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lty Pleasure!
디저트란 것은 본래 달콤한 과일이나 꿀로부터 발전해왔다.
사실 단 것을 후식으로 먹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호사다. 내가 자라난 파리의 빈민가에서 단 것은 구경하기도 힘들다. 혹시라도 어떻게든 손에 들어온다면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먹을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은 조금도 없다. 우선 빨리 입에 넣고 삼켜야 탐욕에 불타는 수많은 손과 입으로부터 음식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입안에서 조용이 단맛을 음미한다거나 한 기억 같은 것도 없다.
지금은 그 시절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단 맛은 얼마나 황홀했던가. 예전에는 꿀이나 과일 같은 것에서 어렵게 만들어내던 단맛이 이제는 아주 흔해지면서 단맛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 서인도제도의 식민지에서 설탕이 풍부하게 들어오면서 부터다. 이제는 심지어 사람들이 단맛에 조금 물리기 시작한 느낌이다.
오죽하면 근래에는 비만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궁정과 귀족사회, 그리고 행세깨나 한다는 부르주아 나리들에 한정해서 하는 얘기다. 잘은 몰라도 설탕이 유행하고 난 후에 나리, 마님들의 몸피가 부쩍 늘어난 것은 다들 느끼는 바다.
내가 처음 베르사이유궁의 주방에 들어왔을 때 궁재(宮宰, Maitre d’hotel)셨던 미셸 바텔님의 말씀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궁정에서도 설탕은 귀한 물건이었지. 설탕조각으로 사람 크기만한 케이크를 세우고 하는 일은 루이 14세 폐하께서 과시로 시작하신 일이라고 봐도 돼. 요즘이야 뭐 흔한 일이 되었지만. 그 때는 여인네들도 지금보다 많이들 말라서 풍만한 몸매가 우러름을 받았지. 그런 몸매의 여인네들이 건강하고 아이들 먹일 젖도 잘 나올 것 같다고 칭찬들을 했었는데, 요즘은 완전히 반대야. 설탕이든 뭐든 흔해지고 사람들 식생활도 많이 변했지. 최근에는 여리여리한 소녀 같은 몸매를 미인이라 친다지? 마담 뽕빠두르 같은 분들이 미인으로 칭송을 받는 시대가 되었어.”
헛웃음을 웃으시며 세상 별 일 다 보겠다는 투로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난다.
마담 뽕빠두르 (Madame de Ponpadour)!
당시에는 그저 폐하의 총애를 받는 어려운 분이었는데, 나중에 원치 않게 악연을 맺게 될 지는 그 때는 꿈에도 몰랐지만.
후, 그 이야기는 지금 떠올리지 않는 것이 낫겠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은 이럴 때 실감한다.
어쨌든!
비만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사람들은 단맛을 사랑한다. 단맛은 절대 거부하지 못한다.
절대!
주방에서 뭔가 소스나 드레싱이 잘못되었을 때 약간의 설탕과 버터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연회가 끝난 후에 주방이 분주해진다. 나리님들의 하인들이 레시피를 캐러 오기 때문이다. 물론 뭔가 있는 척하면서 절대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혹은 장난삼아 샤프란이나 플레티넘 같은 얼토당토 않게 비싼 재료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어떤 나리님들은 진짜로 그런 재료를 거금을 들여 써보고 그 맛이 안 나면 애꿎은 자기집 요리사들만 닥달하는 모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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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소금이 단맛을 끌어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요리사는 다 아는 상식이지만, 적당한 지방이 사실은 화려한 단맛을 내는 데 마술 같은 요소라는 것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버터와 설탕을 듬뿍 쓰는 요리는 실패가 적은 것은 바로 단맛과 더불어 지방의 마법이다. 지방에는 여러 향미요소가 잘 녹아드는 편이라서 자칫 단조로와질 수 있는 단맛을 보강하는 여러 요소들, 허브나 향신료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입히기에 좋다. 버터의 향미로는 자체로도 훌륭하고 풍요롭기도 하고 말이다.
