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베르사이유의 수석요리사

요리사 오귀스뜨 뻬뺑의 필사본

이 노트에 흥미가 쏠려서 어디론가 식사를 하러 가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허기는 마르셰 노트르담에서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사서 달래고 파리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 노트를 탐독하기로 한 것이다. 군데군데 얼룩이 지고 어려운 옛날 프랑스어와 영어가 섞인 노트는 한줄한줄 읽어나가는 것이 고통스럽도록 힘들었다. 한 시간 남짓 씨름을 해서 겨우 몇 페이지 진도가 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몇 페이지 만으로도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가슴 뛰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베르사이유의 궁정인의 자서전적 글이다. 우리가 베르사이유 궁의 홀이나 왕의 아파트에서 상상으로 그려보는 그런 일들을 몸소 겪은, 아니 연출한 그 사람의 생생한 증언이다.


이제 소개할 내용은 18세기 베르사이유궁전에서 루이15세의 궁정요리사를 지냈고 그 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프레데릭 왕세자의 궁정의 주방장으로 복무한 오귀스뜨 뻬뺑(Auguste Pepin)이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을 옮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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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성이다. 오늘은 새로운 디저트를 하나 만들어 냈다. 뽐므 로꼬꼬 (Pomme rococo)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기는 영국이니 영어로 로코코 애플(Rococo Apple)이라고 해야겠군. 로코코의 정신을 표현하는, 그러면서도 영국적인 프티 푸르(petit four)다. 화려한 로코코와 수수한 영국이라니, 좀 모순된 것 같은가? 하지만 이곳은 왕세자의 궁정이니까, 화려한 것이 어색하진 않은 곳이다.


‘로코코의 사과’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는 사과다.


프랑스인인 내 입장에서 잉글랜드는, 아니 브리튼 섬 전체와 거기서 바다 건너 아일랜드까지도, 별로 맛난 것이 없는 나라다. 맨날 비가 와서 그런가. 이 나라 사람들의 솜씨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도 만족스러운 것이 별로 없다.


암소는 카우(Cow), 숫소는 불(Bull)이라고 부르지만 쇠고기는 비프(Beef)라고 하고 양은 쉽(Sheep)이라고 하지만 양고기는 머튼(Mutton)이라고 한다. 돼지는 피그(Pig)나 스와인(Swine)이라고 하고 돼지고기는 포크(Pork)라고 하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영어로, 식재료는 불어로 부른다. 그런다고 프랑스 식재료같이 맛있어 지지는 않지만, 프랑스 것이 좋은 것은 아는 모양이다.


식재료는 프랑스 것이 좋다는 것은 내가 프랑스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요리사로서 직업적인 판단력을 걸고 하는 얘기다.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은 요리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맹목적인 애국심 같은 것이 통하는 세계가 아니다. 요리 테크닉 이전에 재료를 보는 눈과 좋은 거래처를 확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수업시절부터 그렇게 배웠고 내 주방의 요리사들에게도 누누히 얘기하는 바다.


바로 그런 직업적 판단력을 가지고 이야기하건데, 이 나라에서 사과만은 프랑스의 것보다 훌륭한 것이 나온다. 사과는 원래는 타타르족의 땅에서 왔다고 하지만 유럽에 정착한지 아주 오래된 과일이다. 프랑스도, 독일도, 폴란드나 헝가리도 사과를 재배하지만 유럽에서도 최고의 사과는 영국산이다.


하물며 프랑스에서도 좋은 사과는 주로 브르타뉴(Bretagne) 지방에서 나온다. 브르타뉴는 영어로는 브리타니(Brittany)라고 부른다. 영어로나 프랑스어로나 ‘브리튼족의 땅’이라는 뜻이다.


먼 옛날 로마제국이, 그 유명한 로마의 쥴리어스 시저가 유럽을 정복하던 시절에는 켈트족의 일파인 브리튼 족이 이 섬나라에 살았고 그래서 이 섬을 브리튼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브리튼 섬에서 좁은 해협을 건넌 프랑스땅에도 이들 브리튼족이 오래 살아와서 이곳은 아직도 프랑스어가 아닌 켈트어를 쓰고 와인보다는 사과술을 더 많이 마시는 곳으로 남아있다. 게르만족이나 노스인이 브리튼섬과 유럽을 휩쓸어서 현재로서는 ‘켈트족의 나라’ 같은 것은 없어졌지만, 브리튼 섬의 서남부와 브루타뉴 지방에는 용케도 켈트족의 문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확실히! 인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지만 사과는 사과일 뿐. 과일만 가지고는 ‘스타일’이 나오지 않는다.


이 평범한 식재료를 로코코 스타일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저트로 변신시키는 것은, 음, 아마 영국인의 손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우리 주방에서 열심히 일하는 녀석들 중에 누군가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까지 통틀어서 이런 수준의 디저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오귀스뜨 뻬뺑 말고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꽤나 잘난 척을 해버렸는데, 실은 나는 유별난 개성이 적을수록 좋은 요리라고 생각한다. 요리사는 자연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날라다주는 것을 최종적으로 손보아 사람들을 먹이고 즐겁게 하는 사람일 뿐이다.

