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로코코의 사과, 비결을 밝히다

The Recepi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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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코코의 사과’의 ‘창작의 비밀’을 살짝 공개해본다. 그래. 쉬운 말로 오리지널 레시피인 것이다. 제자를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당대 최고 요리사의 비결을 자세히 설명할테니 눈 크게 뜨고 잘 보도록.


우선 사과를 골라 잘 씻는다. 잘 씻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병충해를 예방한답시고 담뱃진 같은 것을 물에 풀어서 살포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 몸에 들어가서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 냄새가 고약한 것은 물론이다. 물론 출하할 때 씻어서 나오긴 하지만 이 냄새는 흐르는 물에 최소 다섯 번은 씻어야 한다.


사과는 나 개인적으로는 붉은 사과보다 청사과 계열이 더 좋은데, 청사과가 산미가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기억하겠지? 단 맛의 마법사의 비결을. 단 음식을 만들 때 산미는 단 맛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다. 청사과가 만든 후 점도가 더 높은 것도 장점이다.


씻은 사과는 벌레 먹거나 상한 곳을 도려내고 잘게,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자른다. 아주 작게, 완두콩 중에서도 작은 콩의 반쪽 정도 크기로 잘라야 한다. 꽤나 칼기술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이 때 껍질은 벗기지 않아야 질감이 더 좋고 설탕을 적게 넣어도 점도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잘게 썰려면 꽤나 성가시다는 느낌이 올 것이다. 비결이 하나 있다.


될 때까지 연습해라. 사과를 한 천 개쯤 이런 식으로 손질해보면 눈 감고도 될 거다.


다이스한 사과를 우선 뜨거운 팬에 졸인다. 법랑 남비도 좋다. 늘어붙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리하기로는 사실 법랑이 최고다. 사과가 오래 공기에 노출되었을 때처럼 거무튀튀한 색이 나고 물기가 많이 증발해서 끈적인다 싶을 때에 한편에서 부케가르니(Bouquet garni, 꽃다발이라는 뜻으로 허브나 향신료를 다발로 묶은 것)로 준비해두었던 향신료 졸인 물을 붓는다.


이 향신료는 후추, 정향, 계피···. 이 정도만 하자. 설마 진짜 이것까지 가르쳐 달라는 건 아니겠지? 훨씬 더 많은 것이 들어가지만 이 세 가지만 넣어도 충분하다. 어차피 대단한 귀족나리 정도 되지 않으면 손에 넣어도 심장이 떨려 못 쓸 비싼 재료들이다. 이 향신료의 배합 하나만 알아도 평생 먹고 살만한 비법이라는 정도만 알면 되겠다.


이 향신료스프가 다시 졸아들 때가 되면 이제야 설탕을 넣는다. 단맛을 더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약간의 소금도 필수적이다. 소금은 간수를 충분히 빼서 쓴 맛이 없어야 한다. 간수가 덜 빠진 설탕을 조금만 정량보다 많이 쓰면 설탕을 엄청나게 더 퍼부어야 할 것이다.


설탕을 적게 넣는 것은 재료비를 아낀다는 면에서나, 요즘 부인들 사이에서 번지는 ‘설탕혐오’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서나 중요한 문제다. 비만의 원인이 설탕만은 아니지만 요즘은 설탕을 적게 넣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건강식 대접을 받는다니까.


설탕은 정제된 정도에 따라 색도 풍미도 다른데, 너무 밝은 것은 풍미가 떨어지고 그렇다고 너무 어두운 것은 그 풍미가 진짜 주인공들을 가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하여튼 하얀 백설탕을 쓰는 것이 제일 위험하다. 진짜 주인공들이란 바로 향신료들이다. 맵고 쓰고 톡톡 쏘는 독특한 향을 내는 향신료들이 실은 단맛이라는 무대에서 화려한 공연을 하는 것이 나의 구상이다.


이제 또 졸여가다 보면 어디에 이렇게 수분이 숨어있었나 싶게 많은 물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이 때 조금이라도 눌어붙으면 망하는 거다. 결정이 생겨서 캔디 같이 되면 끝이니 끈기 있게 저어가면서 약한 불로 천천히 졸인다.


여기에 사과식초를 첨가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식초의 향과 풍미도 아주 중요하고, 산성분이 있으면 눌어붙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식초를 넣으면 졸이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아주 큰 이점도 있다. 참고로 사이더(Cider)를 추가 발효시킨 사과식초도 영국 것과 브르타뉴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브르타뉴 것을 선호한다.

한동안 용암같이 끓어오르던 것이 좀 잦아든다 싶을 때가 수분이 충분히 빠져나간 상태다. 졸이던 내용물을 주걱에 묻혀보아 45도 이상으로 기울여도 주르륵 떨어지지 않으면 이 때가 불을 더 줄여야 할 때다. 천천히 불을 줄여서 식힌다.


이렇게 나온 것을 영국인들은 잼(Jam)이라고 하던데, 이것은 ‘꽁뽀뜨 (Compote)’다.


둘 다 과일에 당을 넣고 졸인 식품이지만, 그래서 거기서 거기로 보이지만, 전문요리사는 둘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법이다.


