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집안 하노버 왕가의 부자관계, 조손관계
로코코의 사과는 오늘 프레데릭 왕세자께서 후원하시는 오페라의 리허설이 끝나고 늦은 연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하필이면 조지 2세왕께서 후원하는 헨델의 오페라가 개막하는 때에 딱 맞춰서, 왕세자께서도 본인이 후원하는 ‘새 오페라단(Opera of Nobility)’회사의 신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헨델이야 말이 필요없는 음악가지만, 바로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스타일에 대해서 조금은 낡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위대한 음악가지만 그의 시대는 조금씩 저물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천을 살짝 지나, 오후 2~3시의 태양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이 가장 뜨거울 때지만 고도로는 절정을 지났다.
왕세자께서는 본인도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의 애호가이자 후원자이시고, 특히나 보다 영국적인 스타일, 바로크의 장중함과는 대비되는 섬세함과 화려함을 찾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화조류를 이끄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왕세자의 궁정에는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활기있는 예술인들이 가득하고, 무엇보다 영국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카톨릭 신자든 위그노(Huguenot, 신교도를 지칭하는 프랑스어)든 따지지 않고 재능과 능력 위주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마 남의 눈만 아니면 투르크 출신 무슬림이라도 받아들이실 것 같다. 인재 욕심이 끝이 없는 분이라 일단 불러들이고 보신다. 그에 따라서 새로운 문화의 기운이 기지개를 펴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다. ‘새로운 오페라’라는 단순한 이름도 그 지향을 보여주는 선명한 예다.
무조건 새로운, 기존의 왕실 문화와는 정반대의 것. 활기차고 화려한 것.
그렇긴 하지만 굳이 부왕이 후원하시는 헨델의 오페라와 시기까지 맞춰서 오페라를 올린다는 것은 누가 봐도 도전일 뿐이다. 이렇게 대놓고 아버지에게 딴죽을 거는 아들이니까 아버지로서도 예뻐하기가 어렵긴 하겠다.
그런데 부자지간이 이렇게 안 좋아진 것은 어쩌면 집안내력인 것도 같다.
선대의 조지1세께서도 아들이자 지금의 국왕인 조지2세 왕자와는 거의 척을 졌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그에 대한 보상이기라도 하듯이 프레데릭 왕세자에게는 익애(溺愛)라도 해도 좋을만큼 사랑을 쏟았다. 조지1세 본인도 아버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스 하노버 선제후와는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았다고 하고, 반면에 선제후는 손자인 조지2세에게만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니까, 이건 집안 내력이라고 할 밖에.
내가 보기엔 아버지가 자식에게 너무 엄한 게 문제의 시작 같다. 젖을 뗄 나이 정도 되면 이미 아이가 아니라 군인 취급을 받는 것같은 느낌이다. 아이다운 응석을 받아주는 사람은 없고 규율과 책임감, 신체적인 단련과 근엄한 권위를, 우선은 복종하는 것부터 익히게 된다. 어린아이를 이렇게 닦아세워대면 자연히 반발심이 자랄 것이다.
하지만 이 집안의 ‘엄함’은 생존의 기본이자 출세의 자질이었던 것이기에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도 없다. 하노버의 그런저런 귀족으로 시작해서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가 되고 마침내 영국, 대영제국의 왕위까지 손에 넣게 된 것은 하노버 가문이 역대로 전장에서 획득한 성공에 기반한 것이다.
부하 장군에게 맡겨놓고 뒷전에 서는 스타일이 아니고 직접 전장에서 지휘를 하는 진짜 군인 출신인 이 집안의 아버지들은 그만큼 자식들도 엄격하게 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직업상 생존과 가문의, 이제는 왕국의 성쇄를 가르는 문제니까, 자식을 사랑할수록 더 엄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군인 아버지 못지 않게, 아니 그 딱 그 아버지의 자식이라고 할 밖에 없는 기질이 강한 아들들과는 사이가 벌어질 수 밖에.