다시 또 말하지만 단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다. 그래서 설탕이나 꿀을 듬뿍 더하면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맛은 계속되면 지루하다. 단맛은 특히 그렇다. 세상에 질리지 않는 음식도, 맛도 없다. 이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단맛의 적은 오로지 단맛 스스로일 뿐이다. 단맛을 싫어하게 하는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단맛을 많이 먹어서 '물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 자명한 사실을 ‘마법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정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일류 요리사가 아니다.
많이 단 맛, 미미하게 단 맛, 달콤쌉싸름한 맛, 맵싸한 맛, 풍미가 넘치는 단 맛, 새콤달콤한 맛···. 실은 단맛 만으로도 질리지 않게 연회를 몇 코스나 짤 수 있다. 그렇게 해오고 있다. 자극의 강약과 포인트가 느껴지는 부분을 리드미컬하고 입체적으로 설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법사'의 능력인 것이다.
혹 단 맛 좋아하는 것은 어린아이들 입맛이라고, 자신은 초월한 미식가연 하는 사람들이 있다.
훗. 잘난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단맛도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적당한 산미나 감칠맛으로 베이스를 잡은 다음 단맛을 더하면 단지 ‘상대적으로만’ 달지 않게 느껴질 뿐이다. 노골적으로 단맛은 싫다는 사람들, 꼭 자기 요리에는 단 맛을 빼달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단맛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설탕속물 (Sugar snob)’이라고나 할까. 마담 뽕빠두르도 그런 설탕속물들 중 하나다. 이런 속물들을 골리는 것도 요리사들의 숨겨진 즐거움 중 하나다. 물론 숙련된 기술과 다양한 재료와 맛에 대한 이해가 어우러진 ‘마법사’급 요리사만의 이야기지만.
어디 대나무숲 같은 데라도 가서 외치고 싶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같은 이야기가 수두룩한 것이 궁정의 주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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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는 그래서 어렵다. 디저트라면 연회의 막바지다. 앞에 이미 달고 기름진 음식이 여러 차례 나온 후다. 어지간한 변주로는 '또야' 하는 반응을 보기 딱 좋을 뿐이다. 물론 나 오귀스뜨 뻬뺑 같은 일류요리사에게, 베르사이유 궁정의 연회에서, 그런 맥빠진 반응은 용납될 수 없다. 단맛의 지루함을 '감각의 센세이션'으로 변화시켜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이 나의 오늘(그리고 언제나의) 계획이자 도전이다.
음식에서 놀라움이라면 통으로 구워져 나온 큰 새의 배를 가르면 살아있는 작은 새들이 날아갔다던가 살아있는 물고기가 와인 연못에서 헤엄을 친다던가 하는 식의 놀라운 요리들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장난스런 깜짝 놀람이 아니다.
사람들의 육체적 감각의 깨어남으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지성 혹은 양심의 깨어남으로 인한 놀람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감동이나 각성이라고 해도 좋겠지. 한마디로
'깨달음의 요리'
라고나 할까.
육신에 갇힌 우리의 존재는 오로지 육신의 각성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요리를 드시는 분들은 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 사람들이다. 이 고귀한 분들에게 배고픔이란 책에서나 읽어본 이야기다. 지금도 궁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작 한 덩어리의 빵을 얻기 위해서 막노동이든, 매춘이든, 살인이든, 무슨 짓이든 하고 있다.
궁 밖의 생활보다 궁 안에서의 삶이 두 배 이상이나 길어졌지만, 나 자신이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을 전혀 잊지 않고 있다. 궁정의 이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은 꽤나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창조하는 로코코의 화려함 이면에는 이런 생각들이 숨어있어서,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거리가 된다고 믿고 싶다.
오늘 만들어낸 ‘로코코의 사과 (Pomme Rococo)’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디저트다. 나는 가끔 내 스스로 해낸 일을 믿을 수 없을만큼 만족스런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믿지도 않는 신에게 묻고는 한다.
‘신이여, 이것이 진정 제가 만든 것입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적막속에서 과연 이것은 오롯이 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재확인할 때가 진짜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