잼은 원재료의 텍스쳐가 거의 사라진 상태인 반면 꽁뽀뜨는 흔히 말하는 씹는 맛이 살아있다. 내가 굳이 정성을 들여 사과를 주사위모양으로 쪼개는 이유다.


잼은 아예 대놓고 보존식품이라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보존하겠다고 설탕과 원재료 과일을 1:1 정도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서 보관한다면 과연 제법 오래 간다. 꽁뽀뜨의 경우는 장기보존식품이라기보다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처리다. 잼보다 설탕도 적게 들어가고 가열도 적게 한다. 꽁뽀뜨는 만들어 즉시 먹는 것이 보통이고 길어야 며칠 보관한다. 잼같이 병에 넣어 벽장에 보관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없다.


영국에선 이런 차이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그냥 잼이라고 부르면 끄덕끄덕 해주지만···, 직업 요리사라면 당연히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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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리에서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은 어쩌면 불조절이다. 이건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줘도 모르는 영역이다. 불이란 건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으니까, 그저 지키고 앉아서 그날그날의 상태에 따라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휘돌면서 색도, 온도도 바뀌는 불. 시간이 지나면 사그러들고, 장작을 더 넣으면 연기와 더불어 확 피어오르거나, 혹은 죽어버리기도 하는 그 불은 지식이나 생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다. 공식도 없다. 나는 화덕의 불을 들여다보면서 항상 변덕스러운 귀부인의 시중을 드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불 이야기를 하자니 말인데,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는 영국에서는 빵 굽는 오븐과 과자 굽는 오븐이 구별되지 않았다. 짐승을 통으로 구울 정도의 큰 오븐은 덥히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열이 너무 강하다. 빵까지는 그렇다 치고, 섬세한 디저트의 반죽은 익기도 전에 버터나 크림 같은 재료들이 타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육류의 기름이며 탄 냄새가 섞여서야 화려하고 고귀한 디저트는 물건너 가는 거다.


그래서 프티 푸르(petit four, small oven이란 뜻으로 디저트 전용의 작은 오븐)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프티 푸르조차도 이 나라에는 궁정에도 없어서 내가 와서 직접 설계해서 만들어 쓰고 있다. 정말 이 나라에 제대로 된 디저트라는 게 생기게 된 데는 이 오귀스뜨 뻬뻥의 공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는 거다.


로코코고 뭐고,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그럴만한 기술과 환경이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내 자랑으로 이야기가 빠지는데, 불가에서 오랜 시간 단순작업을 하다보니 잡담이 늘었다고 이해해줬으면 한다. 설탕을 넣고 불을 줄여서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어줘야 하는 작업 말이다. 보통 이런 일은 다른 누군가가 맡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만드는 요리라서 손질부터 마무리까지 전부 직접 할 계획이다.


적절히 배합된 향신료를 작은 주머니에 넣어서 사과를 졸일 때 같이 졸이면 정신을 뒤흔들만한 화려한 향이 피어난다. 주방의 다른 일꾼들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내 주변을 맴돌며 향이라도 계속 맡아보려고 할 정도다. 맵싸하고 알싸한 향신료의 향은 사철 햇살이 빛나고 갖가지 향신료 나무가 우거진 아시아의 낙원을 떠올리게 한다.


향신료의 향이 두드러지지만 맛이라는 면에서는 식초, 사과술 사이더를 발효시켜 만든 사과식초가 필수다. 사과와 한 몸인 사과식초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산미의 옷을 입힌다. 산미가 밸런스를 잡아서 지루하지 않게 단 맛을 즐기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단맛에 물렸다는 나으리, 마님들도 눈을 번쩍 뜨며 아이들 같이 계속 이 맛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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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칼질, 비법의 향신료 조합, 여러 식간에 걸친 끈기있는 불 앞의 노동···,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 바로 ‘로코코의 사과’의 핵심인 사과 꽁뽀뜨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화려함이 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잼같이 빵에다가 발라 먹는다는 식으론 ‘로코코’는커녕 기본 ‘스타일’도 성립하지 않는다. 디저트만은 눈으로 봐도 멋지고 탄성이 저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라, 이 꽁뽀뜨를 기본으로 해서 멋진 과자를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부드러운 비지땅뎅(visitandine) 속에 이 꽁뽀뜨를 넣어 감싸보려고 한다. 비지땅뎅은 비지땅뎅 수녀원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브라운 버터가 풍부히 들어간 매우 프랑스적인 과자다. 이걸 파리의 은행가들은 피낭시에(Financier, 금융인 혹은 은행가)라고 부른다지. 확실히 이렇게 고급 과자는 은행가들 정도 되어야 먹을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


거짓으로 돈 버는 치들.


대금업으로 땅을 빼앗고, 멀리 신대륙의 플랜태이션과 노예무역에 돈을 대는 것도, 평민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땅빼앗기 싸움에 전쟁자금을 대는 것도 모두 이들이다. 말이 좋아 금융업이지 본래 유대인들이나 종사하던 천한 ‘돈놀이’ 취급을 받던 일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메디치가문이 금융업으로 큰 돈을 벌어 프랑스의 여왕이며 로마의 교황까지도 배출하는 상황이 되자 성실하던 프랑스인들도 이런 돈놀음을 배워버렸다.