그런 집안이지만 프레데릭 왕세자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서 부모도 오래 살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다. 커서는 기대보다는 건강하게 자라났지만 도저히 장군감으로는 무리라고 할 수밖에. 여기에 또다른 집안내력인 주색잡기에 탐닉하는 것으로 런던의 사교계를 시끄럽게 해서 해서 아버지 조지2세뿐 아니라 어머니 캐롤라인 왕비조차도 완전히 눈 밖에 난 자식 취급을 했다. 왕세자가 아이를 출산했을 때에도 병약한 왕세자로부터 아이가 생길 리가 없다며 세자빈을 의심했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반면에 동생인 컴벌랜드 공작(Duke of Cumberland)은 이 집안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아 어린 나이에 반란을 진압하는 전공을 세우기까지 했으니 부모로서의 입장뿐 아니라 군주로서의 책임도 있는 부모의 마음은 당연히 막내아들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레데릭 전하가 왕세자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왕위 계승 서열에 대한 법률이 확고한 이 나라의 질서, 그리고 할아버지 조지1세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었다. 대체로 이 집안의 극악의 부자관계를 보완해주는 것은 유달리 돈독한 조손관계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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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몸이지만 아버지와 길항하는 것은 어디 안 가는 모양이다. 전장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문화 예술을 후원하고, 인재를 볼 때는 국적도 가리지 않고 종교도 따지지 않는다는 식이다. 한마디로 실력 하나 딱 보는 분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약간의 가산점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는 요소는 있으니 그것은 집안도, 외모도 아니다. 아버지 조지2세가 싫어하면 무조건 환영인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왕세자 관저인 레스터하우스(Leicester house)에는 왕권을 부정하는 공화주의자 같은 사람들까지 드나들고 있을 정도다. 반대로 조지2세 폐하는 왕세자의 궁정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은 왕궁에는 드나들지 못하도록(Persona non grata) 공식적으로 선포했다고까지 하니 부전자전이랄 밖에.
분명 집안 내력이라고 할 부자지간의 사이지만 왕세자의 반항은 단순한 딴죽은 아니다. 이 나라 전체에 새로운 문화의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에 대해서 왕세자는 분명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하노버 왕가로서는 대대로 ‘독일인’의 딱지가 붙어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선대의 조지1세는 독일에서 태어나 중년까지 독일에서 생활하셨다. 재위중에도 영국에 있는 시간 이상으로 독일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시기도 했다. 영어는 거의 못 하셨고 굳이 배우려고 하시지도 않았다. 당연히 반감을 갖는 사람이 많아서 ‘영어도 못하는 영국왕’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에 비하면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이기는 일반이라도 지금의 조지 2세 전하는 청년 시절부터는 영국에서 보내서 훨씬 국민들이 친근하게 느끼기는 한다. 그래봤자 ‘영어는 좀 하는 영국왕’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도다. 실은 그보다는 영어를 퍽 잘하지시만 독일어 억양만은 어쩔 수 없긴 하다.
두 분 다 독일 태생이시고 뼛속까지 군인이시라는 점에서도 닮았다. 근엄하고 소박강건한 성품이시고, 그런 궁정 분위기다. 내가 있던 베르사이유의 부르봉왕가의 궁정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베르사이유는 궁전의 크기부터가 다르고 화려한 가구며 조각이 어디로 눈을 돌려도 빛을 발한다. 무도회와 연회는 왕께서 주관하시는 큰 규모의 것에서부터 왕비님이나 왕자, 공주님들이 주관하시는 작은 것들까지 매일 끊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르사이유궁에 있다가 세인트제임스궁으로 처음 왔을 때는 궁이 아니라 교회인줄 알았을 정도다.
사실 소박한 왕실이라는 것은 나라를 위해 좋은 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왕궁의 연회를 비롯한 여러가지 행사와 의식이 통치에 발휘하는 효과를 옆에서 지켜보고 주재하기까지 한 나로서는 왕실이 사람들의 기대 중 중요한 부분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로 왕실의 영광이 국가와 국민의 영광이라는 정서 말이다.
통치행위라는 측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의식과 연회를 활용해서 왕실과 사람들의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었다. 외국인 왕실에 대한 반감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더욱.
프레데릭 왕세자께서는 병약한 몸인 탓도 있지만 군무보다는 예술과 과학을 중시하시는 분이다. 근엄하기보다는 개방적이고, ‘영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태도이시다. 이 ‘영국적인 것’이란 게 애매하고 어려운 것인데, 애초에 이 나라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에 아일랜드까지, 역사도 민족도 종교도 다른 나라들의 연합왕국이다.