음식이란 먹고 사는 것이 본질이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차후의 문제다. 이것이 내가 ‘로코코 스타일’을 좇는답시고 설탕이나 소스 같은 것으로 재료를 덮어버리고 장식이나 연출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테크닉만 배우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다. 그런 요란한 화려함을 쫓는 사람들의 수요가 있으니까 요리사들도 기묘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글쎄, 설탕과 버터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것보다는 대리석이나 벽돌로 집을 짓고 물감으로 벽화를 그리는 것이 더 쓸모 있는 직업이 아닐까. 이런 사람들은 미술가나 건축가가 못 되어 하는 직업이 요리사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요리를 직업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변변한 교육을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받거나 유명한 예술가의 도제로 들어가거나 할 정도의 연줄은 없는 출신인 것을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돈이 없고 지위가 낮다고 생각이나 깊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닌 법.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재료를 잘 살리는 것이 요리사의 할 일이라는 것이 30여년 요리로 잔뼈가 굵은 나의 몸과 마음에서 우러난 철학이다. 남들이 쓰지 못하는 재료를 구할 수 있으면 굳이 잔재주를 짜내고 미각이 아닌 시각이나 촉각에 기대지 않아도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쉬운 법이다. 세상에 자연의 경이로움보다 멋진 스타일이 있을까.


소박한 척해버렸지만 실은 나는 프랑스 국왕의 주방을 거쳐 지금은 영국, 정확히는 대브리튼 연합왕국 왕세자인 프레데릭 웨일즈공의 궁정 요리사다. 버터나 설탕뿐 아니라 후추, 정향, 육두구 같은 진귀한 향신료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고 한여름에도 얼음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이 나라의 산과 들에 사는 어떤 짐승이라도 내가 원하면 구할 수 있는 왕실 주방의 총주방장이다.


그래. 그런 내가 이것저것 해보고나서 하는 얘기다. 비싼 재료 써서 형형색색 기기묘묘한 음식을 차리면 촌스럽고 없는 사람이나 감탄을 하는 거지.


태양왕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군주인 루이 14세 폐하께서도 호사로 점철된 연회 후에는 결국 따뜻한 야채 수프 한 그릇으로 속을 달래셨단 말이다. 화려한 연회는 군주의 지위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 한 생명체로서의 루이 부르봉은 속이 편안한 한그릇의 야채수프가 필요하다는 것은 요리란,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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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궁에서 일하던 시절, 트리아농(Trianon)으로 가는 길을 걷다보면 여러 생각이 들었다. 트리아농이란 본래 큰 사유지(Estate)에 있는 작은 주택이나 부속건물 등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소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트리아농이다.


하지만 베르사이유의 트리아농은 오로지 왕궁의 화려함에 견주어서만 상대적으로 소박한 곳이다. 돈을 들여 소박함을 꾸며놓은 이런 것을 보자면 그냥 대놓고 호사를 부리는 것이 더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뽐내고 싶은 마음이란 것도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구니까 말이다. 프랑스의 국왕쯤 되면 누가 뽐내는 것을 막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인위적인 소박함을 꾸미는 이유는 뭔가 싶긴 하지만.


하물며 ‘그랜드’ 트리아농이라니, 태양왕 루이 14세 폐하다운 발상이다. 어쩌면 화려함과 소박함 모두에서 최고가 되고싶은 모순된 욕심의 표현일 것이다. 레드 헤링(Red herring, 붉은 청어) 같은 형용모순이다.


아, 이런 형용모순을 나타내는 말로 영국인들은 ‘프랑스 신사(French gentleman)’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프랑스인이며 신사라는 건 청어가 붉은 것과 같다나. 그게 이 궁정에서 내 별명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몇몇이 수근거릴 때 나를 힐끔거리며 하는 말을 들었으니까.


말이 옆길로 새버렸다.

세상 어디나 모순이 있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그래서 말인데, 내 요리철학에서도 디저트만은 얼마든 호사를 부려도 좋고 얼마든 상상력을 발휘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줘도 좋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평소 먹는 음식은 그냥 좀 편안히 드시고 호사취미는 이런 쪽으로만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나름의 구분이다. 일종의 ‘평상식’과 ‘행사식’의 구분이라고나 할까.


루이 태양왕 폐하의 야식의 예에서 보듯이 ‘음식’과 ‘연회’는 다른 것이다. 맛을 음미하거나 농부와 사냥꾼들의 노고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건강이나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고려하는 것이 아닌, 마음껏 뽐내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것이 왕궁 연회의 본질이다.


군주제라는 것은 신의 은총보다는 그런 과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이해하시던 루이 14세 폐하께서는 테이블의 그릇 배치까지도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디테일까지 철저히 감독하시던 분이었다. 그러다가는 한상에 떡벌어지게 차리는 프랑스 방식을 코스로 나오는 러시아 방식으로 과감히 바꾼 것도 루이 14세 폐하시다. 프랑스 요리의 진정한 혁신가 중 하나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그에 비하면 현재의 루이 15세 폐하는 그다지 화려함을 추구하시거나 하는 분도 아니시고 연회의 사소한 디테일에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으시는 편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선대에 관례로 굳어진 일들이 그대로 통용되기 쉽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즉, 요구되는 화려함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같은 것을 반복하다가는 무엇보다 군주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니 국왕의 충직한 하인인 나로서는 달리 분부가 없으셔도 때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온갖 기교를 다해서 극장 같은 식탁을 꾸밀 수밖에. 그렇게 해오면서 여러가지 공부도 많이 되고 좋은 면도 많았지만 실은 항상 ‘과시하는’ 음식에 한구석에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 나도 디저트에 이르러서는 온갖 재주와 상상력을 다 해서 기발하고 호사스러운 것들을 꾸며 놓는다. 어쩐지 디저트을 만들어낼 때만은 죄책감도 위화감도 없이 장난을 쳐도 될 것 같은 기분인 것이다. 죄짓는 기쁨(Guilty Pleasure)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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