이 피낭시에, 은행가란 인간들은 주교나 추기경보다 나을 게 없는 인간들이다. 이런 인간들이 경건한 수녀님들이 만든 과자를 독식해서 이름까지 바꿔버렸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분개하고는 하는 것이다. 내게는 피낭시에라는 이름은 구린내가 나는 느낌이다.


영국에 와서 한 가지 좋은 것은 주교나 추기경 욕을 할 때 눈치 볼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아니, 내 프랑스 억양을 들으면 덮어높고 카톨릭이라고 단정하고 뒤에서 수근대거나 혹은 대놓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런 면에서는 주교나 추기경을 욕하는 것이 처세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여튼 카톨릭 왕이 싫다고 영어도 못하는 독일 출신 먼 친척 핏줄을 끌어다가 나라를 송두리째 넘길 정도니 이 나라의 카톨릭 혐오도 말 다 했다. 내가 보기엔 왕이 이혼을 해도 된다는 것 말고 별로 다른 것도 없어보이는데··· 하긴 그렇게나 종교 핑계로 재산을 뺏고 사람을 죽이고 했으니 다시 카톨릭 세상이 오면 두렵기도 할 것이다.

내가 영국 국교회나 프로테스탄트들, 혹은 어떤 종교라도, 뭘 믿는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딱히 카톨릭보다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그런 속내까지 드러낼 일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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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비린내 나는 쪽으로 흘렀다. 세상이 그러하니 별 수 있나.


이런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달콤한 디저트가 필수인 것이다. 부드럽고 촉촉하고 감칠맛과 버터의 향이 풍부한 비지땅뎅에 향신료의 화려한 향이 폭발하는 꽁뽀뜨를 넣어 구워낸 것을 아름다운 로코코의 문양을 새겨내면 완성이다.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사자와 유니콘을 설탕조각으로 장식하고 거기에 민트잎으로 녹색 물을, 비트잎으로 붉은 색을, 오랜지 제스트로 노란색을 표현한다. 이런 기술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것으로 코르시카 출신의 내 조수인 파올로의 특기이기도 하다.


사과라는 재료를 가지고 전에 있던 요리사는 애플파이 같은 것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로코코의 사과(Pomme Rococo)는 그런 원시적인 음식이 아니라 스타일이 있는 디저트다. 이제까지 세상에 없었던 맛이다. 요리사로서 내 마음은 기쁨이 가득하고 이 우주의 하나의 존재로서 뭔가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다는 자부심으로 넘친다.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맛이라니,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냐고? 물론 과일이나 채소와 향신료를 같이 넣어 졸이는 것은 인디아에서도 많이 쓰이는 방법이라고 들었다. 인디아라면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의 원산지이기도 하고, 망고 같은 열대과일의 단맛은 설탕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달다.


하지만 인디아에서는 무굴 제국의 황제라도 싱싱한 사과를 맘놓고 먹지는 못한다. 프랑스 국왕이라도 망고를 마음껏 먹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타타르족의 땅에서 온 사과와 아메리카에서 온 설탕, 인도에서 온 향신료, 그리고 세계 제일의 프랑스 제과기술이 어우러지는 이 맛은 이미 이제까지는 세상에 없는 맛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사과가 있는 곳에선 향신료와 설탕이 없고 그 반대로 향신료와 설탕의 고장에는 사과가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유럽의 나라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이런 물산들이 대량으로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아시아와의 무역이 발달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나 식민지 제국을 운영할 능력이 되는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나라들의 이야기고 잉글랜드나 독일 같은 북유럽의 나라들에서는 아직은 향신료의 사용은 그다지 널리 유행하고 있지는 않다.


근래의 브리튼 왕국, 영국은 세계의 바다에서 이미 스페인을 누르고 최근엔 나의 조국 프랑스에게도 우위를 점해가고 있는 상황이라 향신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나라는 아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도시 맛난 음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듯이 살아간다. 그러니 향신료는 후추 정도나 널리 쓰이는 상황이고, 그것도 육류 저장을 위해(혹은 저장에 실패한 육류의 맛을 가리기 위해)서나 쓰는 것으로 아는 것이 이 나라 요리인들의 관념이다.


나 오귀스뜨 뻬뺑이 바로 이 잉글랜드 왕세자 전하의 궁정에 있음으로써 그런 요리문화가 바뀌어 나가고 있기는 하다. 나의 연회에서 맛본 음식들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의 주방으로 퍼져나가 모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로코코 음식문화는 바로 여기 왕세자의 주방에서, 나 오귀스뜨 뻬뺑의 주제 하에서 발전하고 있다.


오늘따라 내 자랑이 좀 과한 것 같은데, 오늘 만드는 이 ‘로코코의 사과’는 내가 일생 만들어온 여러가지 요리 중에서도 특별히 자부심이 드는 것이다보니 그런가 보다.


음식과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 나누어줄 수 있지만, 이 자부심과 흐믓함은 나누고 싶어도 나눌 길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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