연합왕국이라지만 명목상 그렇다는 것이고 실은 잉글랜드가 패권을 잡고 다른 나라들을 통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웨일스는 왕세자가 웨일스공(Prince of Wales)라고 불리는 것에서 보듯이 잉글랜드 왕가에 완전히 복속된 형태고 아일랜드는 아예 대놓고 식민지 취급을 받는 수준이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수세기, 아니 천 년 이상을 로마제국과 잉글랜드의 침략을 꿋꿋이 이겨내서 당당히 독립을 유지해온 나라다. 잉글랜드는 이런 스코틀랜드를 어떻게든 점령하려고 하고, 반면 스코틀랜드도 어떻게든 잉글랜드로부터 독립을 지켜내려 한 것은 물론이고, 같은 카톨릭 국가이자 전통적인 동맹국이기도 한 프랑스를 도와 틈만 나면(주로 잉글랜드가 프랑스와 전쟁을 벌일 때) 잉글랜드의 배후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훼방을 놓던 앙숙이었다. 지금은 스코틀랜드도 신교파 나라가 되었지만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은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나라들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기로 하긴 했지만 아직도 스코틀랜드와 다른 지역의 카톨릭 세력은 틈만 나면 반란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죽고 먼 조카뻘 되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두 나라의 (그럼으로써 또한 웨일즈와 아일랜드의) 왕이 된 이래로 거의 200년이 되었다. 지역감정에 종교문제, 민족문제까지 얽힌데다가 이제는 잉글랜드 왕실이 독일인이라는 사정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모를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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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건 스코틀랜드건 원래 영국적인 것은 ‘촌스럽고 뒤떨어진’ 느낌인 것이 사실이다. 내가 프랑스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건 영국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단적인 예로 세인트폴 성당을 비롯한 나라의 모든 주요 건축물이 건축양식이 그리스-로마 스타일을 모방한 것과 귀족집안의 자제들은 장기간으로 대륙,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체류하며 언어를 배우고 귀족사회의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은 영국인들 스스로도 ‘자기 것’에 자부심이 없다는 단적인 증거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차지한 부유하고 강력한 왕국이지만 문화적으로는 한참이나 뒤떨어진 현실이다. 특히 음식 분야에서는 앞이 안 보일 정도다. 영국인의 유머감각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 날씨와 더불어 음식에 대한 자학인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나도 요리사로서 여기 잉글랜드 요리에서 뭔가 참고할 만한 것을 배우려 했지만 궁정의 요리는 오히려 유행이 한참 지난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의 모방이 많아서, 적어도 상류사회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이 나라에서는 딱히 볼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차라리 시골 농부들의 음식에서 배울 것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 궁정에 메인 몸으로서는 경험할 기회가 언제 올 수 있을까 싶었다. 귀족 자제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중심으로 그랜드 투어를 떠나는 것도 다 제대로 된 문화와 매너를 익히기 위해서다.
브리튼 왕국의 국력은 프랑스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형성해가고 있다. 이런 국력에 걸맞는 문화는 잉글랜드, 혹은 브리튼 ‘만’의 것으로 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존의 것을, 남의 나라 것을 따라’만’ 해서도 될 일이 아니다.
문화란 개인 수준에서든 나라 수준에서든 어느 정도는 모방도 하고, 또 새로운 시도도 하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것들이 섞여야 진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온 유럽에서 다양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모아들이는 궁정의 기능은 중요하다. 왕세자의 궁정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동하는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왕의 궁정에서라면 총애를 받지도, 활동을 후원받지도 못했을 사람들이 말이다.
국왕께서는 이미 검증된 소수의 일류 명사들만을 기용하는 성격이고, 한 번 쓴 사람은 문제가 없는 한 계속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시다. 헨델이 전형적인 예다. 헨델의 위대함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음악 관련해서는 헨델에게 일임을 하다보니 조지왕의 궁정은 그만큼 단조로운 음악색이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국왕이 연로해감에 따라서 궁정의 인사들도 나이든 사람들로 채워져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궁정의 모든 일들이 병목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욱일승천하는 왕국의 국세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프레데릭 왕세자의 딴죽이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귀족들과 신흥 부르주아들에게서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