다. 21세기에 살지만 골동품과 예술품을 들여다보고 거래하는 사람, 나 허린의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